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금대 전투의 교훈

수필. 임진왜란

by 수필가 고병균

임진왜란의 전투 중 충주 탄금대 전투(忠州彈琴臺戰鬪)가 있다.


1592년 6월 7일(음력 4월 28일)에 벌어진 이 전투는, 선조가 신립(申砬)을 삼도 도순변사(三道都巡邊使)로 임명하고 그에게 상방검을 하사했던 전투이다. 상방검(尙方劍)이란 왕이 전장에 나아가는 장수에게 지휘권을 부여하며 하사하는 검이다.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 일본군의 병력 손실은 고작 150명인데, 조선군은 무려 16,000명이나 된다. 조선군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알게 한 전투이다.

이 전투에 등장하는 장수는 1538년생 이일(李鎰), 1546년생 신립(申砬), 1548년생 김여물(金汝岉) 등 셋이다. 전투에 임하는 이들의 행적이 어떠했을까?


이일(李鎰), 그가 경상도순변사의 직책을 부여받고 상주에 도착한 것은 (음 4월 23일)이다. 그런데 이일의 부장이 되려고 자원하는 자가 없었다. 그래서 3일이나 지체했다.

이일(李鎰)은 장기 군관 50명을 이끌고 갔으나 20명의 도망자가 속출했다. 병사는 현지에서 징집했는데, 목표 인원 5,000명에 훨씬 못 미치는 800명이었다. 그중에서 도망하는 자가 나왔다.

그는 상주에서 싸우지도 못하고 패하여 충주의 신립에게로 왔다. 여기서도 패하자 단기로 탈출했다. 황해도와 평안도로 도망치면서 조선의 양민을 죽이고, 그 시체를 왜병인 것처럼 상투를 틀고 목을 베어 아주 소중하게 간직했다. 1593년 1월 6일 평양 전투에도 참전했는데, 김응서와 함께 왜군의 수급을 열심히 모았다.


다음은 신립(申砬), 그가 싸움터로 떠날 때도 따르는 자가 없었다. 대신 유성룡이 모집한 80명을 이끌고 나아갔다.

그가 은성부사(穩城府使)였던 1583년, 여진족 니탕개(尼湯介)가 쳐들어왔다. 그는 기병 5백여 기를 동원하여 첨사 신상절(申尙節)과 함께 적 1만 명을 물리친 공이 있어 맹장이라 한다. 그러나 1587년, 흥양(興陽)에 왜구가 침입했을 때 우방어사(右防禦使)로 나섰다가 돌아오던 중에 양가의 처녀를 첩으로 삼은 일이 있었고, 함경남도 병마절도사에 등용되었을 때에는 졸병을 참살한 일도 있었다.


충주에 와서는 순변사 이일과 충주목사 이종장을 척후병으로 보냈는데 산속에 고립된 일이 있었다. 부하 군관이 그 사실을 보고했다. 신립은 ‘군중을 현혹시킨다.’라고 하며 그를 참수했다. 그러면서 ‘왜적이 아직 상주에 머무르고 있다.’라는 거짓 장계를 올렸다.

그는 탄금대 앞 달천평야에 진을 쳤다. 부하 장수들이 만류했지만 기마 전술을 시도하기에 좋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런데 때는 6월, 장마철이다. 논에 물이 가득 차 있어서 말이 제대로 달릴 수 없었다.


김여물(金汝岉)은 신립(申砬)의 요청으로 참전했다.

신립이 부장들과 함께 조령(鳥嶺)의 형세를 정찰할 때, 그가 다음의 의견을 냈다.

“저들은 수가 많고 우리는 적으니 그 예봉과 직접 맞부딪칠 수 없습니다. 이곳의 험준한 요새를 지키면서 방어하는 것이 적합합니다.”

그러나 신립은 반대했다. 그는 패전을 예견하고는 자기 아들 김류에게 유언을 남겼다. 그것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모른다.


만약, 전투에 패할 것을 예견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군사를 일부라도 빼내야 할까? 아니면 신립을 도와 끝까지 싸워야 할까? 어느 경우가 현명할까?


전자의 경우를 예로 들어본다. 밀양부사 박진은 전투 한번 못하고 도망쳤다. 다음 날 군민 300명을 모아 협곡을 건너오는 일본군을 상대로 혈투를 벌였다. 나중에 경주 탈환 전투에서 참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다. 또 다른 예도 있다. 배설은 칠천량 해전에서 패했을 때 거북선 12척을 끌고 탈출했다. 그 거북선은 명량대첩의 투입되었다. 이런 상황을 모면하는 것이 꼭 비겁한 것만은 아니다.

김여물은 후자를 택했다. 그리고 남한강에 뛰어든 신립의 뒤를 따랐다.


“장교는 마지막에 먹는다.”(Officers eat last)

‘미 해병대는 어떻게 하여 세계 최고의 부대가 될 수 있었습니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병대 퇴역 장군 플린의 답변이다.

세계 최고의 국가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미 해병대의 식사 시간에 병사들이 먼저 먹고 장교는 나중에 먹는 것처럼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자는 국민을 섬기는 일에 솔선수범해야 한다. 자기희생을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지도자의 올바른 자세이다.



오늘날은 우리의 지도자를 선거로 선출한다. 후보자 중에는 이일과 같은 후보자, 신립과 같은 후보자, 김여물과 같은 후보자 등 세 부류가 있다. 이들 중 누구를 선택할까? 그것은 유권자가 결정한다.


나는 미 해병대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그 규칙을 따르기 원한다. ‘나중에 먹는 해병대의 장교와 같은 자’ 그런 후보자에게 투표하려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임진왜란과 같은 부끄러운 역사를 극복하는 최선의 길이다. 탄금대 전투가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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