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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mena May 12. 2022

태양의 마법, 스웨덴에서 햇빛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리고 동지에서 하지까지

많은 사람들이 스웨덴,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케아를 필두로 하는 모던하고 세련된 인테리어, 볼보, H&M과 같은 다국적 기업들, 혹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라는 문구로 익숙한 복지 국가의 이미지일 것이다. 그 뒤를 키가 훌쩍 크고 세련된 사람들, 춥고 어둑어둑한 날씨 등이 따르지 않을까 싶다. 


스웨덴에 석사 공부를 하러 오기 전에 가장 염려했던 부분은 재정 문제와 취업, 그리고 전공 공부의 실효성이었다. 스웨덴어는 못했지만 영어가 -통해도 너무 잘- 통하는 나라이니 문제될 것은 없었고, 같은 도시에 친한 스웨덴 친구가 사는 데다가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친구 사귀는 데에 익숙해진 덕에 인간 관계는 걱정도 안했다. 8월 말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새벽같이 해가 뜨는데다 밤 9시가 되어야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따끈한 늦여름이어서 다가올 겨울에 대해 경고하는 친구들의 말을 흘려들었다. 당시 나의 단골 멘트는, '한국이 스웨덴보다 훨씬 더 춥다' 였다. 시베리아의 바람이 불어와 영하 10도는 우스운 날들이 며칠씩이나 이어지는 도시에서 왔다고, 찾아보니 영하 5도 밑으로 내려가는 날도 많지 않던데 다들 유난이라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가을이 되고, 겨울이 가까워오기 시작하니 다른 문제가 생겼다. 바로, 일조량이었다.


스웨덴은 중부에 위치한 수도 스톡홀름을 기준으로 무려 북위 59도에 위치한 명실공히 '북'유럽 국가이다. 내가 사는 도시는 남부 해안가에 위치한 항구도시 예테보리 (Göteborg, 영문명 Gothenburg)로, 이들 기준에는 '남'스웨덴이다. 하지만 그래도 위도가 북위 57도는 된다. 그 말인즉슨, 백야와 극야가 번갈아가며 찾아온다는 뜻이다. 


가을이 되어 날씨가 싸늘해지기 시작했을 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해가 쨍쨍 내리쬐어 선글라스 없이는 물가를 걷기도 힘들던 여름과는 정반대의 회색빛 하늘이 한달 내내 이어졌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게 아니라 서해안의 칼바람에 가로로, 혹은 아래서 위로 마구 날려댔다. 우산을 쓰는게 아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바람이 불어댔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새벽 5시면 방을 훤히 밝히던 해는 점점 게을러져 7시, 8시가 되어도 세상을 비추지 않았고 그나마 9시가 넘어 해가 좀 보일라치면 흐린 구름 뒤에 숨어서 이 세상이 망하지는 않았음을 간신히 알려주었다. 한국에서는 팥죽을 먹는 동지 (冬至)가 되자 일조량은 극단적으로 줄어들었다. 10시는 돼야 해 비슷한 게 떴고, 대학원 수업을 마치는 3시가 되면 이미 바깥은 어두캄캄했다. 스웨덴에서 가장 처음 배우는 속담이 있다.  '나쁜 날씨는 없다. 나쁜 옷만이 있을 뿐이다 ('Det finns inga dåliga väder, bara dåliga kläder')' 이 속담의 교훈을 따라 따뜻한 옷을 입고, 우비와 레인부츠로 무장하고 다니면 축축하고 서늘한 날씨는 견딜만 했다. 하지만 뜨지 않는 태양을 위한 조언은, 비타민 D를 꼭 챙겨먹으라는 것이 유일했다. 


한결같이 우중충했던 겨울의 어느날


10월쯤부터 눈에 띄게 짧아진 해가 12월 중순을 지나며 그 정점을 찍었을 때에는, 학부 전공에서 배웠던 아즈텍 문명의 태양의 신에게 바치는 인신공양마저 떠올랐다. 어디 동산에라도 올라 커피 한잔 떠놓고 기우제 아닌 기일제라도 지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중부 유럽 이남, 혹은 아시아, 중남미에서 온 친구들은 모두 학을 떼며 비타민 D를 잊어버리지 말고 먹자는 이야기를 안부인사로 나누었고, 북유럽 근방 국가 혹은 캐나다 등지에서 온 친구들은 긴 어둠에 그나마 익숙해 보였다.


그중 가장 타격을 받은 것은 나였다. 춥긴 해도, 겨울에도 쨍한 햇살을 보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해외 생활 중 가장 긴 시간을 보냈던 곳이 파나마였다. 파나마는 적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북위 8도에 위치해 있다. 우기와 건기를 제외하고는 계절이랄 것이 없으며, 연중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칼같이 일정한 곳이다. 최저 기온이 23도에, 밤에도 30도를 웃도는 날이 드물지 않은 뜨끈한 찜기 같은 열대 우림 지역에서 몇 년이나 지내다가 하필 온 곳이 스웨덴이라니. 평생 우울하다거나 무기력하다는 말이 뭔지도 모르고 살아온 나였는데, 이곳의 겨울을 지내면서는 정말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날 기력도 없고 억지로 일어나면 억울하고 허무한 감정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집안에 있어도 손과 발이 시려워서 한국에서 가져온 전기장판이 있는 침대가 유일한 위로처럼 느껴졌고, 이 모든 현실이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공부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모두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과제처럼 나를 짓눌렀다. 뜨거운 샤워를 하거나, 친구들과 홈파티를 하며 도수가 제법 높은 칵테일을 만들어먹을 때에나 겨우 몸이 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동지를 지나면 좀 나아지나 했더니, 1월이 지나고 2월이 되어도 유의미한 일조량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었다. 특히 2월에 코로나에 걸려서 약 2주간 집에서 자가격리를 했을 때는 정말이지 하루를 살아내는 게 고역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온라인 강의를 하고, 논문을 읽고, 또 온라인으로 학교 수업을 듣고, 스웨덴어 공부를 끄적거리다 보면 밥먹을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내 안에 남아있는 원시인이 매일같이 소리를 질러댔다. 햇볕을 달라고, 태양이 내리쬐는 곳으로 좀 가자고, 도대체 해는 언제 뜨는 거냐고. 정신적으로 힘이 없으니 평소같으면 별것도 아닐 일들도 무겁게 다가왔다. 괜히 잘 해나가고 있던 전공 공부도 걱정되고, 사이 좋기만 한 친구들과의 관계도 허무하게 느껴졌으며, 코로나조차 잘 이겨낸 건강한 몸이 건사하기 힘든 짐짝처럼 느껴졌다.




4월의 꽃이 만개한 캠퍼스


 이 모든 시기가 지나고 난 5월의 오늘에 이 글을 쓰자니 무척이나 오버스럽게 느껴지는 이 감정이 그 당시의 일기에는 매일 매일 똑같은 감정과 언어로 적혀있었다. 다행히, 3월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급작스럽게 길어지기 시작했고, 새파란 하늘에 해가 쨍 하고 뜨기 시작했다. 4월까지도 간혹 눈이 오긴 했지만, 거리에는 꽃이 피기 시작했고, 디자인 강국답게 그냥 동네 화단의 조경조차 아름다워서 매일 길을 걸을 기분이 났다. 한낮의 태양은 뜨거워서 다들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돗자리와 담요를 챙겨들고 공원으로 삼삼오오 모여 피크닉을 했다. 그제야 모두가, 그리고 특히 내가 겨우 내 지고 있던 어둠의 무게가 모두의 얼굴에서 사라졌다. 끝이 안보이는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가진 첫 피크닉에서는 모두가 선글라스를 끼고 너무 눈이 부시다며 불평 아닌 불평을 하고, 얼음이 너무 빨리 녹는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한달, 두달이 지나고 해는 점점 더 길어져 밤 9시가 되어도 밖이 어둡지 않다. 하루에 2분씩 해가 지는 시간이 늦어져 6월 말 (올해는 6월 24일이다)의 하지(midsommar)가 되면 밤 11시가 되어야 해가 뉘엿뉘엿 지는 척을 한다.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다시 해가 짧아지기 시작한다. 하루가 다르게 길어지는 해를 보며 모두가 속으로 태양의 시간을 다시 카운트 다운을 하기 시작했다. 두달 쯤 후에는 다시 해가 짧아지기 시작할 것이고, 또 길고 지난한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지구가 삐딱한 자세로 기울어져 태양을 도는 한 매년 반복되어왔고, 반복될 우울의 계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겨울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 한켠에 무겁게 젖은 솜같은 먹구름이 불쑥 끼기도 하지만, 북구의 겨울이 괴로움만을 선사한 것은 아니다. 



Eurostat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유럽인의 7.2%가, 그리고 스웨덴 사람 중 약 11.7% 가 만성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출처: https://ec.europa.eu/eurostat/web/products-eurostat-news/-/edn-20210910-1#:~:text=In%202019%2C%207.2%25%20of%20EU,and%20Croatia%20(both%2011.6%25).). 계절성 우울증, 그리고 경미한 우울증을 포함하면 그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사람들 (*여성의 50%, 남성의 25% 가량 - 출처: https://www.1177.se/en/Jonkopings-lan/other-languages/other-languages/student-english/mental-health/depression/) 이 우울증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우울은 그들에게 친숙한 단어이다. 친구들과의 커피 모임에서 날씨 얘기를 하다가 자신이 복용하는 약 이야기로 넘어갈 수도 있으며, 국가에서는 상담 핫라인과 다양한 형태의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을 지원한다. 대학교 내에서도 스웨덴어와 영어 등으로 이루어진 상담 세션을 지원하는 등 개인과 기관이 모두 시민들의 정신 건강 상태에 세심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겨울에 모이기만 하면 우울감,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친구들을 일컬어 이 나약한 유럽 놈들이라며 대만 친구와 농담을 했던 적이 있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우울증이 누구나 쉽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주제는 아니다 보니, 우울증이 가벼운 커피 토크가 되는 분위기가 무척 낯설었다. 룸메이트가 처음 자신의 우울증과 복용하는 약에 대해 이야기 했을 때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라 조금 난감해했던 기억도 있다. OECD의 2020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코로나 이후 우울증 발병률이 36.8%에 육박한다고 한다. 이는 앞서 말한 스웨덴 및 유럽보다 훨씬 높은 수치이다. 가용 통계자료의 부족과 데이터의 신빙성을 차치하더라도, 1/3이 넘는 국민이 우울증을 경험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각종 압박과 취업난, 노인 빈곤, 성차별 등을 생각했을 때 높은 스트레스 레벨이 놀랍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정과 정신 건강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놀라울 뿐이다. 


스웨덴의 차갑고 무거웠던 겨울이 남긴 것은 긴 우울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우울을 찬찬히 들여다 보고 스스로를, 또 타인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 지 사색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오늘 하루는 비가 좌에서 우로, 또 우에서 좌로 내리다 해가 질 무렵에야 비가 그치고 맑게 개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오락가락하는 서쪽 해안의 날씨처럼, 우리의 마음도 때로는 비가 오고 또 햇볕이 든다. 맑은 날만 날이 아니듯, 때로는 재미없고 무거운 우리의 흐린 날들도 사랑하고 돌봐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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