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원균과 칠천량 해전

수필. 임진왜란

by 수필가 고병균

1597년 3월 1일(정유년 1월 14일)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일본군 선봉대가 조선의 부산으로 침입해 왔다. 그 뒤를 이어 고니시 유키나가의 제2군이 웅천으로 상륙했다. 웅천은 경상남도 창원시 웅천면이다. 8월 20일(7월 8일) 일본의 후속 부대가 경상도 남해안 지역에 상륙했다. 정유재란의 발발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군에게 ‘조선의 하삼도를 점령하라.’ 하고 명령했다.

그렇게 하려면 물자 수송에 큰 문제가 있다. 조선은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육로의 물자 수송이 어렵다. 그래서 강이나 바다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바다를 지키는 이순신의 조선 수군이다. 그게 난관 중에서도 최고의 난관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조는 악수(惡手)를 두고 말았다. 이몽학의 난을 겪으면서 김덕령을 죽이더니 이번에는 조선의 바다를 지키는 수호신 이순신을 옥에 가둔 것이다. 그를 죽이려고 작정을 했다. 왜 그랬을까?


일본군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는 공을 다투는 경쟁 상대였다. 가토 기요마사가 제1진으로 대한 해협을 건너게 되자 고니시 유키나가는 자기 부하 요시라를 시켜서 경상우병사 김응서에게 가토에 대한 정보를 보내주었다. 가토를 견제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이순신을 제거하기 위한 계략이었는지 그 깊은 내막은 일본군의 고니시만이 알 수 있다.


이 첩보를 접한 김응서는 적군의 침입에 대항하여 군사행동을 취했다는 기록이 없다. 그런데 날벼락은 이순신에게 떨어졌다.


한편 조선의 조정에서 공격 명령을 이순신에게 보냈다. 그러나 그것은 가토군이 부산에 상륙한 뒤에 하달되었다. 어쩔 수 없었는데, 선조는 불같이 화를 냈다.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라고 꼬투리를 잡았다. 이순신은 파면을 당하였고, (음 2월 26일)에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선조는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에 앉혔다. 그는 이순신이 갇혀있는 동안 4번의 해전을 치렀다. (음 3월 9일) 왜선 3척을 분멸한 거제 기문포 해전, (음 6월 18일과 19일) 왜선 수척을 분멸한 안골포 2차 해전, (음 9월 8일과 9일) 왜선 10척을 분멸한 절영도외양 해전, (음 7월 15일과 16일)의 칠천량 해전 등이다.

원균은 통제사로 임명되기 전에는 조선의 조정을 우롱할 뿐 전투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통제사로 임명된 뒤에도 ‘육군의 엄호 없이는 출전할 수 없다.’ ‘30만 대군으로 안골포, 가덕도 등지의 적을 몰아내야 한다.’ 이런 비현실적인 장계만 올리고, 소수의 적을 만나도 곧바로 도주했다. 이를 보다 못한 도원수 권율이 곤장을 쳐서 원균을 출전시켰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말이 있다.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이 지휘한 전투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칠천량해전(漆川梁海戰)에서 조선 수군의 피해는 컸다. 거북선 3척과 판옥선 140여 척이 침몰했고, 조선 수군 2만여 명이 궤멸했다. 반면 왜군의 피해는 고작 100명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배설은 전선 12척 이끌고 탈영했다.


칠천량 해전에 관한 기록이 몇 개 있다.

실록에는 ‘아군이 활 한번 쏘지 못한 채 패했다.’ 했고, 일본 케이넨의 ‘조선일기’에는 ‘이때 반격한 병력은 일본 수군이 아닌 육군 수송함대 병력이었다.’라고 했다.

원균의 행위 중 이순신과 비교되는 사례가 있다. 조선 수군이 물을 얻기 위해 가덕도에서 내렸을 때 적의 기습 공격이 있었다. 그때 원균은 400명의 아군을 버리고 혼자 도주했다. 이순신이 부산포로 출동했을 때 가덕도에서 물을 긷던 초동 5명이 왜군에게 잡혀 끌려간 일이 있었다. 이때 이순신은 가덕왜성을 공격했다. 그러자 왜장 요시라가 직접 나와서 포로들을 풀어주며 화친을 구걸했다. 이순신이 한양으로 압송되기 바로 전인 1597년 (음 2월)의 일이다.


또 다른 기록이 있다. 김완의 《해소실기》에는 ‘초기에 조선 수군을 공격한 일본군 병력이 단 두 척이다.’ 하였고, 정기수 역시 ‘소수 병력이 기습했는데 (조선) 수군은 적이 많은 줄 알고 도주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강항 역시 ‘칠천량에 정박한 조선 함대에 왜선 한 척이 접근해 조총 한 발을 쏘았는데, 조선 수군은 놀라 도망치다가 스스로 무너졌다.’라고 했다. 김완, 정기수, 강항 등 셋은 칠천량 해전 당시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갔던 사람이다.

그날 원균은 도망치다가 소나무 아래에 숨어있던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피살되었다. 한편 그의 동생 원전은 배에 남아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했다.

무능한 자가 높은 자리에 있으면 모두가 불행하다. 동생이라도 그것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칠천량 해전에 관해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조선 수군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남해의 제해권이 왜군에게로 넘어갔다.’ ‘정유재란의 불을 붙였었다.’


전투에서의 무능한 지휘관은 자신과 함께 부하 군졸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그뿐만 아니라 백성들까지도 곤경에 빠뜨린다. 따라서 능력 있는 지도자를 가려서 지휘관의 자리에 앉혀야 한다. 그 책임이 왕에게 있다. 왕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도록 대신들이 도와야 한다. 이게 전투에서 이기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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