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시간 개와 함께 해온 스웨덴의 반려견 문화
오늘은 스웨덴의 반려견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글의 제목, 그리고 이를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 이미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스웨덴에서 개로 산다는 건 무척 복받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개는 가족의 일부이며, 따라서 어딜 가든 가족과 함께 한다. 혹은 최소한 이 개와 잘 아는 사이인 가정에 맡겨진다. 하루 최소 2=3회의 산책은 무조건 필수이며, 견종과 배변 패턴에 따라 4회 이상 나가는 집도 있다 (바로 우리 개). 개에게 있어 산책이란 인간에게 있어서의 산책과 다르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하면 좋은 산책같은 활동이 아니라 오히려 외출, 혹은 일과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요즘에는 세나개 등의 프로그램, 그리고 전문 훈련사의 등장과 인기 덕에 반려견 문화에 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한국에서는 반려견이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에 산책을 몇 번 하는지를 묻는 설문지가 존재한다. 드넓은 개인 소유의 목장에 개를 풀어놓고 키우는 집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내내 바깥에 나가보지도 않은 개가 투성이다. 시골에 1미터 짜리 목줄에 매여 평생을 살며 사람만 보면 짖고, 개의 건강에 치명적인 인간 음식 잔반, 소위 짬바를 먹으며 살다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개들의 삶의 질은 말할 것도 없고, 제법 사랑받고 산다는 '애완견' 역시 행복한 개의 삶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산다는 것이 한국의 슬픈 현실이다. 산책을 워낙에 안하니 한 번 밖에 나가면 익숙하지 않은 목줄에 불편해하고, 개 사회성이 발달하지 못해 다른 개를 보기만 하면 맹렬히 짖고 달려들려고 하고, 그 모든 문제의 원흉인 주인은 배변봉투를 들고 나오지조차 않는다. 그래놓고 개가 뭔가 잘못하면 목줄을 홱 잡아채며 위협적으로 개를 나무라기 바쁘다.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 바로 옆 길에서 콜링 (*이름이나 특정 신호를 부르면 반응하여 주인에게로 오는 훈련)도 안된 개의 목줄을 풀어놓고, '자유를 주는 거라며' 항변한다. 사람 많고 개 많은 서울에서 개와 함께 살았던 짧은 시간 동안 그전에 평생동안 겪어보지 않은 별 일을 다 겪었다. 말하자면 길고 성질을 돋우는 이야기들 뿐이니 생략하기로 하고, 그 대신 스웨덴의 반려견 문화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선 사진 속 우리 개 '빅터'는 유기견 출신으로, 모 지역 동물보호소에 공고가 올라와 있던 것을 한 단체에서 보고 구조하여 약 2년 반간 보호하다가 우리 가족과 연이 닿아 임시보호에서 입양까지 이르게 된 케이스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한국의 국가에서 운영하는 지역별 동물보호소는 대부분 무척 열악하다. 시설 자체가 열악한 것은 물론이고, 일부 지역에서는 해당 업무를 동물 병원에 위탁을 맡기거나 혹은 사설 기관에 위탁을 맡기는데, 이 사설 기관이 도살장 혹은 개장수 소유인 경우가 적발된 적도 있었으니 그곳에 소속되어 있던 동물의 처우에 관해서는 말 다했다. 빅터 역시 일종의 장염에 걸려 있는 채로 구조되었고, 구조 단체에서 보호받던 기간 동안에 병은 금세 나았지만 수많은 다른 개들과의 단체 생활이 아무리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길을 떠돌다 구조된 빅터는 어쩌다가 스웨덴 사람이 있는 우리 가족을 만나서 스웨덴까지 함께 오게 되었다. 긴 시간을 켄넬(*강아지 이동장)에 갇혀 비행기 화물칸에 실려 오느라 고생했지만, 스웨덴에 도착한 후 강아지 빅터의 삶의 질은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 됐다. 재택근무를 하는 가족과 하루 종일 함께 있고, 하루에 4번 꼬박꼬박 외출을 하는 것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좁은 길에서 마주치는 다른 사람이나 사납게 짖는 개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며, 뜨거운 아스팔트나 강아지의 발에 치명적인 염화칼슘을 뿌린 눈길 대신 폭신한 풀밭과 흙밭을 걷는다. 상대 견주의 강요로 인사하고 싶지 않은 개와 억지로 인사하지 않아도 되며, 소리를 지르며 코 앞까지 달려와 위협하고 개의 반응을 보려는 어린이도 없다. (그렇다, 이 모든 일은 서울에서 개와 산책하는 견주들이 매일같이 겪는 일의 일부다.)
스웨덴에서 길을 걷다 보면 지겹도록 보는 것이 개와 산책하는 사람들이다. 이른 아침, 새까만 밤, 직장인들이 한창 일할 오후 시간, 눈 비가 오는 날을 가리지 않고 하루 종일 밖을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개들이 수두룩하다. 모든 스웨덴 사람이 다 집에서 일하면서 하루 2-3시간을 개에게 할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가족 구성원, 혹은 이웃과의 상부상조, 혹은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개 시터 서비스를 통해 산책과 배변을 위한 최소한의 개의 삶의 질을 보장한다. 하루에 6시간 이상 개를 혼자 두는 것이 불법이라고 들은 적이 있는데, 정확한 법 규정과 실효성에 관해서는 확언하지 못하겠다. 분명한 것은, 스웨덴에서 개를 키우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개를 6시간 이상 혼자 둔다는 것을 상상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식사, 배변, 외출 등 몇 시간마다 챙겨야 할 일이 있는데, 밖에서 혼자 돌아다니고 사냥해서 끼니를 해결하는 야생 들개가 아닌 이상 그렇게 오랜 시간 혼자, 특히 집안에 가두어 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스웨덴에 와서 놀랐던 또다른 점 중 하나는, 유기동물 보호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사정 (주인의 급작스러운 사망, 사고 등)에 의해 보호소에 입소한 동물들이 있긴 하지만, 휴가철이 되면 여행지에 개들이 버려지는 등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일랜드, 스페인 등의 이웃 나라에서 유기견을 데려오는 경우도 많고, 사실 많은 경우 공식 인증은 받은 업체 혹은 가정에서 분양을 받는다. 정확히 말하면 특정한 개를 정해서 돈을 주고 사는 것이라 개인적으로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과정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사지 말고 입양해 달라고' 호소해야 하는 버려진 개가 문제가 될만큼 많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웨덴에 관한 글을 쓰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스웨덴은 인간에게도, 그리고 동물에게도 참 살기 좋은 나라다. 모든 구성원이 최대의 행복을 누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명화된 인간 사회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불행 -이를테면 가난, 차별, 폭력- 을 최소화하는 데 가장 성공에 근접한 모델을 구현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빈부의 격차가 없을 수는 없되, 그 누구도 가난으로 인해 교육받지 못하는 일은 없고, 굶지 않아도 된다. 인종과 출신국, 성별에 의한 차별이라는 인간 본성과 오래된 사회 관념을 완전히 바꾸거나 그런 행동을 막을 수는 없어도,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동물 역시 마찬가지다. 이곳에 사는 동물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법이 마련되어 있고, 사회 구성원들이 이에 대해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더욱 발전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무시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먹고살만하니 그런 여유가 있는 거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 또한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세계 경제 규모 10위권에 해당하는 한국이 먹고살만하지 않은 나라인가 하면 그렇지 않지 않은가. 스웨덴에 와서 살면서 이 나라에 태어나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 부럽다고 느낄 때마다, 이 나라의 저력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한국인들이 덜 똑똑한 것은 결코 아니며, 덜 근면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몇십년 전만 해도 스웨덴 역시 이렇게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었다. 차별과 폭력, 가난이 팽배한 시절이 있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언젠가, 머지 않은 미래에 한국에서는 인간 팔자 상팔자, 라는 말이 당연하게 들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 글을 쓰는 한 시간여 동안 새하얗게 눈이 쌓인 창밖으로 두꺼운 옷을 꽁꽁 싸맨 주인과 함께 소복히 쌓인 눈이 마냥 신난 댕댕이들이 열댓 마리는 지나갔다. 꼬리가 날아갈 듯한 개들 뿐만 아니라 차가운 뺨을 붉힌 견주의 얼굴 또한 행복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