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범한 아이, 정인홍

수필. 임진왜란

by 수필가 고병균

임진왜란 초기의 전투 중 정암진 전투, 웅치 전투, 이치 전투 그리고 우척현 전투(牛脊峴戰鬪) 등 네 번의 전두는 일본군 제6진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를 물리친 전투이다. 이들 전투에서 의병장 김면(金沔)과 정인홍(鄭仁弘)이 등장한다. 이 중 정인홍에 대하여 알아본다.



정인홍(鄭仁弘)은 1535년에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사촌리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정륜(鄭倫)과 어머니 진주 강씨 사이에서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와 관련하여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가 태어난 해부터 가야산의 한 봉우리인 성왕산의 풀과 나무가 마르기 시작하더니 3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가 3세 때의 일이다. 사랑방에 들어가 놀다가 아버지가 읽던 성리서를 몇 장을 찢어버렸다. 야단을 친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저에게 지필묵을 주시면 찢어진 면의 글을 적어서 채워 놓겠습니다.‘

정인홍은 그 면의 내용을 그대로 썼다고 한다.


1540년, 그의 나이 여섯 살 때의 일이다. 그가 어린 참새를 잡아, 가지고 놀다가 죽이고 말았다. 그것을 불쌍하게 여긴 정인홍은 강가의 버드나무 아래에 참새의 무덤을 만들어 놓고, 추도하는 제문 (祭鳥文, 弔鄒文)을 지었다.

조사인곡 (鳥死人哭) / 새가 죽어 사람이 곡하는 것은

어의불가 (於義不可) / 의에는 어긋나는 일인 줄은 아노라

여유아이사 (汝由我而死) / 그러나 네가 나 때문에 죽었으니

시이곡지 (是以哭之) / 나는 너를 위해 슬피 우노라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도 그의 일화가 있다.


거창군 안음에 사는 유학자 갈천 임훈(葛川 林薰)의 문하에서 수학할 때였다.

섣달 그믐날, 임훈이 제자들과 함께 밤을 새운 일이 있었다. 밤이 깊어가자 제자들이 하나둘 잠이 들었는데, 정인홍만은 바르게 앉은 채 채 밤을 지새웠다. 그의 살갗에 많은 손톱자국이 나 있고 핏자국이 얼룩덜룩했다.

임훈이 정인홍을 시험하기 위해 예쁜 계집종을 정인홍의 방에 들여보냈다. 그런데 정인홍은 계집종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밤새워 굴만 읽었다.

이 두 가지 일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상서롭지 못하다고 생각한 스승 임훈은 그를 문하에서 내보냈다.


정인홍의 일화가 이익의 ’성호사설‘에도 있다.

정인홍이 11세 때였다. 산사에서 글을 읽고 있는데, 도의 감사이며 판결사인 양희가 그 소리를 듣고 찾아왔다. 양희가 정인홍과 문답을 몇 마디 나눈 후에 탑 근처에 있는 왜송(倭松)을 글제로 내고 시를 짓게 했다. 왜송은 가지가 많아 다보록한 어린 소나무로 다복솔이라고도 한다. 다음은 그때 지은 시 ‘왜송’의 전문이다


왜송(矮松)


짧고 짧은 외로운 솔이 탑 서쪽에 서 있으니 / 短短孤松在塔西(단단고송재탑서)

탑은 높고 솔은 낮아 가지런하지 않네 / 塔高松下不相齊(탑고송하불상제)

오늘날 외로운 솔이 짧다고 말을 마소 / 莫言今日孤松短(막언금일고송단)

솔이 자란 다음 날에 탑이 도리어 짧으리 / 松長他時塔反低(송장타시탑반저)


왜송은 정인홍 자신을, 탑은 양희(梁喜)를 비유하여 지은 한시(漢詩)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강한 자아의식과 승부욕으로 무장한 그를 보고, ‘후일에 반드시 현달하리라.’ 하고 예언했다. ‘현달’이란 말은 두 가지의 뜻이 있다. 하나는 ‘현명하고 사물의 이치에 통함. 또는 그런 사람.’ 이란 뜻의 현달(賢達)이요, 다른 하나는 ‘벼슬이나 명성·덕망이 높아서 이름이 세상에 드러남.’ 이란 뜻의 현달(顯達)이다. 훗날 양희는 정인홍을 사위로 삼았다.


정인홍은 남명 조식(曺植)을 찾아가 문하생이 되었으며 동문수학한 인물로 최영경(崔永慶)· 오건(吳健)· 김효원· 곽재우(郭再祐)· 김효원· 이산해· 김우옹(金宇顒)· 정구· 이발· 하진보 등이 있다.


스승 조식은 그에게 '대학팔조가(大學八條歌)'를 지어 주며 학문에 더욱 정진하도록 당부하였고, 만년에는 차고 다니던 칼을 주면서 경계를 삼도록 하였다. 정인홍은 스승의 당부를 잊지 않으려고, 늘 꿇어앉아 칼을 턱밑에 대고 정신 가다듬기를 계속했다고 한다.


일화에 나타난 정인홍은 비범했다. 지적 능력은 물론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이런 사람을 세상은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공자는 지식에 앞서 덕을 강조한다. 남면 조식 선생님도 그것을 예견한 것인지 자신이 지녔던 칼을 주며 ‘경계하라.’ 당부했다.


우리가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지식(智識)이 필요하다 그리고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덕(德)이라는 공자의 말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듯하다.

천불산 청량사의 소나무, 혹시 정인홍에게 글제로 제시한 소나무가 있을까? 이런 생각으로 찾아갔으나 그 당시의 소나무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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