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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mena Dec 29. 2022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스웨덴 사람들에게 자연의 의미란 


스웨덴 사람들은 자연을 사랑한다. 누구든 안그러냐겠냐만은, 스웨덴 사람들은 '정말로' 자연을 사랑한다. 땅이 넓고 인구가 비교적 적다보니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많아 보존된 자연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단순히 자연이 '풍부해서' 자연을 사랑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늘날과 같이 기계, 차량 -볼보 (Volvo) 자동차를 떠올려보시라!-  분야가 주요 산업이 되기 전까지 스웨덴의 최대 수출품은 목재였다. 스웨덴의 또하나의 자랑, 이케아 (IKEA)가 주로 목재를 이용한 가구 회사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스웨덴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는 빽빽한 숲이 이들의 삶에, 그리고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쳐왔는지 알 수 있다. 


스웨덴의 자연은 산업 분야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전래 동화에는 공주님과 왕자님 대신 엘프와 트롤, 그리고 인어가 등장한다. 모두 푸르다 못해 검은 색으로 보이는 깊은 숲속에서 만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스웨덴의 숲을 산책하다 보면 그리 멀리 들어가지 않아도 짙은 녹색의 이끼가 낀 바위, 그리고 아름답지만 어딘지 어두운 샘을 발견하게 된다. 이끼 낀 바위는 해가 지면 곧 고개를 들고 <겨울왕국> 에서처럼 쿵쾅거리는 트롤이 되고, 검푸른 샘가에는 소원을 이뤄주기도 하고 사람들을 골탕먹이기도 하는 엘프가 고개를 내민다. 또한 노르딕 신화 역시 이 지역의 자연 풍광에 기반해 있다. 노르딕 신화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거인 이미르를 주요 신인 오딘과 그의 형제들이 죽임으로써 이루어졌다는 데서 전 세계의 많은 신화와 비슷한 구조를 띄는데, 거인의 살이 땅이 되고, 뼈는 산맥, 두개골은 하늘, 그리고 그의 피가 바다를 이루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에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광활한 대지, 그리고 험준한 산맥과 '공간으로서의' 하늘에 대한 인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천둥의 신 토르, 외눈박이 까마귀와 늑대의 모습을 한 오딘, 지식의 기원이 된 나무 이그드라실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존재들 역시 자연물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이들은 잠들기 전 어린이들의 머리맡에만 머물지 않고 현대의 대중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쳐, 크리스마스 영화나 판타지에서뿐만 아니라 대형 프랜차이즈 영화에서도 그 모습과 상징들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스웨덴 사람을의 실재적 세계와 상상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자연은 그래서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대상이자 세상이다. 바라보고, 음미하는 대상으로서의 자연도 중요하지만 스웨덴 이들에게는 삶의 장소로서의 자연이 더 큰 의미를 갖는 듯 하다. 스웨덴에는 Allemansrätten이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모든 이의 권리' 정도가 될 텐데, 얼핏 생각하면 의식주 혹은 천부인권 정도의 개념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사실은 '자연에 있을 권리'를 의미한다. 이는 스웨덴에서 모든 사람이 법적으로 보장받는 권리로서, 자연을 망가트리거나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연에 머무를 수 있다는 뜻이다. 텐트를 치고 자거나, 불을 피우는 것도 가능하다. 그래서 스웨덴 사람들은 간단한 간식과 음료를 챙겨서 숲속에서 피크닉을 하거나 하룻밤 캠핑을 하기를 즐긴다. 캠핑장을 예약하거나, 특정한 공원을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그냥 집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혼자, 또는 여럿이서 훌쩍 가면 그만이다. 



예전에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프로그램에 핀란드 청년들이 나와 버섯따기가 취미라고 해 한국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던 적이 있었다. 사실 북유럽에서 버섯을 따는 것은 취미라기보다는 그냥 때되면 하는 자연스러운 활동에 가깝다. 봄부터 가을 사이에 숲에 가서 축축한 이끼 근처를 들추어 버섯 더미를 발견하는 것은 스웨덴 사람들의 큰 기쁨 중 하나다. 특히 칸타렐라라는 샛노란 버섯은 맛이 좋고 또 값이 비싸 버섯 따는 이들에게 가장 반가운 버섯이다. 스웨덴에서는 농담으로 버섯을 마트에서 사는 것은 불법이라고까지 할 정도다. 또한 버섯을 따는 장소는 그 가족만의 비밀이다. 누군가 뜬금없이 숲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바구니를 들고 간다면 이는 백프로 버섯을 따러 가는 것이다. 그래서 버섯을 따는 장소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버섯 따는 봉투를 작게 접어 들고 가야 한다고 농담을 할 정도로, 버섯 따는 장소는 그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내가 점찍어둔 특정한 버섯이 나는 스팟을 누군가 알아내서 내가 가기 전날 모든 버섯을 다 따갔다고 생각해보라! 그날 저녁에 먹기로 한 버터로 구운 버섯 토스트는 안녕이다.




이토록 스웨덴 사람들의 삶에 있어 자연은 대체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삶의 터전이자, 이야기의 원천이자, 일상에 지친 현대인의 휴식의 공간인 것이다. 항상 차분하고 친절해 보이는 스웨덴 사람들의 비결은 바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생활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곳에서는 바쁘고 복잡한 대도시 중심부에서도 조금만 걸으면 금방 녹음이 우거진 공원과 숲을 만날 수 있다. 콘크리트 정글에 지친 몸과 마음은 푸른 하늘을 머리위에 이고 있는 초록빛 숲을 걷다 보면 어느새 평온해진다. 



퇴근 후 맥주 한잔에 넷플릭스 몰아보기도 좋지만, 때로는 스크린에서 눈을 떼고, 타인의 목소리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에서 맑은 공기로 몸 속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자연에서의 시간이야말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진정한 힐링이 아닐까. 재미있고, 매일매일이 새롭지는 않지만 변하지 않는 그 평온함이야말로 그게 스웨덴 사람들의 고요한 행복의 비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표 이미지: 스웨덴의 작은 도시 뉘셰핑의 숲속. 싸래눈이 꼭 설탕가루처럼 숲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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