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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혜 Apr 14. 2023

대화집


대화집엔 10살부터 살기 시작하게 된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전의 기억은 없지만 , 송정으로 이사를 와서부터 제법 또렷하기만 하다. 응열(아버지)은 그 무렵 본데없는 방황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의 나이 서른 즈음 그럴 수밖에 없던 명분이  한두 가지쯤 있지 않았겠냐 , 측은한 마음으로 어릴 적 나의 마음도 그 시절 그의 마음까지도  다독여 주고 싶다.

 대화집으로 세간을 옮긴 후부터  응열은 하루가 멀다 하고 빠져 살던 술독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열 살 이전에 기억하는 응열은 맨 정신일 때보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던 날이 많았다. 몸만 가누지 못했더라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터, 그가 술에 취해 터벅터벅 돌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주인할머니집에서 기르던 누런 진돗개가 날뛰며 짖기 시작했다. 그런 날이면 나는 공포감에 맥이 풀리고 마음이 졸아들었다.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없었다.

고작 여덟 아홉 살이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살아가는 것이 녹록지 않았던 미화(엄마)에게 나까지 덧붙이는 걱정이 되고 싶지 않았다.  울음소리가 혹여 새어 나갈까 봐 숨리도 죽여가며 큰 눈망울로 눈물만 줄줄 흘렸던 셀 수 없는 날들 아이에게 켜켜이 쌓여갔다.


무슨 연유 에서인지 어린 나로서는  상세히 알도리가 없지만 대화집에서 술에 취한 응열의 모습 딱 한번 마주했던 기억이 흡사 사진처럼 박혀있다. 그날밤은 여느 날과 달랐다. 술에 취해 있었지만 터덜터덜 걸어 들어오는 발자국소리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의 손에는 따뜻한 페리카나 양념치킨이 들려있었다. 응열은 우리더러 치킨을 맛있게 먹으라고 내밀었지만 , 어쩐지 나는 목이 메어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치킨을 결국에 먹었는지 어쨌는지는 가물가물하다. 그날밤을 마지막으로 응열은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 술에 취했지만 내내 기분이 좋아 보였던 처음 보는  모습이었.

이제부터는 응열이 회사에 매일매일  다닐 거라고 했다. 회사에 다니게 된 것도 기뻤지만 그보다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해 준 것이 뛸 듯이 기뻤다.  그날도 나는 숨죽여 목이 메도록 울었을 테다. 이상하게도 그날 흘린 눈물방울은 차갑지 않았다. 마음이 아프지도 않았다. 참 이상한 날이었다.


동네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주인할머니집을 대화집이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딱히 궁금하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는 못한다. 주인집에는 거동이 편치 않으시고 또  어느 날이면 아기처럼 행동하시곤 하는 할아버지도 살고 계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할아버지는 치매를 앓고 계신 분이셨다.

"영혜야 , 할머전화 좀 눌러다오."

이사를 하고 난 후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저녁마다 할머니의 수족이 되었다.


주인집의 건넌방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가 부르시면 쪼르르 달려가곤 했다. 어느 날엔 꾀가 나서 정말 할머니 방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 미화가 난처한 듯 웃어가며  나를 몰래 구슬렸기에 하는 수 없는 척 다녀오기도 했다.

"할머이가 미안하이, 자꾸 불러서. 귀찮제? 아이고 착하다. 오늘은 큰 딸네랑 막냉이 아들집만 눌러주면 된다."

할머니는 글을 읽을 줄 모르셨다.  

내가 학교에 갔다가 저녁을 먹고  숙제를 마칠 때면 "영혜야, "부르시곤 했다. 매일 부르시는 게 미안하셨는지 어느 날엔 한번에 제법 여러 군데 전화를 걸어달라고 하셨는데 , 사실 이게 더 고역이었다. 할머니의 전화가 한통 끝날 때까지 옆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다시 다른 집으로 전화번호를 눌러 드려야 하는데 , 혹여 통화내용이 길어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제 아무리 차분한 아이라도 내 집도  아닌 남의 집 안방에 얌전히 앉아 기다리고  있기란 여간 보통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미닫이문으로 열려있는 옆방에는 늘 몸이 불편하신 할아버지가 멍하니 앉아 계시거나 누워계셨는데  그게 썩 편치가  않았다. 어쩐지 무섭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대체 할아버지는 멍한 눈으로 날마다 무엇을 그렇게 보고 계셨던 걸까 ,

통화가 길어질 때면 할머니방을 괜히 둘러봤다. 세월에 바래서 누레진 벽, 반들반들 닳아진 방바닥. 벽한 켠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옷가지들. 깔끔하신 할머니 성격 탓에 하기만 했다.


늘 고맙다는 말과 함께 할머니는 어떤 날엔 사과를 두 알 쥐어주시기도 했고, 뻥튀기나 약과를 주시기도 했다. 음식을 잘하셨던 할머니는 곧잘  하얀 부침개를 부쳐 주시기도 했다. 김치를 한번 주욱 찢어 털어내셨는지 헹구신 건지 그대로 하얀 밀가루 반죽을 얇게 둘러 부쳐주셨는데  그게 어찌나 맛있었던지, 지금까지도 미화와 나는 대화집 할머니의 부침개보다 맛있는 것을  먹어본 적이 없노라며 군침을 꼴깍꼴깍 삼켜가며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면 나는 볼멘소리를 해댄다.

"그때 엄마가 할머니한테 배워놓지 그랬어." 미화는 배웠데도 어차피 그 맛은 따라가지도  못했을 거라며  배시시 웃는다.

 아이고 참 우리 미화 씨답다.  나는 이렇게  속으로 생각해 버리고 만다.


어느 날 미화는 쌓인 눈이 녹아  흘러넘치는 수돗가 옆에서 요강을 씻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그 눈 녹은 물이 어찌나 깨끗했던지 체증이 내려가는 것만 같았단다. 아무래도 이제 우리 집에는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고 흥얼거렸다.

나로서는 도무지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따 학교 끝나면 여기 말고 쌍둥이네 집으로 와. 영혜야  이제부터 거기가 우리 집이야. "

그해가 지나  국민학교 졸업을 하고 여름이 시작되기 전,  고단했던 13년의 단칸방 사글세 살이.

그것에 작별을 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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