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

원래 돌을 굴리길 좋아했던 소년이었으니까

by 손태영


몸집보다 큰 돌을 온몸으로 밀어 올릴 때면,

가끔은 그 돌에 깔려 죽는 편이 더 나은 결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 어제와 같은 속도로 굴러 떨어지는 돌을 마주했다.

일상에 행복과 불행이 있듯 공모전엔 입상과 낙방이 있다,

알베르 카뮈가 말한 ‘삶의 부조리’는 철학책이 아닌 닳아버린 의자 위에서 가장 먼저 체감된다.

시지프의 신화는 어쩌면 모든 인간의 형벌이 아닌, 희망이라는 지독한 굴레를 짊어진 이들이 남긴 기록일지도 모른다.


번번이 낙방하는 나의 글들을 하나씩 뜯어고쳤다. ‘이래서 안 됐을 거야’라는 어설픈 짐작으로 원인을 찾고, 다시 문장을 쌓아 올린다.

어렸을 때부터 나의 꿈은 작가였다. 어머니는 돈을 벌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걱정을 품으셨지만, 그렇다고 포기를 강요하지는 않으셨다. 어쩌면 미묘한 기대를 품고 계셨던 것 아닐까.

나는 그저 글과 함께하는 삶을 바랐다.

다른 일로 돈을 벌어 글 쓰는 시간을 사야 한다면, 흔쾌히 그 길을 택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심혈을 기울여 쓴 글이 이유도 모른 채 다시 내게 굴러 떨어질 때면, 모든 욕심을 내려 두고 절망의 무게에 짓눌리고 싶어진다.

‘차라리 돌을 굴리지 말걸.’ 시도하지 않았더라면 실망할 일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돌이 내려오는 궤적에 맞춰 몸을 뉘었다. 빠르게 굴러내려 와 내가 다시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깊게 짓눌러, 이 지독한 굴레를 완전히 부수어주길 바랐다.

천천히 몸에 힘을 빼고 눈을 감은 찰나, 군대 시절 선임이 던진 비릿한 웃음이 들렸다.


“네가 전역할 때까지 일기를 쓸 것 같냐? 나도 쓰다 포기했어. 너 절대 못 써.”


스무 살의 내게 그 말은 단순한 도발이 아닌,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다가왔다.

작가라는 직업에 다가가기 위한 나의 첫걸음은 ‘일기’였으니.


비웃음이 만들어 낸 오기가 549일의 복무기간에 477일의 기록을 낳았다.

그 기록이 나의 필력을 틔웠냐 묻는다면 침묵할 수밖에 없다.


다만, ‘왜 썼는가’라는 질문에는 누구보다 선명하게 답할 수 있다.

일기란 꿈에 닿기 위한 순수했던 발걸음이자 애정의 표현이었으니.


스르르 눈을 떴을 때, 멈춰버린 돌덩이가 보였다.

오른팔과 왼팔이 본능적으로 그 돌을 지탱하고 있었다.

두 다리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음에도 뒤로 밀리지 않았다.

그 순간,

나를 다시 일으킨 것은 거창한 재능이 아니라, 477일의 기록이 만들어 낸 근육이라는 것을 느꼈다.

다시 돌을 굴리기로 했다.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단순히 입상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으므로, 몇 번의 낙방에 주눅 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굴러 떨어지는 돌에 대한 두려움보단, 밀어 올리는 행위에 깃든 의미가 나의 열정을 더 불태울 테니.

몸집보다 큰 돌이 지면에 깎이고 깎여 언젠가 모래알이 되어 흩어질 때까지 계속 돌을 올려놓을 것이다.


가끔 짓눌리고 싶은 마음이 튀어나와도 이젠 괜찮다.

나는 원래 돌을 굴리는 것을 좋아했던 소년이었기 때문이다.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