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mena Aug 04. 2022

차가운 북부의 땅 스웨덴에서 사랑을 외치다

스웨덴 사람들의 사랑과 관계, 그 냉정과 열정 사이에 관하여

스페인 사람들은 낭만적 연애를 하기로 유명하다. 뜨거운 라틴의 열정을 물려받은 중남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클럽이나 바, 혹은 여행지에서 만난 이들에게 낯뜨거울 정도의 찬사를 퍼붓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연인이 되기 전에도 애정을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으며,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연인 사이에도 '우리 사이에 무슨' 따위는 없다. 머리가 희끗한 연세에도 손을 꼭 붙잡고 다니시거나, 사람들 앞에서 쪽쪽 키스를 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애정이나 감정을 숨기는 것이 저어되는 분위기가 아님은 물론, 부부 혹은 연인 사이가 지나치게 건조하면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한편 이렇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너무도 자유로운 나머지, 바람을 피우는 이들도 적지 않다. '너를 정말 사랑하지만, 그녀도 너무 매력적이란 말이야!'같은 노래 가사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글의 제목은 '스웨덴에서 사랑을 외치다'인데 왜 스페인 이야기만 하냐고? 


지금은 스웨덴에 살고 있지만, 나는 스페인어를 전공하고,  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 국가에서 수 년을 살았다. 유학 시절을 지나 출장과 여행 등으로 라틴아메리카 대륙 전역을 돌아다닌 경험은 나의 연애와 사랑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주었다. 한국의 다소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란 나에게 있어 연애란, 학교 혹은 직장에서 만나서 적당히 서로를 알아가다가 진지한 관계가 되거나, 아니면 소개팅으로 만나서 두어 번의 데이트 후에 사귈 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남자친구를 사귀면 공부에 집중하지 못해 큰일 나는 줄 알았고, 대학교에 들어간 뒤로도 남자인 친구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데 조심스러웠다. 그러다 처음 집을 떠나 살아본 곳이 아르헨티나였다. A.K.A. '유교걸' 이던 내게 그곳의 문화는 여러 모로 충격적이었는데, 특히 성과 사랑에 관한 부분이 그러했다. 그들은 자신의 욕구와 감정에 대해 자유로우며, 순간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 모두가 문란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표현하고, 내가 알아왔던 세계에서처럼 그걸 '지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 달랐다. '라틴 러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상대방 (주로 여성)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는 데 인색하지 않고, 비록 이 감정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더라도 현재에 충실하며 이를 표현하는 것이 그들의 사랑 방식이다. 물론 둘 사이의 관계가 공식적인 것이 되고 장기 연애가 되면 애정 이외에도 신뢰, 우정 같은 것이 중요해 지는 것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처음의 '스파크'가 튀는 방식이 한국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스웨덴에서는 어떨까. 이곳에 와서 살기 전, 여행으로 왔던 때의 경험과 미디어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고 있던 스웨덴, 그리고 스웨덴 사람들에 관한 이미지는 '차갑고 소심하다, 혹은 거리를 둔다'는 것이었다. 태양이 작열하는 남부 유럽과 달리 차가운 날씨만큼이나 차갑고 서로에게 거리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라, 팬데믹 기간 동안의 거리두기가 이전의 생활과 다를 바 없이 자연스럽다는 북유럽 사람들이니 사랑에 관해서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웨덴에 와서 산지 어언 1년, 그 편견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분명 스웨덴 사람들은 타인과의 거리를 중시하고, '우리'와 '타인'의 경계가 분명한 편이다. 길거리나 바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은 전혀 스웨덴스럽지 않은 행동이며, 대중교통에서 웬만하면 다른 사람의 옆자리에 앉지 않고, 아파트에서 이웃이 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 후에야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정도로 스웨덴 사람들은 서로에게 거리를 둔다. 중남미에서 공부하고 직장을 다니던 시절, 자기 소개를 하는 첫 만남에서 벌써 친한 친구가 되어 그 다음 만남에는 집에 초대하고, 가족을 소개해주고 메신저로 수다를 떨던 라티노 친구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스웨덴에서 사는 외국인들이 입을 모아 말하길, 사람을 적당히 사귀기는 어렵지 않지만 그룹 안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다고들 한다. 특히나 나이를 어느 정도 먹고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특히 학교 다닐 때처럼 자연스럽게 그룹을 형성할 가능성이 낮아서, 다른 외국인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


친구 관계가 아닌 연인 관계도 조금은 비슷하다. 어릴 때부터의 친구라든가, 같은 학교 혹은 직장에 다님으로써 가까워지고 연인 관계가 되는 경우가 많고, 한번 연인이 되고 나면 이는 꽤나 진지한 관계인 것으로 간주되며, 오래 지나지 않아 동거를 결정하는 경우도 흔하다. 여기서 다른 나라와 스웨덴의 연애에 있어서의 중요한 차이점이 나타난다. 스웨덴에서는 연인끼리 동거를 하는 경우가 무척 흔한데, 이를 삼보 (Sambo)라 부르며, 이 관계는 혼인 관계와 성격 면에서 비슷하다. 함께 사는 커플은 서로의 가족, 친구들과 왕래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더욱 중요하게는 혼인 관계와 유사한 법적 효력을 갖는다. 그러다보니 몇년 씩이나 함께 살아도 굳이 결혼을 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고,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는 경우도 전혀 드물지 않다. 이 아이가 받을 수 있는 혜택 역시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의 자녀와 동일하고, 이후에 커플이 헤어지게 된다면 양육권은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와 동일하게 결정된다. 이처럼 혜택과 권한이 동일하다면 굳이 결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할 것이다. 결혼과 삼보가 모든 면에서 동일한 것은 아니라서,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할 때나, 급작스러운 사망시의 유산 배분 등 보다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혼인 관계와 삼보 관계 사이의 권한 차이가 발생한다. 깊이 들어가면 복잡한 차이가 있지만, 다소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법적인 결혼 관계에서 당연시 되는 일부 권한이 삼보 관계에서는 별도로 계약서를 작성해야 효력을 갖게 된다고 보면 될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법적 혼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개인간의 계약서가 서로에 대해 법적인 효력을 갖게 된다는 의미다. 그만큼 스웨덴에서는 동거가 무척 흔하고, 누군가 연인과 함께 살다가 헤어졌다고 해서 그걸 흠잡거나 현재의 연인과의 관계에서 불편한 요소로 여기지 않는다. (물론 개별적인 관계에서의 개인차는 있을 것이다)


사람을 사귀는 데 있어서는 긴 시간이 걸리고, 낯선 이들과 쉽게 대화를 나누지도 않는데, 만난지 오래 되지 않아 동거를 결정하고, 연인 사이에 서로의 부모님 및 가족과 가깝게 지내는 것이 드물지 않다니. 중간에 뭔가 생략된 듯한 느낌이 든다. 도대체 그 서먹하고 거리감 있는 관계가 어떻게 함께 살기를 결정할 정도로 가까운 관계로 발전한다는 말인가?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스웨덴에서는 맥주 한 잔 이후에 모든 관계가 바뀐다고. 평소엔 그렇게 소심하고 체면을 차리는 예의바른 사람들이, 술 한잔만 들어가면 갑자기 쾌활하고 밝은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바이킹의 후예들의 주량을 고려하면 고작 맥주 한잔이 성격을 바꿀 만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또한 서로에게는 그렇게 예의를 차리고 선을 긋는 스웨덴 사람들이 오히려 외국인에게는 먼저 다가가 호의를 베풀고, 말을 거는 경우를 보며.그들에게는 어쩌면 맥주 한 잔이 상징하는 작은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게 상대가 외국인이어서든, 가벼운 술 한잔이 허락하는 용기든, 아니면 그냥 조금 더 쾌활한 쪽이 다가가서든, 닫힌 문을 두드리면 스웨덴 사람들은 무거운 문을 열고 나와 밝은 얼굴로 상대를 마주한다. 


반대로 양쪽 다 한걸음 더 내딛을 용기를 내지 않으면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관계가 지속될 수도 있다. 한국에서처럼 몇 번 만나고 나면 사귀기를 결정한 뒤, 차근차근 진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굳이 한 단어로 정의내리지 않는 관계도 드물지 않고, 일정 기간 만나다가 자연스레 독점적인 관계로 발전하게 되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자연스럽게 흐지부지되어 멀어지기도 한다. 일반화를 하기는 어렵겠지만, 스웨덴 남성을 만나는 외국인 여성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스웨덴 남자들은 도무지 먼저 사귀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단 '우리 사귀자'와 같은 말 뿐만이 아니라, 관계를 진전시키는 데 있어서 적극적이지가 않다는 얘기다. 반드시 남성이 주도권을 잡아 관계를 발전시키고 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관계를 맺는데 있어 적극적이지도 않고, 때로는 회피하는 것 같아 보일 정도로 뜨뜻미지근하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성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남 여가 모두 무척 개방적인 편이다. 어렸을 때부터 인간의 성과 성관계에 관해 말하기를 부끄러워 하지 않도록 배우고, 그보다는 올바르게 성을 인식하는데 중점을 두고 성교육을 한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원칙을 갖고 있지는 않겠지만, 스웨덴 사회에서 성에 관해 언급하는 것이나, 연인 관계가 아닌 이들간의 성관계에 대해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위 '사귀기' 전에 성관계를 맺기도 하고, 성관계를 맺었다고 반드시 사귀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개인의 선택이며 당사자간의 합의에 의한 결정이다. 




결론적으로, 스웨덴 사회에서의 사랑과 연애, 그리고 관계는 한국에서와 아주 다르고, 내가 겪어본 스페인어권에서와도 무척 다르다. 모든 인간 관계가 다 그렇지만 특히 연인 관계야말로 소위 '사바사'가 큰 문제라 일반화시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인식에는 나라 혹은 문화권마다 분명한 차이가 있다.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각각의 장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어딘가에 라틴 러버의 열정과 다정함, 그리고 스웨덴 사람들의 자유로움과 상호 존중을 모두 합친 완벽한 파트너가 있다면 좋을텐데! 








 (이미지 설명: 사진 속 건물은 스톡홀름 시청사로, 스웨덴의 여느 시청이 그러하듯 법적인 결혼 절차를 관장하는 곳이다. 특별히 스톡홀름 시청은 노벨상 시상식 연회를 여는 것으로 유명해서, 이곳에서 결혼식을 하기 위해서는 고작 5분의 주례를 포함한 결혼식을 위해 1년 이상을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스웨덴의 자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