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와 제도가 인식을 만든다
며칠 전 스웨덴 주요 언론사인 SVT에서 금년도 출생률 통계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를 담은 기사를 내놓았다. 내용인 즉슨, 올해 1월부터 4월까지의 평균 출생률이 여성 한명당 1.6에 못미치며 이는 30년만에 최저 수준이라는 것이다. (기사 출처: https://www.svt.se/nyheter/inrikes/barnafodandet-i-sverige-minskar-overraskande) 기사를 읽던 나는 여러모로 놀랐다. 우선 합계 출생률 (TFR, Total Fertility Rate: 여성 1명이 평생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무려' 1.6이나 되는데 이것이 30년만의 최저치라니? 두 번째로는 이에 대한 원인으로, 팬데믹 기간 동안 감염 우려 및 백신 접종 불가 등의 일시적인 현상으로 인한 이유를 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즉,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지난 다음 해에는 출생률이 자연스럽게 원상 복귀하리라는 예상을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별도의 조치를 취할 필요성이 제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찌 보면 무책임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짧은 분석의 이면에는, 반대로 스웨덴 사회가 출생을 둘러싸고 기울이고 있는 수많은 노력이 자리하고 있다.
스웨덴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과, 성인이 된 후 이주한 이들이 모두 입을 모아 말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스웨덴은 아이를 낳고 살기 좋은 나라라는 것이다. 이 문장을 구성하는 서로 다른, 하지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중요한 두 가지 요소가 있다. 바로 '아이를 낳고'와, '살기' 이다.
복지의 천국이라 불리는 북유럽, 그 중에서도 출생률과 R&D, 혁신 지표, 산업 경쟁력 등으로 대표되는 미래 성장 동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스웨덴은 분명 '살기' 좋은 나라다. 인구 대비 넓은 국토, 아름다운 자연, 튼튼한 기반 산업과 시민들의 합의가 이루어낸 복지 혜택 등은 스웨덴을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중 하나로 만든 요인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살기 좋은 나라라 해도, 국가 경제가 발전하고 교육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출생률 저하는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아무리 살기 좋은 곳이라 한들, 더이상 여성들이 아이를 대여섯 씩 낳지는 않는다. 스웨덴 역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이전과는 달리 낮아진 출생률에 대한 대책을 고심했던 역사가 있다. 그렇다면 살기 좋은 이 나라는 어떻게 해서 '아이를 낳기' 좋은 나라가 된 걸까?
우선 스웨덴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책임주고 키워준다는 인식이 있다. 최소한의 의식주를 제외한 모든 비용은 국가에서 지원된다고 봐도 된다. 예를 들면 성년이 되기 전까지 모든 의료가 무료이며, 교육은 연령에 관계 없이 무료다. 조금 더 자세히 보자면, 치과 시술을 포함한 거의 모든 종류의 의료가 18세 이전까지 무상 제공된다. 또한 23세 이전까지는 일부 의료 서비스를 보다 낮은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수백에서 수천 만원이 드는 치아 교정을 무료로 할 수 있기에, 스웨덴 청소년들 중에는 치아에 철길을 깐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교육은 심지어 더(!) 하다. 유치원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preskola부터 고등학교, 직업학교, 대학, 그리고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전 교육 과정이 무료다. 그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성년이 되면 독립해서 개별 경제를 꾸리는 학생들을 위한 일종의 학자금 지원 제도인 CSN이 있다. 최근 6개월 간 월평균 소득이 약 100만원 미만일 경우, 45-50만원에 해당하는 소위 용돈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상환 기한이 20년 이상이며 거의 제로 이자에 가까운 생활비 대출 역시 가능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때 가정환경 조사는 별도로 시행되지 않는다. 즉, 부모의 소득이 높다 해도 이미 성년이 된 자녀의 가계 상황은 이와 별도라 보고 대출 자격 심사에 이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이며, 신용 상황에 문제가 없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이 쏠쏠한 용돈에 더해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돈을 버는 셈이 되는 저이자 대출까지 받을 수 있다. 한편, 스웨덴은 약 50%의 인구가 대학 진학을 하지 않으며, 이에 따른 소득 수준의 차가 크지 않다. 따라서,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가면서 공부를 하면 되고, 그보다는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바로 경력을 쌓고 싶은 사람은 일을 하면 된다. 다른 일을 하거나, 대학에 개설된 강좌를 한두 개씩 띄엄 띄엄 듣다가 나중에 적성에 맞는 전공을 찾아 입학하는 '만학도' 역시 드물지 않다. 왜 몇년 씩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간을 낭비했냐는 핀잔도 없고, 이전의 경력과 대학 전공의 불일치 역시 흠이 아니다. 경험과 교육을 통해 적합한 능력을 갖추기만 했으면, 이 사람이 몇 년간 놀고 먹으며 세계 여행을 했든, 아니면 공사장에서 벽돌을 날랐든 상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위 잘 사는 집 자녀라 해도 식당이나 수퍼마켓, 혹은 중장비 회사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다. 최저임금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무경험자의 경우에도 시간당 최소 12000원 이상에서 시급이 결정된다. 야간, 주말 등 특별 수당은 물론 보장되며 비정규직인 경우 이 시급에 약 12%의 '휴가비'까지 추가로 지급된다.
즉, 스웨덴에서 태어나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성인이 되어 일을 하고 공부를 하는데 있어 최소한 경제적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스웨덴이 일반적으로 살기 좋은 나라인 것도 맞지만, 이곳에서 태어난 (혹은 어린 나이에 이민을 온) 사람에게는 특별히 더 살기 좋은 나라인 것이다.
그렇다면 '낳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스웨덴에서는 소위 '혼외 자식'이 많다. 이는 배우자의 부정으로 인한 결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혼인 관계 외'에서 태어난 자식이 많다는 뜻이다. 이전 이야기에서 언급한 동거인 제도 (Sambo, 삼보)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나 한부모 자녀 역시 동일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인식 측면에서 역시 이혼한 부부 사이를 반반씩 오가는 아이들이나 한부모 자녀를 보는 특별한 시선 역시 없다. 그러니 아이를 낳는 데 있어 한국에서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여겨지는 혼인 여부가 출생률에 있어 중요한 인자가 아닌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성의 경력 단절 및 육아에 대한 대책 부분 역시 촘촘하게 갖춰져 있다. 스웨덴의 육아 휴직은 엄마와 아빠가 번갈아가며 써야 최대한의 기간을 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예를 들어 한 명의 배우자만이 육아휴직을 쓰면 총 1년만 유급휴가를 쓸 수 있다면, 두 명이 각각 쓴다면 총 2년을 쓸 수 있다든가 하는 식이다. 스웨덴 정부는 이렇게 경제적 유인을 줌으로써 아빠들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아빠가 단순히 엄마를 '돕는' 것이 아니라 엄마는 일을 하고, 아빠들이 장기 휴직을 한 상태에서 아이를 전담하는 시기가 생김으로써 육아를 주도하는 책임을 갖게 된다. 또한 이 시기에 주 양육자로서 아이와 교감을 하게 되므로 아이가 한쪽의 부모와 관계를 형성할 기회를 완전히 놓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스웨덴에서는 공원에 가거나 마트에 가면 커다란 유아차를 밀고 다니는 아빠들을 볼 수 있다. 멋지게 차려입은 스웨덴 아빠들이 유아차 컵홀더에 카페라떼를 꽂고 마치 멋진 세단을 몰듯 유아차를 밀고 다니는 다소 신기한 모습에 '라떼 파파'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정작 많은 스웨덴 사람들은 이 이름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아빠의 육아가 흔한 일이라 그런 걸까?) 육아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스웨덴은 성별간 임금 격차가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이며, 가사 노동 분담 비율 역시 가장 공평한 나라 중 하나다. 아이를 낳고 소위 독박 육아, 독박 가사를 하면서 금전적인 걱정을 할 확률이 낮다는 의미다.
그러나 아무리 제도적으로 보조를 하더라도 아이를 낳는 사람은 여성일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한 각종 리스크는 완전히 피할 수 없다. 다만 이로 인한 부수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제도가 마련되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취업시 파트너 존재 여부, 혹은 가족 계획에 관해 묻지 않는 것이다. 개인의 사생활을 중시하는 문화에 더하여, 채용시 불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정보를 묻는 것을 법제적으로 금지함에 따라 여성들은 자녀 계획이 취업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출산 후 복귀 역시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권리이며, 이때 대체 인력을 구하는 것 역시 고용주의 의무이다. 스웨덴은 업무 환경이 유연하고, 노동권이 잘 보장되어 있기로 유명하다. 내가 인상깊게 들었던 이를 잘 표현하는 말 중 하나가 스웨덴에서는 필요한 인력이 10이면 11명의 인력을 고용한다는 것이다. 정규직 기준으로 1년에 약 5주가 휴가 기간이므로, 이 인력의 1/10을 대체할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육아휴직, 병가 등을 제외하고라도 평소에 항상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충분한' 인력을 고용한다는 원칙에 의해 인원을 결정한다. 육아 휴직 등으로 부재하는 인원에 대한 대체 인력은 별도로 고용한다. 따라서 휴직을 하는 사람도, 그리고 그의 동료들도 과중한 업무를 떠맡길/떠맡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혹여 바로 복직을 하지 않더라도, 전업 주부가 극히 드문 스웨덴에서 경력 단절은 큰 이슈가 아니다. 물론 쭉 이어서 근속을 했을 때와 똑같은 수준의 커리어를 성취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경력 단절 그 자체가 취업을 막는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이는 앞서 본 늦깍이 학생들과, 진로를 바꾼 구직자들이 취업문이 닫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과 출산이 야기하는 신체적 리스크는 온전히 여성의 몫이며 정부가 완전히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최근 경험 많은 산파의 부재로 인한 산모 건강의 위험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는 등, 스웨덴 역시 완벽하기만 한 천국은 아니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을 대하는 사회적 시선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스웨덴의 여성들은 임산부 '배려'석에 앉았을 때 공격적인 언사를 들을 걱정을 하지 않으며, 무거운 유아차를 대중교통에 싣고 탈 때면 많은 이들이 나서서 도움을 주고, 각 차량에는 유아차를 고정할 수 있는 지정석이 마련되어 있다. 아이가 울거나 큰소리를 낸다고 눈총을 주거나 싫은 소리를 하는 경우도 없으며, 아이를 비롯해 노인, 혹은 장애인 때문에 대중 교통의 정차가 길어져도 아무도 이에 대해 항의하지 않는다.
이처럼 수많은 요인이 서로 얽히고 얽혀 스웨덴의 높은 -하지만 그들에게는 우려할 만한 수준인- 출생률을 만들어냈다. 이는 단순히 정부의 경제적 지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제도를 강제하고 유인을 줌으로써 아이는 엄마가 보는 것이라는 사회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냈고, 사회 구성원들이 부모 및 자녀들에게 각종 혜택을 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이득이라는 명제에 합의했다. 출산의 당사자인 여성을 위한 효율적인 정책과 성숙한 시민 의식이 유일한 비결은 아니다. 비단 출산과 육아 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자리잡은 타인에 대한 배려, 그리고 경쟁보다는 실용주의적고 공정한 고용제도, 혜택 받은 만큼 내야 하는 높은 세금에 대한 합의 등이 촘촘하게 얽혀 탄탄한 사회 안전망을 만들고, 다음 세대를 재생산할 수 있는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2022년 1분기 기준 0.8이다. 즉 다음 세대의 인구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고령화에 더해 가파른 인구 절벽을 달리는 이 상황을 놓고 많은 정책 입안자들과 정치인, 그리고 학자들이 각기 다른 원인을 내놓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안한다. 하지만 늘기는 커녕 계속해서 최저치를 경신하기만 하는 출생률을 보면 그 분석이 영 틀렸거나, 아니면 그에 대한 제대로 된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아이를 낳기 좋은 나라에 살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아이를 낳고 '살기' 좋은 곳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이 깊은 수렁에 빠진 출생률이 반전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 이미지 출처: https://www.thetimes.co.uk/article/meet-the-latte-papas-fvjskl90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