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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mena Nov 17. 2022

두유 노 아바?

스웨덴의 음악적 성과와 기업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교육과 문화

두유 노 강남스타일? 두유 노 박지성? 외국인을 만나면 한국인들이 무조건 물어본다는 이 질문들은 이제는 어느 정도 자조적인 농담 섞인 표현이 되었다. 외국인들이 몇 명의 유명인을 안다고 해서 국격이 높아지거나, 그로 인해 내가 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스몰톡은 상대방이 나의 배경과 출신지에 관해 조금이라도 아는 게 있는지,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스웨덴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 누구도 이름을 모르거나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소국이 아님에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스웨덴에 관해 잘 모른다. 한국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못 봤어도, 한국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어떤 언어를 쓰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스웨덴 사람들 역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대화할 때 두유노...? 로 말문을 열기도 한다. 오래된 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전통과 혁신의 나라, 스웨덴. 천년도 더 전에 이 땅에서 시작해서 유럽 전역을 쓸고 다닌 바이킹의 진취적인 기상을 이어받아 세계로 진출한 기업들이 이끌어 나가는 나라다. H&M, 볼보, 이케아, Scania 등 쟁쟁한 산업군 기업들이 스웨덴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널리 알려진데 반해 스웨덴의 소프트 기업들은 스웨덴 표라는 딱지를 뗀지 오래인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면 스포티파이, 에릭슨 (현재는 소니-에릭손), 스카이프 등이 그 예다. 위의 기업들 중 일부는 이제 다국적 기업이 되어 스웨덴 회사라고만 부를 수는 없어졌지만, 그 시작이 스웨덴의 자유와 혁신의 유산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아니다. 스웨덴의 가장 큰 수출품은 바로 음악이다. 각 멤버들의 이름 첫글자를 따서 그룹명을 만든 ABBA는 1974년 유로비전에서 우승하면서 (이 부분은 펍 퀴즈 단골 출제 항목이니 기억해두시길!) 전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었다. 올해 초 다시 뭉쳐서 새로운 앨범을 내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들의 노래는 영화와 뮤지컬 등으로 만들어지면서 그 자체로 거대한 산업이 되었고, 스웨덴 사람들의 일상과 삶 전반에 녹아 있는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아비치, 자라 라슨, 토베 로, 호세 곤잘레스, 스위디스 하우스 마피아, 로빈, 유럽 (The Final Countown을 부른 밴드), 아이코나 팝 등 팝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라면 어! 할 만한 쟁쟁한 뮤지션들이 모두 스웨덴 출신이다. 가수 뿐만 아니라 음악 제작자인 맥스 마틴을 빼놓을 수 없다. 그게 누군데? 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맥스 마틴은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Millenium 앨범과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Baby One More Time 앨범의 곡들을 작곡 및 공동 제작한 프로듀서다. 물론 그의 커리어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핑크, 셀린디온, 본조비, 켈리 클락슨, 아담 램버트, 케샤, 마룬5, 저스틴 비버, ... 팝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이름은 분명 들어봤을 쟁쟁한 미국 팝 아티스트들의 수많은 히트곡 뒤에 바로 맥스 마틴이 있다. 


스웨덴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하는 이유 가운데 그들이 어려서부터 팝 음악과 미국 영화와 시리즈 등을 자연스레 접하면서 자라난 것이 대표적인 이유로 꼽히곤 한다. 하지만 분명 스웨덴은 탄탄한 자국 문화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팝 음악 외에도 스웨덴 전통 음악, 스웨덴 힙합, 스웨덴 팝 등 다양한 장르가 탄탄한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스웨덴은 이토록 미국 문화가 강세인 현 시대에도 인구 천만의 나라로서 자신의 음악 정체성을 지키고 또 세계에서 사랑받는 아티스트를 키워낼 수 있었을까?


스웨덴에서는 아이들이 어릴 때 원하는 악기를 접하고, 이를 배울 수 있도록 해주는 방식이 공공 교육 시스템 내에 포함되어 있다. 멜로디언이나 리코더같이 비교적 접근성이 좋은 악기 외에도, 바이올린이나 트럼펫, 드럼 등 가정에서 손쉽게 접하기 어려운 악기들 역시 학교 차원에서 구하거나 코스를 마련해서 다양한 악기에 대해 배울 기회를 준다. 물론 전 국민이 훌륭한 아티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음악을 하나의 과목이 아니라 인생의 일부이자 즐거운 과정으로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시끄러운 메탈이 흘러나오는 헤드폰을 꽂고 있어도 아무도 문제아 취급하지 않고, 브라스를 배우고 싶으면 배워볼 수 있고, 부잣집 자제가 아니어도 클래식 악기를 배우고 오케스트라에 지원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나 해! 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된다. 취미 활동에 시간을 쏟는 것은 스웨덴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고, 오히려 운동이나 음악 등의 취미가 없이 방에 쳐박혀서 공부만 하는 것은 부모님의 걱정을 사는 무시무시한 행위이다.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때 음악과 체육 시간은 자습을 할 수 있도록 수업을 면제받고, 야간 자습까지 합치면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학교에 머물렀고, 또 집에 가서 자정까지 공부를 하다 자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모든 스웨덴 친구들이 기겁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의아해한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공부를 하면, 취미 생활은 언제 해? 모든 사람이 연구자가 되는거야? 


야간 자습 시간에 새로 나온 앨범을 들으려 몰래 이어폰을 꽂고 낮은 볼륨으로 도둑 청취를 했던 17살의 내가 책을 덮고 바로 집에 가서 피아노를 연주했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고, 직업도 갖지 못하고, 사회의 낙오자가 되어 길거리에서 멜로디언을 연주하며 구걸하고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두유노 싸이? 두유노 김연아? 두유노 박지성? 뛰어난 재능과 가정의 지원, 그리고 개인의 고된 노력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이루어낸 이들을 한국이라는 나라가 키워낸 것만으로 착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모든걸 일구어낸 자수성가형 인물에 대한 신화적 존경 역시 건강하지 못하다. 우연히 천년에 한번 찾아오는 천재보다는, 모든 이가 스케이트를 한 번이라도 타봤고, 디제잉을 해봤고, 자습 대신 공을 뻥뻥 차는 경험을 해보는 사회가 보다 건전하고 행복한 사회일 것이다. 





(커버 이미지: 스톡홀름을 기반으로 한 맘마미아 컨셉의 파티&디너쇼 '맘마미아' 포스터, 출처: https://www.mammamiatheparty.com/s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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