수필 임진왜란 제7부
“전라도를 먼저 점령하라.”
1597년 일본군이 재차 침범할 때 가지고 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지시다. 그 지시에 따라 일본군은 좌군과 우군으로 나누어 전라도로 진격해 왔다.
일본의 총사령관 우키다 히데이에가 이끄는 좌군은 남원성을 향해 진군했다.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와 시마즈 요시히로, 하치스카 이에마사로 편성되어 웅찬에서 출발했다. 진주를 거치던 중 사천에 상륙한 도도 다카토라, 와키자카 야스하루, 가토 요시아키가 이끄는 수군과 합류해 총 56,000명으로 편성된 대군이다.
이들을 상대할 명군과 조선군의 지휘관은 누구일까? 명군의 지휘관은 부총병 양원, 중군 이신방, 천총 장표, 천총 생승선 등이다. 조선군의 지휘관의 면면을 살펴본다.
먼저 전라병사 이복남이다. 1555년생으로 강원도 명주(현, 강릉시) 출신이다. 남원성 전투에는 전라병사로 7백 군사를 이끌고 참전했다. 조방장(助防將) 김경로(金敬老), 접반사 정기원(鄭期遠), 교룡산성별장(蛟龍山城別將) 신호(申浩) 등과 함께 전사했다.
조방장 김경로(金敬老)이다. 1548년생으로 전라도 남원 출신이다. 무과에 급제해 당상관이 되었다. 1587년 함경도 경성판관으로 두만강의 여진족을 소탕했다. 1597년 8월 조방장으로 전라도 병마절도사 이복남을 설득하여 남원으로 들어갔다.
접반사 정기원(鄭期遠)이다. 1559년생으로 37세인 1585년(선조 18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남원성 전투에 접반사로 참전하여 순절했다.
교룡산성별장(蛟龍山城別將) 신호(申浩)이다. 전라도 고부출신이다. 28세인 1567년(명종 22년) 무과에 급제해 조산보만호(造山堡萬戶)에 임명되었다.
1592년 낙안군수로 이순신을 도와 견내량과 안골포 등지에서 활약했다. 1596년 조선에서 역병이 생겼다. 8,000명에 가까운 병사자들이 속출했다. 이순신은 세금과 군량미를 약재와 의료품으로 바꾸려고 했다. 그러나 수군 장수들은 그것을 말렸다.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신호가 나섰다. 세금과 군량미 일부로 약제와 의료품을 구매했다. 그것은 조선 수군과 한산도 백성들을 위한 일이었다. 그 사실이 조정에 알려졌다. 그는 모든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이순신을 위한 결단이었는지 모른다. 눈물겹도록 고마운 일이다.
광양현감 이춘원(李春元)이다. 그는 1571년생으로 19세인 1590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25세인 1596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광양 현감으로 남원성 전투에 참여했다. 사마시는 성균관에 입학할 자격을 부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실시한 과거(科擧)이다.
1617년 충청도 관찰사로 임명받았으나, 대북파가 인목대비를 폐비시키려 하자 이를 반대했다가 파직되었다.
남원부사 임현(任鉉)이다. 그는 1547년생으로 36세인 1583년에 정시 문과에 급제급제하여 승문원 정자가 되었다. 1591년에 파직되었는데, 사유는 서인 정철의 일당이라는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강원도 도사(江原道都事)로 춘천(春川)의 왜군 400여 명을 죽였다. 1597년 4월 남원부사(南原府使)로 나갔다.
구례현감 이원춘(李元春)이다. 그는 1584년 북방 국경 지역의 군관을 지냈고 1592년 구례 현감에 임명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의병장으로 활약했다. 도체찰사 정철의 명령으로 성주 전투를 치렀으나 패했다. 도체찰사 이원익의 명령으로 구례 지역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그 공을 인정받아 구례 현감으로 임명된 듯하다.
정유재란 당시 석주관 전투에서 패하여 남원성으로 후퇴했다.
진암 현감 마응방(馬應房)이다. 그의 본관은 내 고향 장흥(長興)이다. 장흥 부원군(長興府院君) 충정공(忠靖公) 마천목(馬天牧)의 7대손이다. 음보(蔭補)로 관직에 진출했다.
진안 현감(鎭安縣監)으로 재직했을 때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에는 의병으로 활약하였다.
판관 이덕회(李德恢)다. 그는 20세 때 무과에 급제했다. 1592년 선전관으로 선조를 의주까지 호송했다.
전라도방어사 오응정(吳應鼎)이다. 1548년생이다. 26세인 1574년 무과에 급제했으며, 선조가 피난 갈 때 어영대장으로 호위했다.
1597년 전라도방어사가 되어 남원 전투에 참전했다. 아들 오욱과 오동량과 함께 싸우다 폭약에 불을 붙여 전사했다.
의병장 황대중(黃大中)이다. 그는 1551년생이고,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다. 황희 정승의 현손이다. 임진왜란 이순신, 이복남의 휘하의 무장으로 활약했다.
또 다른 인물로 의병장 조경남도 있다.
지휘관이 많은 부대는 오합지졸(烏合之卒)이다. 적절한 지휘체계가 작동하지 않은 부대이다. 이런 부대는 전투에서 필연적으로 패배한다.
이것을 중명하듯 조선군은 남원선 전투에서 패배했다. 피해 규모는 전사자 1만 명이다. 이들은 모두 조선의 인재들이다. 나라를 살리기 위해 남원성으로 모여든 인재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여름날 가로등 불빛을 보고 날아든 불나방이다. 죽을 줄도 모르고 날아든 불나방이다. 불구덩이가 될 줄도 모르고 남원성으로 날아든 불나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