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혜 Feb 06. 2023

한국이 싫어서를 읽다가 월트디즈니를 생각했다


에버랜드에 가게 되면 놀이기구를 전혀 타지 않는 나는

그저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용(남편)과 아이들을 기다린다.

이전글  스타벅스에서 뜬금없이 짜증이 치밀었던 이유에서 언급한 적 있는데 , 그런 이유로 추운 겨울에는 에버랜드 입구에 자리한  스타벅스에 앉아 두세 시간 정도를 보내고는 한다.


에버랜드에 가기로 했던 전날 밤.

박완서 작가님의 수필집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읽을 요량으로  책꽂이에서 끄집어내어 식탁 위에 고이 올려 두었다.

그리고 이튿날 미리 준비해 둔 책을 가방에 주섬주섬 챙겨 넣었다.


"돌체 라테 아이스 그란데 사이즈로 주세요. 매장에서 마시고 갈게요."


속사포처럼 주문을 마치고 테이블 앉았다.

일단 시원한 라테를 한 모금 들이켠 후,

책을 꺼내어 첫 장을 넘는데,


어, 작가님 사진이 왜 이래 ,

그제야 어리석은 난 눈치를 챌 수 있었다.

다시 겉표지로 돌아와서 제목을 빠르게 읽어 내려본다.

아앗, 장강명 작가님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

치밀하지 못하고 엉성하여 빈틈이 있는 나는 또다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구나,


누가 뭐랄 것 없는 상황이지만

속상한 마음에 스스로를 토닥인다.

괜찮아. 책 표지가 이렇게도 비슷한 느낌 이잖아. 하하하,

애써 웃어보지만 어쩐지 그럴수록  입꼬리가 한쪽만  올라가 어딘가  비열해 보이는 얼굴이.



웃음을 거두고 , 그야말로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  속도감 있게 읽어 내려간다.

한참을 그러다가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술술 읽어버리는 것이 작가님에게 뭐랄까 조금은 죄송할 정도였으니까 ,


그러다 후반부쯤.

 어쩐지 낯이 익은 듯한 장면이 스멀스멀 떠오르는 듯  동화책에 대한 묘사가 눈에 들어다.

디즈니 그림 명작 전집의 파블로라는 펭귄의 이야기.



파블로는 펭귄이지만 추위를 싫어했어. 평소에는 이글루 안에 틀어박혀서 난로를 피우고 사는데, 친구들이 억지로 밖으로  불러내지. 그랬다가 물에 빠져서 몸이 꽁꽁 얼어서 집으로 돌아와. 커다란 얼음에 갇힌 파블로를 친구들이 난로 위에 올려서 녹이지. 파블로는 따뜻한 열대지방으로 떠나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해. 처음에는 아마 난로를 짊어지고 스키를 탔을 거야. 하지만 또 얼음 기둥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 다음에는 몸에 핫 팩을 두르고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 열대를 향해 걸어가. 그러나 이번에도 실패.  마지막에는 자기 이글루와 집 주변 얼음을 통째로 잘라 얼음 배를 만들어. 항해는 처음에는 순조로운 듯하지만 점점 배가 녹기 시작해. 나중에는 아주 작은 얼음 조각밖에 남지 않지. 그 얼음 조각이 녹아 사라지는 순간 파블로는 펄쩍 뛰어 자기 욕조에 들어가서는 그 욕조를 새로운 배 삼아 항해를 계속하지.
파블로는 결국 하와이처럼 생긴 섬에 도착해.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파란 바다 앞에 모래사장이 있고 야자수가 있고 거북이가 다녀. 마지막 장면이 이래. 파블로가 선글라스를 쓰고 야자수 사이에 해먹을 쳐서 그 위에 누워 있는 거야. 음료수를 마시고 부채를 부치면서, 그 아래 이런 멋진 글귀가 있었어.
"다시는 춥지 않을 거예요."  (한국이 싫어서 p156.157)

                                                       


 

소설 속 계냐와 지명이  헤어지는 부분에 쓰인 동화책의  묘사였기 때문에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

그렇지만 익숙했던 기억인 듯 아닌 듯하는 그 부분.

그야말로 한순간 스파크가 튀듯 사진처럼 저장된 기억이 머릿속에서 툭 튀어나와 결국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됐다.


 펭귄 파블로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

네이버 검색창디즈니 펭귄이야기로 먼저 입력해 본다.

다행히 어렵지 않게 금세 제목을 찾을 수 있었다.

추위를 싫어하는 펭귄.


그래 , 이거였어. 이 그림. 이 책이 바로 내가 찾던 거야 ,

동화책을 검색하고  마음이 더할 수 없이  따뜻해다.

어릴 적 정말 재미있게 읽었 너무 좋아했던 책 덕분에,



하지만  까맣게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래서 더욱 몹시도 반가웠던 이겠지,

이글루가 녹아 버려 아슬아슬했지만 결국 멋지게 욕조를 타고 따뜻한 곳을 찾게 된 파블로 대한 기억.


그중에서 마지막 그림을 특히 좋아했는데,

영혜 어린이는 야자수에 해먹을 걸치고 선글라스를 낀 채  거북이가 등껍질 위에 음료수를 얹어 가져다주는 그림을 보고 그렇게도  깔깔거렸다.

그리고 그토록 바라고 좋아했던 따뜻함을 여유롭게 즐기고 있는 파블로가 내내  행복하길 바랐을 것이다.


한국이 싫어서를 읽으 왠지 작가님께 혀 예상하지 못한 선물을 받은 듯하다.

한국이 싫어서원작으로 영화 제작하고 있다 는데 , 스크린으로 접하는 원작은 어떨는지 과연 기대된다.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정답고 포근하여 흐뭇한 월트디즈니의 동화.

어린 시절의 향수를 다시금 새롭게 일깨워 더할 수 없이 고맙게 여겨지는 날이다.






사사로운 덧붙임 이야기

호주에서는 이렇게 욕조통을 써서 호수에서 뱃놀이하던 남자가 욕조에 물이 차자 물을 빼러 물 위에서 욕조 마개를 뽑는 바람에 익사한 사례가 있다 한다.

어른이 된 지금 가슴을 쓸어내려본다.

영혜 어린이는 그 당시 욕조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

 어 저 멀리 따뜻하고 행복한 섬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골똘히 생각했다.

얌전해 보였으나 일단 , 호기심이 생기면 행동에 거침이 없었던 어린이였다.

그러니 욕조가 없는 집에 살았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 건가 ,







매거진의 이전글 여고시절 카레 떡볶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