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복장이 있을뿐
스웨덴 사람들은 낯을 가리고, 낯선 이와는 쉽게 대화를 시작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스몰톡을 해야 한다면, 스웨덴 사람들이 택하는 주제는 언제나 '날씨'다. 오늘 날씨 참 좋죠? 네,
햇살이 포근하네요. 와, 오늘 정말 춥네요. 맞아요, 바람이 심해요. 날씨만큼 개인적인 상황이나 감정을 배제하고 대화를 열 수 있는 주제가 없어서 그렇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날씨가 그만큼 스웨덴 사람들의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렇다. 대중교통이 잘 발달해 있고, 따뜻하고 안전하게 실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갖은 날씨에 대응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춘 나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사람들의 생활은 아웃도어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이를테면 수도인 스톡홀름을 제외하고는 지하로 다니는 지하철이 없다. 트램, 버스, 페리(!) 등 모두 지상과 물 위를 달리는 교통수단이다. 그러니 자연히 정거장도 밖에, 갈아타는 길도 밖이다. 땅이 넓고 사람이 적다 보니 굳이 땅을 파고 터널을 이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엄동설한에도 얇은 운동복을 입고 조깅을 하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으며, 특히 유모차를 밀고 산책하는 엄마와 아빠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날씨가 춥다고 해서 집안에만 웅크리고 있는 건 스웨덴 사람들의 스타일이 아닌 것이다. 물론 스웨덴 사람들이 실내 인테리어를 사랑하고, 집을 아늑하게 꾸며 겨울을 최대한 아늑하게 보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4시나 5시면 칼퇴해서 친구들을 만나는 대신 집에서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일과에는 아침 운동, 혹은 저녁 산책 등 야외 활동이 꼭 포함되어 있다. 추운 계절이니까 3일 내내 밖에 나가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주에 썼던 반려견 산책 문화가 이들에게는 여러모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 이들은 타고나길 바이킹의 후손이라 안 추워서 그렇게 밖을 얇은 운동복 하나 덜렁 입고 뛰어다니는 것인가? 아니면 영상 35도와 영하 20도를 오가는 한국에서 자란 한국인이 견뎌볼 만한, 생각보다 만만한 겨울 추위 때문인가? 스웨덴에서 그나마 덜 춥다는 남쪽 지역에 살고 있지만, 한국이 영상 15도를 웃돌며 친구들이 예쁜 가을 코트로 멋을 부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던 11월부터 이곳은 이미 최고 기온이 연일 영하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이 아무리 춥고, 이곳은 난류가 흐른다 어쩐다 해도, 그래도 여긴 북유럽이다. 위도가 무려 60도에 이른다. 38선이 위도 38도에 그어진 선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스웨덴이 얼마나 북쪽에 있는 나라인지를 알 수 있다. 그리하여 12월에 들어서는 낮에도 영하 5도를 밑도는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나 예테보리는 습도가 높은 서해안의 강바람인지 바닷바람인지가 매섭게 불어제껴 같은 온도에도 피부를 에일듯한 추위가 느껴지는 곳이다. 하지만 내가 추위에 관해 불평할 때마다 스웨덴 사람들이 늘 하는 얘기가 있다. '세상에 나쁜 날씨는 없다. 나쁜 옷이 있을뿐. (Det finns inget dåligt väder - bara dåliga kläder.)' 이라는 속답이다. 하도 귀에 딱지가 앉게 들어서 친구들이 det finns..를 시작하면 아 알았다고! 하고 입을 막을 지경이 되었다.
스웨덴 사람들에게 있어서 추위란 극복해야 할 대상도, 두꺼운 벽을 바른 집에서 피해야만 하는 대상도 아니다. 날씨는 겨울이 되면 자연히 추워지는 것이고, 이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불평해도 소용 없는 자연의 이치가 날씨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대상인 것이다. 그러니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화를 내거나 서러워하는 대신 그저 꽁꽁 잘 싸매는 것이다. 특히 상의는 여러 겹으로 레이어를 해서 입고, 얼어붙은 눈길에 대비한 기능성 부츠는 필수다. 추운 겨울철 시내에 나가보면 비니를 쓰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렇게 겨울철 복장을 중요시 한다면서, 기본적으로 스웨덴은 '얼죽코'의 나라다. '얼어 죽어도 코트'를 입는 간지에 살고 간지에 죽는 이들을 농담삼아 부르는 표현인데, 겨울 낚시나 스노우보딩을 하러 가는 등이 아니라면 굳이 산악용 패딩을 입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최근 몇년간은 스웨덴 사람들도 롱패딩을 즐겨 입기 시작했고, 길에서 패딩 입은 이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지만, 한국의 고등학교 등교길에서처럼 다같이 발목까지 오는 검은 패딩을 입고 온몸을 감싼 모습은 보기 어렵다. 역시 바이킹의 후손이라 추위를 덜 타는걸까.
내가 친구들에게 잔소리를 듣는 이유는 주로 두가지다. 추워 죽겠다면서 도대체 왜 비니는 안쓰고 다니는 것인지, 왜 스웨터를 여러겹 더 껴입지 않는 것인지가 그 두가지 이유다. 비니를 쓰면 확실히 따듯하다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동양인 머리칼의 특성 때문인지 비니를 한번 쓰면 그 후로는 도저히 비니를 벗고 있을 수가 없다. 아침에 머리를 감았어도 한 열시간 자고 일어난 사람처럼 머리가 떡진 듯 두피에 딱 붙어버려, 비니를 벗고도 슥슥 뒤로 넘기면 비니를 쓴적 없는 폭신폭신한 볼륨이 와성되는 그들의 가벼운 머리와는 다르단 말이다. 그래서 하루종일 비니를 들고 다니다가 주로 추운 밤 귀갓길에 비니를 쓰는 편이다. 친구들은 너 모자 있었으면서 춥다면서 왜 안썼어? 하고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바라보기 일쑤다. 두번째로 옷을 여러 겹 껴입는 데에 관해서는 또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요즘에야 와이드 핏이 유행이라지만, 일부러 큰 사이즈의 옷을 사 입는다는 건 내게 좀 낯선 일이다. 그리고 한국은 어디든 실내에 들어가면 몸이 노곤해질 만큼 따뜻하지 않은가. 그러니 실내복을 과도하게 껴입으면 겉옷을 벗어도 답답하게 하루를 보내야 한다. 매번 탈피하듯 한 겹씩 옷을 벗었다 입었다 하기도 귀찮고, 무엇보다 한국의 대중교통, 사무실과 강의실 등에서는 내 옷을 마음껏 쌓아두고 입었다 벗었다할 만큼의 공간이 없다. 그럼에도 추위 앞에 장사 없다고, 이곳에서는 나도 옷을 여러 겹 껴입고 머리가 눌리든 말든 비니를 쓰곤 한다. 귀가 찢어질 것같이 추운데 어쩌겠는가.
사실 추위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바로 어둠이다. 아침 8-9시 사이에 희끄무리하게 뜬 해가 2시 반이면 뉘엿뉘엿 기운다. 나는 강가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하는데, 오늘 3시에 런치 예약이 있다며 동료가 테이블 조명을 꺼내는 것이다. 런치라며? 하고 조명을 치우려 했더니 '윤지, 스웨덴 3시는 조명이 필요한 시간이야' 라며 아직도 스웨덴을 모르냐는 얼굴로 라이트를 켜기 시작했다. 맞는 말이다. 스웨덴에서 겨울의 오후 3시는 이미 어둑어둑하다 못해 해가 진 시간이다. 그로부터 약 17시간이 지나 아침이 오기까지는 길고 긴 밤이다. 하루에 해가 떠 있는 시간이 고작 6시간 가량밖에 안된다는 건 정말로, 정말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북유럽에 사는 모든 외국인들이 입을 모아 말하길, 추위와 눈같은 겨울의 불편은 금방 적응이 가능하지만, 어둠은 이 곳에서 태어난 이들에게도 계절성 우울을 동반하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날씨도, 어둠도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지만, 마조히스트도 아니고 이걸 즐기기란 쉽지가 않은 일이다. 그보다는 싸워서 이겨내고, 극복한다는 마음 대신 때로 찾아오는 맑고 따뜻한 햇볕에 감사하고, 내게 주어진 해가 떠 있는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며 가진 것으로 가지지 못한 것을 그럭저럭 메우며 사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 같다.
아, 시간과 재정의 여유가 된다면 물론 한겨울에 태국이나 스페인에 놀러가는 것도 좋은 응급 처치 수단이다. 따뜻한 나라 이야기를 하니 생각나는, 내가 약 3년 반 동안 살았던 파나마의 날씨가 생각난다. 파나마는 건기와 우기를 제외하고는 날씨 변화가 없는, 연중 25도-32도 사이를 오가는 전형적인 열대기후다. 그곳에 살때는 계절의 변화를 그리워하고, 펑펑 내리는 눈이 보고 싶어 아이슬란도로 여행을 가기도 했었는데, 이곳에 와서 추위와 어둠을 겪으니 사시 사철(?) 여름 옷만 입고 다니던 그때가 그리워진다. 사람은 참 변덕스럽고 만족하기 어려운 존재인 것 같다. 결국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완벽한 상태라는 건 없다. 사람도, 날씨도, 나라도 그러하다. 가진 것에 만족하며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즐기는 마음가짐, 그 정도는 그래도 우리가 바꿀 수 있는 몇 안되는 것이 아닐까? 마치 추운 날 껴입는 따뜻한 옷차림처럼 말이다.
(대표 이미지: 스웨덴 예테보리의 항구 지역인 에릭스베리(Eriksberg)의 해질녘 풍경. 아마 오후 3시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