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강타한 폭염, 그리고 지금 스웨덴에서는
최근 유럽 전역에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프랑스, 스페인,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은 최대 47도를 기록했고, 비교적 선선한 기후를 자랑하는 영국마저 40도에 육박하는 기록적인 무더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코로나가 비교적 잠잠해진 후 첫 휴가철을 맞이한 이 시점에 남유럽으로 휴가를 떠난 이들에게는 전혀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사실, 폭염은 단순히 덜 쾌적한 휴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평년 대비 10도 이상 높은 기온 때문에 발생하는 산불과 열사병, 물부족 현상으로 많은 생명이 소실되었고 이러한 피해는 항상 동물, 빈곤 계층, 이민자 등 약자에게 집중된다. 이는 폭염이 그저 조금 더 더운 '날씨'가 아니라 중요한 기후 위기 이슈로서 다루어지는 이유이다.
한편, 유럽 북부에 위치한 스웨덴 역시 무더위가 찾아왔다. 올해는 1989년 이래 가장 더운 미드소마(midsommar, 6월 말의 하지 축제)였고, 휴가철인 7월 현재 전국이 유례없는 고온으로 들끓고 있다. 물론, 이 '폭염'의 기준이 다른 나라와는 조금 다르다. 전국에 38도에 육박하는 이상 고온 현상이 일어난 지역이 있다는 사실이 뉴스 헤드라인을 차지하고, 낮 최고 기온이 30도를 넘어가는 날이 3일 이상 지속된다며 물을 많이 마시고, 낮에는 활동을 자제하라는 권고가 연일 방송된다. 스웨덴에서는 보통 25도가 넘어가면 무더운 날이라고 여겨지고, 30도가 넘어가면 특이하게 유독 더운 날로 간주된다. 그마저도 오후 4시가 넘어가면 25도 이하로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고, 아무리 남쪽 지역이라도 밤 기온이 20도를 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북스웨덴은 연중 내내 눈이 녹지 않는 곳이 있으니 뭐, 말 다 했다.
반면,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로 사람을 꽁꽁 얼렸다가 여름에는 두세 달 내내 지속되는 무더위로 사람을 동태에서 황태로 만드는 한국에서 태어난 나로서는 이제야 제법 여름다운 여름이 온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적도 근방에 위치한 파나마를 포함해 뜨거운 태양의 온기를 여지없이 누리는 중남미에 5년 여를 살고 나니 더더욱 더위에 적응이 되었다. 그러니 스웨덴에서 보내는 첫 여름, 제아무리 해가 길어져도 밤이면 겉옷 없이는 돌아다닐 수 없는 서늘한 여름이 익숙지 않다. 밤이면 13도까지 떨어지는 여름밤(!) 추위에 전기장판을 틀고 자지 않은 지가 겨우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다. 하도 추워, 추워 하고 염불을 외고 다녀 스웨덴 친구들이 'Chuwo'라는 단어를 알 정도다.
당연하게도, 스웨덴의 집들은 긴 긴 겨울에 대비하기 위한 단열에 무척 신경을 쓴다. 이중, 삼중창은 물론이고 두꺼운 벽과 햇볕을 잘 흡수하는 자재와 색으로 만들어진 집들은 매서운 겨울 추위를 잘 막아준다. (물론 뜨끈한 보일러 바닥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충분히 따뜻하지 않다) 하지만 여름이라 할 만한 무더운 날이 연간 일주일 이상 지속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에 에어컨은 물론이고 선풍기가 있는 집도 흔치 않다. 몇해 전 기록적인 더위로 인해 선풍기를 비롯한 각종 냉방 가전이 유례없는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가정이 며칠 되지 않는 더운 여름날을 위해 냉방기를 사지 않는다. 일부 대중교통을 제외하고는 냉방기를 가동하는 시설을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만큼 짧게 지나가는 더위에 무심하거나, 혹은 긴 겨울을 지나고 맞이한 여름다운 여름을 반기기마저 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스웨덴이지만, 기후 변화에도 무심하게 반응하지는 않는다.
매주 금요일 학교에 가는 대신 기후 위기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등교 파업' 시위를 벌이며 세게적인 유명세를 얻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Greta Thunberg)가 바로 스웨덴 출신이다. UN 기후행동 정상회의 (UN Climate Action Summit) 에서 "How dare you, "라는 울분에 찬 연설로 기성세대의 환경 오염에 대한 책임을 물은 그는 약 4년째, 총 204주차 등교 파업 시위를 벌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예상할 수 있듯이 이 젊은 환경운동가는 엄격한 채식주의자 (Vegan)이자, 불필요한 소비와 여행을 최소화하고 탄소 발자국을 최소화하는 데 힘쓴다. 그리고 스웨덴에서 툰베리는 혼자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서로 다른 정도와 방향으로 환경 보호를 실천한다. 환경 및 동물권 보호를 위한 채식주의의 다양한 방식 (비건, 베지태리언, 락토-오보 베지태리언, 플렉시블리태리언 등)의 식습관이 존중되고, 하나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여겨진다. 비행기나 자가용 대신 기차와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꼭 필요하지 않다면 자가용을 소유하지 않는다. 스웨덴에서의 환경 보호는 개인의 선택에만 맡겨지지 않는다. 경제의 나머지 두 축인 기업과 정부가 가정의 친환경적인 소비와 생산을 가능케 한다. 정부는 기업과 개인에 환경 보호에 관한 엄격한 법규를 적용하는 대신, 친환경 소비에 다양한 혜택을 줌으로써 사람들의 행동 변화에 양방향 유인을 제공한다. 이를테면 일회용 쇼핑봉투의 가격이 약 천원 이상으로 비싼 대신, 어느 수퍼마켓에서든 자동화된 기계로 재활용 병, 캔 등을 돈으로 바꾸어준다. 기업 역시 소비자의 친환경 제품에 대한 요구에 부응하고, 때로는 앞장서서 이러한 트렌드를 선도한다. 스웨덴의 대표 기업인 의류 브랜드 H&M의 매장에는 늘 재활용 섬유 20%를 활용한 제품이라는 태그가 붙어있고 (ZARA와 함께 패스트 패션 유행을 선도해온 브랜드로서 다소 모순적인 행태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수퍼마켓에는 탄소 발자국을 최소화한 스웨덴 내에서 경작된 작물이라는 표시를 볼 수 있으며, 친환경적인 생산 방식을 의미하는 EKO 딱지가 붙은 제품들이 더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환경과 비교적 거리가 먼 유통, 제조업, 건설업계 등은 국내외에서 해당 기업이 어떻게 에너지 효율 달성을 추구하고 있으며, 탄소 배출량을 최소화하고 이를 보상하기 위한 친환경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지 알리는 데 큰 노력을 기울인다.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기후변화가 계속된다면 스웨덴과 같이 추운 나라의 고지대 땅값이 오를 테니 미리 북스웨덴 땅을 사두어야겠다고 얘기를 했다. 이번 폭염으로 인해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아 매일 6백억 톤의 물이 쏟아져나오고 있다고 한다. 해수면 상승이 더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같은 날, 어느 유명인이 차로 40분 거리인 곳을 개인 제트기로 이동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남유럽의 고급스러운 풀장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기후 변화를 우려하는 제 1세계 시민들의 태도가 위선적이라는 비판을 스웨덴인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우리 역시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후 위기에 비교적 적은 영향을 받고 있으면서도 국가와 민간이 힘을 합쳐 탄소배출 최소화를 위해 노력하는 스웨덴 사회의 환경에 관한 인식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건전한 합의 구조는 분명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커버이미지 출처: https://www.nytimes.com/2022/07/20/world/europe/uk-europe-heat-wave-fire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