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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군가의 일기장 Feb 20. 2023

나의숲 4화

소설

강의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조용한 방의 시계처럼 교수님의 구두소리는 온 감각을 집중시켰다. 50대 중후반의 인자하면서 무거운 인상은 왠지 모를 세월과 고뇌가 느껴졌다.  한 손에 든 녹차를 마시며 깊은 생각에 빠진 듯 어느 곳도 응시하지 않으며 고개를 아래로 두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강의실을 장악하던 교수님은 은은한 미소를 띠며 말을 꺼냈다.

노교수_ 날씨가 좋은 날이에요 그죠?

학생들_네~

교수님은 점퍼 호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작은 흰색 꽃을 꺼내 보여주었다.

노교수_오늘 학교에 올라오면서 매화꽃이 떨어져 있길래 주어왔는데 참 예쁘지 않나요. 저는 한 번씩 이 꽃을 보게 되면 기분이 좋아져요.

학생들은 예상외의 순수한 아저씨의 모습에 잔뜩 들어있던 긴장을 풀초등학교 선생님의 말을 듣듯 편안히 책상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노교수_저도 여러분 나이에 지금 아내를 만나게 되었는데요. 이 계절쯤에 요새 흔히 말하는 썸 같은 것을 타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워낙 눈치도 없고 소심해서 마음표현을 망설이곤 했었는데  모습에 아내는 저에게 편지로 이런 말을 보냈었어요.

"눈이 오는 날 고백을 받고 싶다."

당시에는 남자들이 고백하던 시절이었으니 아내 입장에서는 이번 겨울에 마음을 확실히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의 말이었죠. 

하지만 저는 그 의미를 나중에 이해했고 아내는 단단히 삐져있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어요. 그래서 내 마음을 어떻게 전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벚꽃이 피어 눈처럼 내리는 날 벚꽃나무 아래에서 고백을 하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 벚꽃이 피는 날만 간절히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학교를 올라오다가 이 매화나무를 발견하게 되었어요.(작은 꽃잎을 위로 올리며)

피식- 여러분들도 보시면 겠지만 하얀 꽃잎이 벚꽃이랑 닮아서 저는 급한 마음에 완전히 벚꽃이 핀 시기라고 생각했던 것이었죠. 그래서 아내를 찾아가 중요한 할 말이 있다며 강변에 데려갔고 강변은 마을에서 유명한 벚꽃나무들이 하늘을 덮는 산책길이었어요. 

하지만 벚꽃은 온데간데없고 앙상한 나뭇가지랑 둘만 덩그러니 길에 서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세상에서 가장 멋없는 고백을 했습니다.

"눈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벚꽃이 아니라 매화꽃이었다..."라고 말하며 호주머니에 있던 작은 매화꽃을 아내의 손에 얹어주었어요. 

그래도 마음이 닿았던 걸까요. 아내는 발그레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꽃잎을 쥐던 손으로 나의 손을 잡았고 그녀가 저에게 고백을 하여 지금의 아내가 되었답니다.

몽글한 이야기를 듣던 학생들은 감격에 차올랐는지 흐뭇한 미소를 짓고 몇몇 학생은 박수를 쳤다. 현경과 해윤도 감정이입을 하여 자기 이야기인양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교수님은 순간 아련해졌는지 창 밖을 바라보다가 차 한 모금을 마시며 말을 이어갔다.

노교수_여러분들도 언젠가 이 꽃에 여러분이 담기겠죠. 세월이라는 것은 하나하나에 내가 담기는 일인 것 같아요. 제가 매화꽃을 보면 순수한 마음과 아내가 떠오르듯이 세상을 보면 나만이 떠오르는 것이 생길 거예요.

사람을 보면 사랑이 떠오르고 자연을 보면 감사함이 떠오르고 꽃을 보면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 그것은 자신만의 일이겠지요.

 앞으로 대학생활을 하면서 많은 일들과 사람을 만나게 되겠지만 세월이 지난 후 내가 떠올리는 모든 것들은 내가 만들어가고 내 마음에 달려있음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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