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삶을 돌아보며, 따듯함을 나눌 수 있기까지의 여정입니다.
돌이켜 보면, 늘 후회했다
물론 좋은 순간도 있었다. 분명히 있었다.
지금의 나를 둘러싼 환경이, 부모님의 따뜻한 말이, 강아지의 해맑은 얼굴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그럴 때면 이 정도면 괜찮다고, 살아볼 만하다고 스스로를 달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늘 불안했다.
아무에게도 꺼내놓지 않았던 이야기지만, 이제는 글로 남겨도 될 것 같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내가 왜 글을 쓰게 되었는지부터 말해야 할 것 같다.
내게 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감정을 보관하는 장소도 아니고, 상처를 전시하는 공간도 아니다. 글은 나를 이해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나는 나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한 말과 행동이, 스스로에게조차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변화는 고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그전까지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대화도, 관계도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많아질수록 숨이 막혔다. 함께 어울리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혼자이고 싶어졌다.
예전엔 분명 괜찮았는데. 다 같이 노는 걸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처음엔 컨디션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반복되었고, 너무 자주 찾아왔다. 나는 그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결국 사람들을 피하기 시작했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 새로 사귄 친구들, 같은 반 친구들까지.
누군가를 미워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늘 두세 명만 곁에 있기를 바랐다. 그 이상은 감당할 수 없었다.
고3, 그리고 스무 살에 군대에 가기 전까지 나는 인간관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누가 너에게 소중한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군대에 가면 나아질 거라 믿었다. 사람이 많은 곳이니, 이 불편함도 사라질 테니까
처음엔 분명 힘들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회에 있을 때보다 더 편안해진 나를 발견했다. 나의 과거를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오히려 자유로웠다.
나는 오랫동안 하나의 생각에 갇혀 있었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언제나 일관되어야 한다.’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이 모두 하나의 ‘나’로 굳어져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군대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새로운 삶을 사는 기분이었다. 공간은 제한되어 있었지만, 인격은 가장 자유로웠다. 어차피 전역하면 멀어질 인연들이었기에, 깊이 상처받을 이유도 없었다.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에, 다른 인간 위에 서고 싶어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나약함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나약하면서도 자존심이 강하고, 그 쓸데없는 자존심이 오히려 나약함을 증명한다.
군대에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실망하지는 않았다. 이미 알고 있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대 없는 관계가 더 건강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고, 슬픔도 없을 테니까
전역 후, 예전처럼 숨이 막히는 순간은 거의 사라졌다. 사람이 많아도 괜찮았고, 말이 오가는 자리도 버틸 만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졌다. 여행을 시작했고, 호주에서는 살아보기도 했다.
그곳에서 또 다른 삶을 살았다. 새로운 사람들 앞에서는 과거를 세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현재의 나로 존재하면 되었다.
과거로 정의된 내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사는 느낌이었다.
그 자유는 군대에서 느꼈던 자유와는 달랐다. 인간에 대한 기대를 버려서 얻은 해방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기대가 다시 생기며 찾아온 자유였다.
낯선 땅에서도 좋은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삶의 가능성을 다시 알려주었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불편했던 과거와 달리, 스물세 살의 나는 사람을 알고 싶어졌다. 그들에겐 내게 없는 무언가가 있었고, 나는 그것을 배우고 싶었다.
따듯한 말, 온기, 진심이 담긴 웃음소리
뭐가 그렇게 웃겨서, 뭐가 좋아서 세상 다 가진 것 같은 웃음을 보이는지
그 이면을 나는 볼 수 없었지만 그때 그들이 보였던 웃음은 진심으로 다가왔다
인간은 나약하다는 것은 여전히 옳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젠 오히려 나약해서 따듯해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약하니까 누군가의 따듯한 손을 잡을 수 있는 것이고
서로 웃으며 사는 것이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인간의 삶은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나는 여전히 나를 이해할 수 없지만
여전히 타인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온전히 사랑하고 싶다
어쩌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마음 또한 사랑의 다른 형태이지 않을까?
24살인 지금, 지난 1년을 돌아보면 나는 조금은 따뜻해진 것 같다. 여전히 무뚝뚝해 보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제는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만들고 싶어졌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작년에 알게 되었다.
따듯한 인간이 되고 싶다.
언젠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