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mena Dec 23. 2022

스웨덴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란

크리스마스를 통해 본 스웨덴 사회 인간관계의 원칙

한겨울을 뜨겁게 달구던 월드컵이 메시를 앞세운 아르헨티나의 승리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애초에 월드컵에 크게 관심이 없는 스웨덴 사람들이지만, 한 영웅의 포기하지 않는 끈기, 그리고 어려운 경제 상황에 희망이 되어준 아르헨티나의 이야기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 한켠에 뜨거운 감동의 불씨를 지폈다. 그러는 사이 스웨덴의 학사 일정과 연간 근무 일정도 대략 마무리가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12월 23일까지는 정상 수업/근무하는 일정이지만, 스웨덴의 많은 대학이 15일 경 한 학기의 수업을 마무리하고 나머지는 과제로 대체하고 회사들 역시 이 시기에는 휴가를 쓸 것을 적극 권장한다. 그래서 12월 중순 이후에는 도시가 기능을 멈추고 모두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멀지 않은 나라 출신인 외국인들은 이 시기를 이용해서 집에 훌쩍 다녀오기도 한다. 스웨덴에 가족이 없거나 고향이 멀어 가기 어려운 외국인들은 모여서 작은 파티를 여는 등 최대한 이 시기를 외롭지 않게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왜냐면, 스웨덴의 크리스마스는 가족끼리 보내는 대 명절이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자 스웨덴 친구들이 한국에서도 크리스마스를 명절로 쇠는지 물었다. 각 가정과 종교 여부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크리스마스가 가족 단위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의미있는 날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냥 연말연시와 함께 묶여서 좀 색다른 축제 기분을 내는 휴일, 혹은 연인들의 날에 가깝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보니 예전에는 9월 언제쯤 사귀기 시작하면 크리스마스가 사귄지 100일이 된다며 그날 사랑을 고백하는 유행이 있었던 것도 같다. 요즘에는 좀 바뀐 것 같지만, 한국에서는 '남들 다 있는데 나만 없는' 상태를 무척이나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연인이 없는 상태를 '솔로'라 부르며 외롭고 불쌍한 사람처럼 취급한다든가, 일정한 나이가 되었는데 번듯한 집이나 직업이 없으면 그걸 부끄럽게 여기곤 한다. '올해도 혼자인가요?' 같은 눈치를 주는듯한 메시지가 지천에 깔려있다. 



그렇다면 스웨덴은 다를까? 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기본적으로 스웨덴에서는 뭐든 개인의 자유에 맡긴다. 결혼을 하든 말든, 대학에 가든 말든, 누구를 사귀든, 남들이 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든 말든 모두 자신의 선택이다. 친구는 물론 부모조차도 이러한 선택을 바꾸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고, 타인의 선택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자체를 꺼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역시 사람이 사는 사회이기에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특히 가족이라는 가치가 걸려있을 때 그러하다. 크리스마스와 같은 중요한 명절에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당연하고, 세상에서 가장 독립적인 사람들 중 하나라지만 그래도 자녀가 부모의 도움을 필요로 하면 부모는 언제든 손을 내민다. 살 곳이 없어진 자녀에게 떠날 때와 같이 보존된 방을 내어준다든가, 집에 있는 가구를 언제든 가져가라고 해준다든가, 언제든 차로 기꺼이 마중나갈 준비가 되어있다든가. 자녀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님이 해외 여행을 간다면 그동안 개와 식물 등을 돌봐주러 간다든가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이른 나이에 독립하는 것이 당연하고, 개인의 삶의 선택을 부모와 자식간에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원칙인 면과 상충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스웨덴 사회에서 가족이란 그런 특별한 지위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 한국의 설날과 같은 의미를 지닌 명절인 크리스마스는 자연히 가족끼리 모여서 정을 나누고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한해를 마무리하는 의미가 깊은 날로 여겨진다. 같이 살든 따로 살든, 부모님을 비롯해서 연세가 있는 친척 어른들을 방문하고, 몸을 따끈하게 덥히는 음식을 나누어먹고, 크고 작은 선물을 나눈다. 명절 문화에 있어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스웨덴은 연인 관계가 일정 기간 이상 지속되면 집을 합쳐 같이 사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연인 관계는 두 사람 사이에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속한 사회에서의 인간 관계의 작용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공식적인' 연인은 서로의 가족들을 만나고, 중요한 날에는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년씩이나 같이 사는 사람이니 한국 사회의 입장에서 본다면 결혼한 부부나 다름없이 보는 것이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서로의 가족과 알고 지내고, 친구 모임에도 함께 나가고, 직장에서 주최하는 파티 등에도 함께 간다. 스웨덴에 처음 왔을 때는, 함께 산다는 뜻의 동거인을 의미하는 Sambo 관계란 것이 법적으로 부부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게 취급되는 것을 보고 무척 진지하고 오래된 관계에만 적용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았다. 만난 지 몇개월만에도 함께 살기로 결정할 수 있고, 그때부터 동물을 함께 키운다거나 혹은 아이를 낳아 함께 키우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이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한국 사람들이 유독 연애에 집착한다, 조금만 가까워지면 그때부터 바로 '우리는 사귀는 사이'라고 명명해야 하고, 혼자이고 싶지 않아한다고 했는데 막상 스웨덴에 와서 살다보니 스웨덴 사람들도 연애와 사랑을 인생의 중요한 부분으로 본다는 느낌이 든다. 혼자 커피숍에 가거나 전시회에 가는 것은 괜찮지만, 가족 모임에 계속 연인이 없이 혼자 나타나는 건 좀 어색하다. 지인의 결혼식에 파트너 없이 가는 것 역시 다소 불편한 일이다. 혼자이고 싶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데이트 시장에 나설 준비가 되어있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양한 데이팅 앱을 이용하는 사람이 적지 않고, 모임에서 알게 된 친구의 지인과 데이트를 하는 등의 일도 드물지 않다. 혼자여도 괜찮고, 그 누구도 타인의 선택에 대해 눈치를 주거나 강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혼자인 것보다는 둘인 것이 '보다 일반적인' 것이 스웨덴 사회에서의 인간관계의 보이지 않는 원칙이라 할 수 있겠다.


스웨덴에 와서 살기 전, 몇 차례의 방문이 스웨덴에 관해 직접 접한 정보의 전부였을 때 가졌던 스웨덴에 관한 이미지와, 이곳에 와서 살고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코로나 시기 동안 이루어진 인구 조사에서 혼자 사는 인구수가 전체의 절반 가량이라는 통계 결과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스웨덴이 우울증 처방약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들었던 생각이 있었다. 이곳은 외롭고 우울한 나라구나. 특히 겨울이면 춥고 어두운 우울이 온 나라를 지배하는 곳이구나. 하지만 막상 와서 지내다 보니 그게 꼭 맞는 말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1인 가구 비중이 높지만, 주말이나 생일 등 중요한 날에는 가족, 친지 일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는 점. 그리고 연인이 가족만큼의 중요성을 갖고 있어 정말로 '혼자'인 것을 일반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 우울증 처방약 비중이 높은 이유는 꼭 그들이 더 우울해서가 아니라, 중증의 병세가 아니더라도 정신의 아픔을 사소하게 다루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점. 이렇게 숫자와 글로 배우는 지식과 정보는 직접 겪으며 배우는 경험을 통한 앎과 꼭 같지 않을 때가 많다. 




오늘은 12월 22일. 바로 한 해 중 가장 어두운 날인 동지다. 6월 22일, 해가 가장 긴 날인 미드소마를 지나 잘 버텨온 어두운 나날이 내일부터는 조금씩 다시 밝아진다. 하루에 꼭 2분씩 해가 일찍 뜨고 꼭 2분씩 해가 느리게 진다. 흐리고 어두운 하늘이 새카만 하늘보다 조금씩 길어진다 한들 뭐가 그리 다르겠는가. 티도 나지  않는 변화를 기다리기만 하기는 지친다. 하지만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을 그 안에서 나름의 기쁨을 찾으며 지내다 보면 어느 날에는 색색의 꽃이 피고, 또 어느 날에는 따뜻한 봄비가 내리고 세상이 푸르러져 있을 것이다. 길고 긴 어둠과 추위를 견디기 어려운 것도 분명 사실이다. 그렇기에 스웨덴 사람들이 사랑과 가족에 그토록 큰 가치를 두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며칠 남지 않은 크리스마스, 혼자여도 괜찮지만 여럿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흥겨운 캐롤도 좋고, 조용한 방 안에서의 포근한 담요도 좋다. 따뜻한 음료와 풍성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한 해중 가장 어두운 나날을 보다 아늑하게 보낼 수 있는 날로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 





(대표 이미지: 예테보리의 명소인 놀이공원 Liseberg의 크리스마스 풍경)

작가의 이전글 세나날(?): 세상에 나쁜 날씨는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