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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mena Jul 11. 2022

오래 산다는 것에 대하여

100세 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고 스웨덴의 노인복지

먼 옛날 진시황이 그러했듯,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생명 연장을 꿈꾼다. 의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100세 시대, 아니 120세 시대를 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가 되었다. 물론 우리 모두가 진시황과 같은 꿈을 꾸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래 사는 데에 큰 미련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젊음과 건강을 유지한 채로 오래 살 수 있다는 조건을 달면 긍정적인 답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이러한 꿈을 실현시킬 수 있을 듯한 연구가 몇년 전 발표되어 화제를 모았다. 논란의 중심에 선 생물학자 데이빗 싱클레어 (David Sinclair, 1969-)의 연구 내용을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간단히 요약하자면, 세포의 노화 속도를 늦춤으로써 수명을 늘리되 암, 당뇨 등과 같은 개별 병증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노화 그 자체를 늦출 수 있는 의학 기술을 개발중이라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떠한가? 70대에도 40대처럼 뛰고, 산행을 할 수 있다면? 100세가 되어도 도 30대 손주와 농구 한판을 뛸 수 있다면 150세, 아니 200세까지 살고 싶은 의향이 있는가? 



내가 친구들과 종종 즐겨하는 이야기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수명'이다. 몇세까지 살고 싶은지, 평균보다 오래 혹은 짧게 살고 싶은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묻곤 한다. 이에 대한 답은 물론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지만, 대개는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혹은 건강과 가족 구성원의 생존 여부 등 깐깐하게 조건을 단 후에야 긴 수명을 허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긴 수명에 대한 욕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실은 엄청난 업적을 세운 뒤 요절하는 것이 학창시절의 꿈인 적도 있었을 정도로 생명 연장에 대한 갈망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의 장수를 향한 욕구가 종종 신기하게 느껴져 늘 원하는 수명에 대한 질문을 한다. 그리고 스웨덴에 살기 시작한 후에는 스웨덴에서 태어난, 혹은 스웨덴에 장기 거주하는 친구들에게 같은 질문을 해봤다. 다소 놀랍게도 꽤 많은 수의 친구들이 특별한 이유 혹은 조건 없이, 오래 살면 좋지, 라고 답했다. 선택할 수 있다면 가능한 한 오래 살고 싶다는 이들도 꽤 많았다. 워낙에 개인차가 있는 이유라 함부로 일반화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스웨덴 사회 구조를 알고 보면 스웨덴 사람들의 노년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마냥 놀랍지만은 않다. 


세계은행 (World Bank) 의 2019년 자료에 따르면 스웨덴과 대한민국 양국의 평균 기대수명은 각각 82.9세, 83.2세로 거의 같다. 양국 모두 충분한 영양과 의료 수준을 달성한지 오래 되었고, 직접적인 전쟁의 영향 하에 있지 않은지 역시 오래 되었으며, 비교적 건강한 식습관을 가진 나라로 여겨지므로 이러한 결과는 그리 놀랍지 않다. 하지만 양국 노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꽤나 상반된다. 스웨덴에서는 65세가 되면 공식적으로 연금을 수령하기 시작한다. 금액은 개인의 소득 수준과 고용 형태, 계약 조건, 수령자의 출생연도 등에 따라 상이하지만 일반적으로 수령액을 최소 130만원 이상으로 본다. 참고로 스웨덴 거주 비자를 신청할 때 요구되는 학생 기준 월 최소 생활비가 대략 110만원이다. 따라서 별도의 저축이나 투자 수단이 없더라도,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연금이 지급된다는 뜻이다. 또한 직접적인 의료 뿐만 아니라 노인 전용 아파트 (접근 가능성을 최우선순위로 한다), 요양사, 지역사회에 기반한 다양한 스포츠와 취미 활동 등이 개인 부담 비용 최대 25만원 정도로 보장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라는 캐치 프레이즈로 유명한 북유럽 복지 모델은 완벽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노년의 삶을 비참하지 않은  수준에 붙들어두는데는 분명 성공한듯 보인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 노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 녹록지 않은 일이다.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 탄탄한 노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경우, 연금에 기대어 생활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상대적 빈곤율 기준- 약 40%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노년층의 자가 주택 보유 비율을 들어 이러한 수치가 과장되었음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저소득층 노인의 극단적인 생활고, 그리고 이로 인한 높은 노인 자살률 (58.6명/100,000명, 출처: OECD 2015)을 부정하지 않는다. 노령 인구의 높은 자살률은 빈곤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한 자존감 하락, 그리고 사회적 네트워크 부재로 인한 외로움 등에 기반한다. 흔히 폐지를 줍는 허리 굽은 노인으로 대변되는 빈곤 노년층, 그리고 심심찮게 들려오는 노인 고독사 문제는 세게 10위 수준의 경제 대국이라는 초고층 빌딩과 같은 명예 뒤에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다.  



같은 질문을 다시 해본다. 당신이 스웨덴에서 연금을 받는 노인이라면, 얼마나 오래 살고 싶은가? 세포 노화 방지를 통해 120세가 되어도 50세처럼 건강하게 해외 여행을 다닐 수 있다면, 새로운 언어와 기술을 배우고 증손주뻘 젊은이들과 소통하며 살 수 있다면, 장수란 제 2, 제 3의 인생을 사는 기회처럼 여겨지지 않을까? 나는 아직까지는 나이의 절반처럼 보이는 스웨덴 노인이 되더라도 200세까지 살고 싶은 욕망은 없다. 하지만 스웨덴에서 태어나 의료와 교육이 무료인 아동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학비가 무료인 대학에 입학하면 학업지원비로 집세 정도의 금액을 지원해주고, 아르바이트로 생계 조달 및 저축까지도 가능한 청년 시절을 보낸 뒤 취업해서 약 40년 가량을 일하면 평생 의료와 주거가 보장되는 복지가 가능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는 가정 하에- 오래 산다는 것에 대하여 보다 긍정적이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학자금 대출, 취업난, 경쟁 등의 단어로 짓눌린 시간을 살아가는 오늘의 젊은이들과, 빈곤, 외로움, 그리고 고령 자체가 잘못인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를 살아내는 어제의 젊은이들이 모두 조금은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개인의 관심과 사회의 제도적 노력이 간절한 시점이다. 





(상단 이미지 출처: Elderly Care in Sweden, Swed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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