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비범한 아이, 정인홍

수필 임진왜란 제9부

by 수필가 고병균

임진왜란의 전투 중 초기의 정암진 전투, 웅치 전투, 이치 전투 그리고 우척현 전투(牛脊峴戰鬪) 등은 조선 의병이 승리한 전투이다.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이끈 일본군 제6진을 물리친 전투이다. 이들 전투 중에 의병장 김면(金沔)과 의병장 정인홍(鄭仁弘)이 등장한다. 이 중 정인홍은 누구일까?


정인홍(鄭仁弘)은 1536년에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사촌리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정륜(鄭倫)과 어머니 진주 강씨 사이의 세 아들 중 첫째이다. 그와 관련하여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가 태어난 해에 있었던 이야기다. 가야산 한 봉우리인 성왕산에서 풀과 나무가 마르기 시작하더니 그 현상이 3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게 첫째 일화이다.

그가 3세 때의 일이다. 사랑방에 들어가 놀다가 아버지가 읽던 상리서를 몇 장을 찢어버렸다. 야단을 친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저에게 지필묵을 주시면 찢어진 면의 글을 적어서 채워 놓겠습니다.”

아기 인홍은 그 면의 내용을 그대로 썼다, 이게 둘째 일화이다.

1540년, 그의 나이 네 살 때의 이야기다. 어린 참새를 잡아 놀다가, 그만 죽이고 말았다. 그것을 불쌍하게 여긴 인홍은 강가의 버드나무 아래에 새 무덤을 만들어 놓고, 추도하는 제조문(祭鳥文) 또는 조추문(弔鄒文)을 읊었다. 이게 셋째 일화이다.

鳥死人哭 (조사인곡) / 새가 죽어 사람이 곡하는 것은

於義不可 (어의불가) / 의에는 어긋나는 일인 줄은 아노라

汝由我而死 (여유아이사) / 그러나 네가 나 때문에 죽었으니

是以哭之 (시이곡지) / 나는 너를 위해 슬피 우노라.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도 정인홍의 일화가 있다.

거창군 안음에 사는 유학자 갈천 임훈(葛川 林薰)의 문하에서 수학할 때였다.

섣달 그믐날, 임훈이 제자들과 함께 밤을 새운 일이 있었다. 밤이 깊어가자 제자들이 하나둘 잠이 들었는데, 인홍만은 바르게 앉은 채 밤을 지새웠다. 그의 살갗에는 손톱자국이 많이 있었고, 핏자국도 얼룩얼룩했었다.

임훈은 예쁜 계집종을 인홍의 방에 들여보냈다. 그런데 인홍은 계집종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밤새워 글만 읽었다.

이런 일은 보통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임훈은 상서롭지 못하다고 하여 그를 문하에서 내보냈다. 그의 앞날을 예견했는지 모른다.


이익의 ‘성호사설’에도 정인홍의 일화가 있다.

정인홍의 나이 11세 때였다. 산사에서 글을 읽고 있는데, 마침 거기에 와있던 도의 감사이며 판결사인 양희가 그 소리를 들었다. 기특하게 여긴 양희는 그를 불러 몇 마디 문답을 나눈 후에 탑 근처에 있는 왜송(倭松)을 글제로 내며 시를 짓게 했다. 왜송은 가지가 많아 다보록한 어린 소나무로 다복솔이라고도 한다. 그때 지은 시의 전문이다


矮松(왜송)

短短孤松在塔西(단단고송재탑서) 짧고 짧은 외로운 솔이 탑 서쪽에 서 있으니

塔高松下不相齊(탑고송하불상제) 탑은 높고 솔은 낮아 가지런하지 않네

莫言今日孤松短(막언금일고송단) 오늘날 외로운 솔이 짧다고 말을 마소

松長他時塔反低(송장타시탑반저) 솔이 자란 다음 날에 탑이 도리어 짧으리


이 시에서 ‘왜송’은 정인홍 자신을, ‘탑’은 양희(梁喜)를 비유하고 있다. 양희는 어린아이답지 않게 강한 자아의식과 승부욕으로 무장한 그를 보고, ‘후일에 반드시 현달하리라.’고 예언했다. ‘현달’이란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현명하고 사물의 이치에 통함. 또는 그런 사람.’이란 뜻의 현달(賢達)이고, 다른 하나는 ‘벼슬이나 명성·덕망이 높아서 이름이 세상에 드러남.’이란 뜻의 현달(顯達)이다. 양희는 그를 사위로 삼았다.


정인홍은 남명 조식(曺植)의 문하생이 되었다. 그와 동문수학한 인물로 최영경(崔永慶) 오건(吳健) 김효원 곽재우(郭再祐) 이산해 김우옹(金宇顒) 정구 이발 하진보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중앙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뛰어난 인재들이다.

스승 조식은 그에게 ‘대학팔조가(大學八條歌)’를 지어 주며 학문에 더욱 정진하도록 당부하였고, 만년에는 차고 다니던 칼을 주면서 경계를 삼도록 하였다. 정인홍은 스승의 당부를 잊지 않으려고, 꿇어앉아 칼을 턱밑에 대고 정신 가다듬기를 거듭했다고 한다. 이 칼은 정인홍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상 일화에 나타난 어린 시절의 정인홍은 비범했다. 지적 능력은 물론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세상은 이런 사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공자는 지식에 앞서 덕을 강조한다. 그의 스승 조식도 그것을 당부하는 의미로 칼을 하사한 것인지 모른다.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비범한 아이 정인홍을 위해 성경에서 당부한 말씀은 ‘사랑을 공급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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