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티켓을 내밀었다. 박물관에서 봉사활동을 자주 하는 친구인데 그가 내민 것은 특별전시회 입장권이다. 그러니까 내가 국립 광주 박물관을 찾은 것은 순전히 친구의 호의에 대한 응답이었던 것이다.
‘왕이 사랑한 보물?’
전시회의 주제를 본 나는 ‘낭비와 사치나 일삼는 왕’ 일 거라 지레짐작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맨 처음 왕을 소개한다. 작센의 선제후이자 폴란드의 왕이었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 2세라고 한다.
‘작센’ 그리고 ‘선제후?’
잘 모르는 말이다. 사전을 들추었더니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작센’은 ‘작센 공화국’을 일컫는 말이다. 중세 초기 북부 독일에 있던 공화국이다.
‘선제후’(選帝侯, Kurfurst)는 ‘신성 로마 황제(독일 왕) 선출에 참여할 권리를 지닌 제후’이다.
'선제후는 1273년경에 시작되었고, 1356년 금인칙서를 통해 성문화 된 직위인데, 트리어·마인츠·쾰른 대주교, 작센 공작, 라인의 팔라틴 백작,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보헤미아 왕 등 7명이었다.
바이에른(1623~1778)·하노버(1708~)·헤센 카셀(1803~)등 3명의 선제후가 추가되었으며, 1806년 로마 제국이 멸망함으로써 그 직위도 사라졌다.’
강건 왕으로 소개되는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 2세는 선제후였고, 동시에 폴란드 왕이었다. 명예욕이 대단한 인물로 짐작된다. 그와 직접 관련된 세 가지의 전시품이 그것을 실감케 한다.
먼저 눈에 띈 것은 큼지막한 왕의 초상화다. 초상화에서 왕이 착용한 복장은 대관식 예복이라고 한다. 어깨에 망토를 걸쳤고, 가슴에는 독수리 훈장이 걸려 있다. 1705년 폴란드 왕으로서 자신이 제정한 훈장과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부터 받은 황금 양모 기사단 훈장도 달고 있다.
반대편 벽면에 걸려 있는 태양가면도 그런다. 황금빛 해바라기 꽃의 형상인데, 가운데 부분에 새겨진 눈과 코 입은 왕의 생김새를 본떠 만들었다. 대북방 전쟁에서 왕위를 잃었다가, 1709년 다시 왕으로 복위한 것을 기념하여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옷감 전체를 황금 자수로 수놓은 군복이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왼쪽 자락이 없다. 그 옆에 세워진 장검과 칼집 등에도 다이아몬드 보석이 박혀 있어 화려하기 그지없다.
이 외에도 18세기 독일의 바로크 예술품 130건이 전시되어 있다. 그것들을 감상하는 동안 ‘왕의 위엄과 권위’ 혹은 ‘야망이 강했다.’는 등 그의 인품을 소개하는 문구를 여러 군데에서 볼 수 있었다.
왕은 수집한 보물을 그린 볼트 박물관 즉 ‘왕이 만든 보물의 방’에 보관했었다.
그린 볼트 박물관은 소장품의 재료에 따라 상아 방, 청동 방, 은의 방, 도금 은의 방, 금은보화의 방 일명 코너 캐비닛, 보물의 방 등으로 구분하였는데, 전시 방법이 당시로서는 상당히 혁신적이었다고 하며 이것을 왕의 업적으로 내세운다.
상아로 만들어진 투명한 맥주잔, 청동으로 만들어진 시간의 알레고리, 은으로 만들어진 아테나, 은도금으로 된 바다 유니콘 형상의 술잔, 퍼레이드 장식함, 개선문 형태의 장식 조각과 오벨리스크, 로즈컷, 다이아몬드 장식 세트 중 검과 칼집 등 전시된 실물 조각품이나 귀금속 공예품 등이 화려함을 자랑한다.
‘보석의 가공 기술을 발전시키기에는 사치스러움이 더 필요하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검소한 생활을 강조했던 나의 신념에 작은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당시 유럽의 왕실들은 자기가 소유한 보물을 비밀의 방에 감추었는데, 강건 왕은 일반인들에게 공개했다고 한다.
그 결과 작센의 수도 드레스덴이 유럽 예술의 중심지로 성장했다고 하며 그것을 왕의 업적이라고 치켜세운다. 3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드레스덴을 유럽의 관광명소로 소개한다 하니 그의 업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에 본 것은 ‘황금 커피 잔 세트’ 사진이다. 눈짐작으로 어림할 때 가로 3m, 높이 4m 정도의 대형 사진이다. 사진 속에는 크고 작은 커피 잔들이 많이 있는데, 두 기둥 사이를 맞배지붕 형태로 연결한 구조물의 여기저기에 그것들이 놓여 있다. 이 잔들은 장식용일 뿐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하니 ‘낭비하는 왕’, ‘사치하는 왕’ 이런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무굴제국 아우랑제브 황제의 왕좌’
마지막으로 ‘무굴제국 아우랑제브 황제의 왕좌’라는 초대형 사진을 보았다.
‘무굴제국’은 16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인도 대륙의 북부 지역을 지배한 이슬람 왕조를 말하고, ‘아우랑제브’는 무굴제국의 제6대 황제로, 강력한 힘과 끝없는 부를 누리 절대 권력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그것을 몹시 선망하여 이 작품을 제작했는지 모른다.
아우랑제브 황제의 생일 연회 장면이 미니어처 형식으로 꾸며진 사진에서 왕의 절대 권력이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무대의 맨 위쪽 왕좌가 있고, 그 앞에 대신들이 도열하고 서 있으며, 계단을 하나씩 내려가면서 갖가지 사람들이 등장한다. 열대지방임을 상징하는 파라솔도 있고, 연회에 참석한 각양각색의 사람들, 선물을 잔뜩 실은 말과 낙타, 코끼리도 등장한다. 인도 특유의 장터를 연상하게 한다.
이 작품의 모든 것은 금은세공으로 꾸몄는데, 다이아몬드가 무려 5,223점이나 사용되었고, 루비 189점에 에메랄드가 175점이나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보물을 향한 왕의 집념이 나로 하여금 전율을 일으키게 한다. 어마어마한 규모와 화려함이 나를 압도하며 한참 동안 꼼짝도 못 하게 한다.
이제까지 둘러본 전시품들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러 함에도 ‘낭비나 사치만 일삼는 왕’ 일 거라는 나의 생각이 어리석었음을 인정한다. 그는 백성들의 삶에 선한 목표를 제시할 줄 아는 리더였다. 작센의 보석 산업과 무역을 크게 발달시켰고, 자신이 태어난 고장 드레스덴을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변화시킨 업적을 남겼다. 이상은 특별전시회를 들러본 후 내린 왕에 대한 평가이다.
당시에도 왕의 업적을 인정한 것인지 ‘그의 시체는 크라쿠프에 묻혀있지만, 그의 심장은 드레스덴에 묻혀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