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정유재란
해군사관학교 모 교수는 임진왜란 중에 벌어진 해전을 날짜별로 정리하여 일람표를 만들어 놓았다. 그 교수는 말한다. ‘이순신 장군의 해전 전적을. 23전 23승이라고 하면 역사 왜곡이다.’ ‘드라마 작가가 임의로 쓴 것인데 너무 많이 알려졌다.’라고 하며, 엄밀히 말해 45전 40승 5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 교수가 작성해 놓은 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오류가 발견된다.
첫째 오류는 임진왜란 중에 해전은 21차례 출전하여 45개의 세부 해전이 있는데, 그 해전 전체를 이순신의 업적인 것처럼 소개한 점이다.
1597년 3월 9일의 거제 기문포 해전, 6월 18일과 19일의 안골포 2차 해전, 7월 8일과 9일의 절영도 외양 해전, 7월 15일과 16일의 칠천량 해전 등 4차례의 해전은 당시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원균이 지휘했다. 따라서 이 4개의 해전은 이순신의 전적에서 제외해야 한다. 이순신의 해전은 45전이 아니라 41전인 셈이다.
둘째는 전투의 승패를 판단하는 기준이 애매모호(曖昧模糊)한 점이다. 이 교수는 승패가 명확하지 않거나 조선 수군의 손실이 컸을 경우 ‘무’(무승부)로 분류하여 40승 5무라고 했다. 이는 임진왜란 중 벌인 해전 45전 전체를 평가한 수치다.
노량해전의 경우 조명 연합군과 일본이 서로 자기의 승리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 해전을 무승부로 판단했다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칠천량 해전의 경우는 분명 패전이다. 저 통계 수치에 의하면 이 해전조차도 무승부로 판정한 것이 된다. 무엇인가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이순신의 해전 전적을 정리한 분이 또 있다. 그분은 승패를 구분하지 않고, ‘5.7 옥포 해전 11척 격침’과 같은 형식으로, 연도별로 해전의 음력 날짜, 해전의 위치, 전적 등을 간략하게 기술했는데 그 내용을 소개한다.
1592년에는 4차례 출정하여 11개의 해전이 있었다.
5월 7일의 옥포 해전과 함포 해전, 5월 8일의 적진포 해전 등 1차 출정의 3개의 해전, 5월 29일 사천 해전, 6월 2일 당포 해전, 6월 5일 제1차 당항포 해전, 6월 7일 율포 해전 등 2차 출정의 4개 해전, 7월 8일 학익진으로 유명한 한산도 대첩, 7월 10일 안골포 해전 등 3차 출정의 2개 해전, 8월 29일 장림포 해전, 9월 1일 부산포 해전 등 4차 출전의 2개의 해전이다.
1593년 2월 6일부터 3월 8일까지 웅포 해전은 7차와 8차 출정이다.
1594년에는 4개의 해전이 있었다.
3월 4일 제2차 당항포 해전의 7차 출정, 9월 29일 장문포 해전, 10월 1일 영등포 해전, 10월 4일 제2 장문포 해전 등 8차 출정의 3개이다.
1595년과 1596년에는 강화회담의 진행으로 해전도 없었다.
1597년에는 이순신이 참전하지 않은 해전이 4개는 건너뛰었다.
8월 2일 어란포 해전, 9월 7일 벽파진 해전, 9월 10일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명량 해전 등 10차 출정의 3개 해전이다.
1598년에도 3개의 해전이 있었다.
7월 19일 절이도 해전, 9월 19일부터 10월 15일까지의 장도 해전, 11월 19일 노량해전 등이다.
이상은 임진왜란 중 이순신이 출전한 해전이다. 그의 업적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그래서 이순신을 찬양하는 시설이 나라 곳곳에 널려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공정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조선의 왕이나 관료들은 공정한 나라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탄핵에만 몰두했다. 그 결과 임진왜란 이후에도 국가적 변란(變亂)이 수 차례 일어났다.
1634년 이괄의 난과 1728년의 이인좌의 난은 나라 안에서 일어난 변란이다. 그런가 하면 외세의 침략도 있었다. 1627년의 정묘호란과 1636년의 치욕의 병자호란. 1910년의 일본의 침략 등이다. 이러는 동안에도 고관대작들은 반성하는 기미가 없다.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채 당파 싸움에만 골몰했다.
이후로 또 100여 년이 지났건만, 오늘날의 국회를 보면 그 나쁜 버릇은 여전한 것 같다. 그래도 부탁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 지도자들에게 부탁한다. 제발 싸우지 말자. 경쟁은 치열하게 하되 싸우지는 말자.
언론인에게도 부탁한다. 정치인들의 갈등을 부추기지 말자.
백성들에게도 부탁한다. 지도자를 선택할 때 싸우지 않는 사람, 공정하게 처신한 사람을 살펴서 선택하자.
그리하여 ‘상 받을 자가 상을 받고 벌 받을 자는 벌을 받게 하는’ 공정한 사회 공정한 나라를 만들자. 이게 임진왜란이 남긴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