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대신 IT를 선택한 중동, 그곳으로 향한 한국 보안 기업들
안랩 커뮤니케이션실 인턴으로 일하며 많이 접한 키워드 중 하나는 '중동'이다. 안랩 관련된 기사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 합작 법인 라킨이 자주 등장했고, 사이버 보안 업계의 여러 기사에서도 중동 키워드가 자주 등장했다.
'보안'과 '중동'. 두 단어가 함께 있는 모습이 생소해서 여러 기사를 찾아보다 보니, 중동 진출은 안랩 뿐만 아니라 한국 IT 산업 전체의 새로운 흐름이었다.
2024년 10월, 안랩은 사우디아라비아 사이버 보안 기업 SITE(Saudi Information Technology Company, 국부펀드 소유)와 합작법인 '라킨(Rakeen)'을 설립했다.
주목할 점은 SITE가 사우디 국부펀드(PIF) 100% 출자 기업이라는 것이다. 즉, 사우디 정부가 직접 나서서 안랩과 협력하고자 한 것이다. SITE의 자회사 SITE벤처스는 744억원을 투자해 안랩 지분 10%를 인수했고, 안철수 창업자에 이어 2대 주주가 됐다.
라킨은 아랍어로 '안정적인, 신뢰할 수 있는'을 의미하며, 사우디 리야드를 거점으로 엔드포인트 보안, 네트워크 보안, 클라우드 기반 XDR 등을 제공한다. 향후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출처: https://www.chosun.com/economy/tech_it/2024/04/02/6QF7SAYWHZFHNKZ2PHFV2TCPJ4/, https://zdnet.co.kr/view/?no=20241021101029
중동으로 향한 건 안랩만이 아니었다. 지니언스는 2024년 UAE 두바이에 신규 사무소를 개설했고 중동 고객이 전체 글로벌 고객의 40%를 차지한다. 스패로우는 중동 보안 기업 라스인포텍과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어플리케이션 보안 시장에 진입했다. AI스페라는 UAE, 사우디, 이집트 포함 중동 5개국에 진출했다.
이 외에도, IT플랫폼 기업들도 중동에 진출하고 있다.
네이버는 사우디의 초대형 신도시 프로젝트 '네옴'에 합류했고, 사우디 국립주택공사 자회사와 '네이버 이노베이션'을 설립하고 슈퍼앱 확장에 나서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2025년 사우디 정부의 도시 개발 프로젝트 '디리야 프로젝트'에 주차 플랫폼을 포함한 통합 모빌리티 솔루션 공급 협약을 체결했다.
출처: https://www.thebell.co.kr/front/newsview.asp?click=F&key=202602191119380120101426,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293/0000069039?sid=105
2024년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중동 사이버보안 시장은 2028년까지 연평균 9.6% 성장해 234억 달러(약 32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중동이 디지털 전환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중동은 왜 IT에 집중하고 있을까?
중동이 IT에 집중하는 첫 번째 이유는 생존이다.
사우디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2016년 우리는 석유에 중독돼 있어 위험하다고 말하며 '사우디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석유는 유한 자원이며, 전 세계적 탈탄소 정책으로 수요가 감소할 것이 확실한 상황이다. 중동 국가들은 석유가 마르기 전에 경제 구조를 재편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UAE는 석유 생산량이 4%에 불과한 두바이를 중심으로 일찍부터 금융과 IT로 전환해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사우디는 이를 벤치마킹하며 2026년까지 매년 1,000억 달러(약 147조원)를 비석유 산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출처: https://gscaltexmediahub.com/future/the-future-beyond-oil/
두 번째 이유는 인구 구조다.
세계은행이 2026년 1월 발표한 '진전의 10년: 사우디 내부 노동시장의 변혁'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사우디의 18~24세 청년 고용률은 10%에서 33%로 증가했다. 전체 인구의 민간 부문 고용률도 2025년 2분기 기준 52.8%에 이르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자본집약적인 석유 산업으로는 한계가 있었던 고용 창출이 IT를 포함한 산업 다각화로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사회 참여 확대도 이유 중 하나이다.)
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260127167000108
세 번째는 지정학적 요인이다.
2000년대 미국의 셰일 에너지 혁명으로 중동 석유가 덜 필요해지면서 미국은 중동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다. 이후 2019년에 예멘 반군이 사우디 석유시설을 공격해 일일 생산량의 절반이 멈췄지만, 미국은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1980년부터 미국은 '카터 독트린'으로 페르시아만 안보를 보장해왔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에 걸프 지역 고위관리는 연합뉴스에 '40년간 유지된 안보 체제가 완전히 깨졌고 미국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석유가 필요 없어진 미국은 중동을 지켜줄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중동 국가들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경제력을 키워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동이 한국 기업들을 선택한 이유는 정치적인 이유(미국, 이스라엘과 달리 부담이 덜한 국가)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부가적으로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 토탈 솔루션 등을 갖췄기 때문일 것이다.
※ 이 부분은 확실하지 않다.
이처럼 중동 국가들은 석유 이후 생존을 위해 IT·보안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고, 한국 기업들은 기술력을 인정받아 최적의 파트너로 선택받고 있다.
근무하며 접한 중동이라는 생소한 시장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해 자료를 찾다보니 중동 시장 진출은 단순한 해외 진출이 아닌, 정치적 흐름 속에서 한국 IT·보안 기업들이 새로운 기회를 잡고 있는 상황인 것 같다.
결국, IT/보안 업계의 중동 진출은 석유 이후의 생존 전략을 모색하는 중동과 기술 기반 성장 돌파구를 찾는 K-보안 산업이 맞물리며 형성된 기회라고 볼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