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소마, 그리고 스웨덴 사람들이 술 마시는 법
스웨덴의 가장 큰 명절이라고 봐도 무방한 미드소마 (Midsommar, 하지) 축제가 머지 않았다. 올해는 6월 25일 토요일이 미드소마 당일이다. 1년중 해가 가장 길어지는 날이자 그에 걸맞게 사람들이 가장 행복해지는 날이기도 하다. 미드소마 기간 동안에는 친구, 혹은 가족들과 시골 별장에 모여서 파티를 한다. 친구나 친척 누군가의 별장일 때도 있고, 에어비앤비 등으로 집을 빌리거나, 아니면 그냥 도시 외곽에 사는 누군가의 집에 모여서 파티를 연다. 그렇게 모여서 무엇을 하는가? Midsommarstång 혹은 Majstång (영어로는 May pole)이라 불리는 각종 잎사귀와 나뭇가지, 꽃으로 장식한 거대한 막대기를 꽂아놓고 그 주변을 춤추고 노래하며 돈다. 또한 여름 감자, 계란, 청어절임 등으로 이루어진 부페식 음식을 나누어먹거나 바베큐를 즐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술이다.
스웨덴의 1인당 연간 알콜 소비량은 9.04리터로 이는 대략 보드카 30병에 해당하는 양이다. (참고로 한국은 8.45리터로 두 나라 모두 평균 알콜 소비량인 5.76리터를 훌쩍 넘긴다. *출처: https://worldpopulationreview.com/country-rankings/alcohol-consumption-by-country) 1년에 보드카 30병이면 한달에 대략 2.5병을 마신다는 뜻이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이를 훌쩍 뛰어넘는 음주량을 자랑한다는 뜻이 된다. 실로 엄청난 양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거대한 바이킹들이 커다란 컵에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이미지가 절로 떠오른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와는 다르게, 스웨덴 정부는 책임감있는 음주 문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무분별한 알콜 소비를 제한하기 위한 몇가지 제도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바로 알콜 음료 광고가 부분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것이다. 도수로 15도가 넘는 술은 광고할 수 없고, 목표 소비 대상이 25세 이하여서도 안된다. 2003년까지는 아예 모든 주류 광고가 금지였다가 이후 제한이 살짝 완화되었다. 규제가 완화되었다지만 여전히 스웨덴에서는 주류 광고를 보기 힘들다. 또 다른 특이한 제도로, 국가가 주류 독점 판매처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노르웨이, 핀란드 등의 이웃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스웨덴에서는 1955년에 Systembolaget이라 불리는 국영 주류 독점 판매처가 설립되었다. 목적은 주류 소비를 제한하기 위함이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스웨덴에서는 앞서 언급한 주류 광고 제한 이외에도, 주류 판매처에서조차 주류 소비를 권하거나 소비를 촉진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또한 Systembolaget이나 바, 레스토랑에서는 취객에게 주류를 판매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술을 파는 장소에서 그게 무슨 말이냐 하겠지만, 일정 정도 이상 취한 사람에게 더이상 술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해서 주류의 과도한 이용을 일정 정도 방지하도록 하는 책임이 판매자에게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소비자 입장에서의 음주 문화는 어떠한가. 일인당 한달에 보드카 세 병을 마시는 나라이니 분명 그다지 정적이지 않은 음주 문화가 있으리라 예상될 것이다. 그렇다. 스웨덴 사람들은 술을 꽤나 즐기고, 친구들과의 모임이나 회식 자리에서 한껏 취하는 것도 일반적인 일이다. 만 18세가 되어야 식당이나 바에서 술을 살 수 있고, 주류판매점 Systembolaget에서는 20세가 되어야 주류 구매가 가능해진다. 이 시기가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많은 술을 마시는 시기다. 여기까지는 한국의 음주 문화와 꽤나 비슷해 보인다. 수줍고 예의바른 스웨덴 사람들이지만, 맥주 한 잔을 마신 이후부터는 모든게 변한다고들 이야기한다. 갑자기 없던 사회성이 생겨나고, 이 바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솟아난다. 진전 없이 썸만 타는 사이에서도 술 한잔이면 금세 관계가 가까워지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선뜻 말을 걸 용기가 생겨난다. 금요일 밤이면 취해서 갈지자로 걸으며 친구들과 소리높여 무의미한 대화를 나누는 젊은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렇게 흔하진 않지만 번화가 구석이나 트램에 구토의 흔적을 보게 된 일도 없지 않다. 스웨덴 사람들은 자국의 음주 문화에 대한 자조적인 농담을 많이 한다. 겨울이 하도 어두우니 술을 이렇게 많이 마시게 되었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사람들처럼 와인 한두 잔에서 끝내는 자제력이 없다, 술을 마시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등등.
이곳에서 약 아홉 달을 살면서 수도 없이 많은 술자리에 갔고, 수도 없이 많은 술자리를 봤다. 스웨덴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와인, 슈납스, 보드카, 위스키, 럼, 각종 칵테일, 그리고 샷을 마시는 문화까지, 주당들이라면 한번쯤 경험해보고 싶을만한 음주 문화가 있다. 대체로 주량도 다들 센 편이고, 어딜 가든 다양한 술 종류가 구비되어 있으며, 술을 마실 때 즐길 수 있는 각종 술게임이 즐비하다. 술을 마신 후에 흥이 오르면 제멋대로 몸을 흔들며 춤을 추기도 하고, 목청을 높여 평소에 못했던 이야기를 자유로이 나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추태를 부리는 취객도 분명 없지 않다. 하지만 일종의 문화 차이라고 느낀 점이 있다면, 어디에나 알콜프리 옵션이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회식이라 할 수 있는 회사 이벤트가 열리면, 열에 한 둘은 알콜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 레스토랑이나 바에도 알콜프리 맥주, 사이더, 와인이 무조건 있으며, 술자리에서 콜라를 마시고 있어도 그 누구도 눈치주지 않는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도 꽤 많고, sober month라고 해서 일정 기간동안 술을 끊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도 회식이나 친구들 모임에 나가서 알콜프리 음료를 마신다. 한입 먹고 뱉을뻔 했떤 무알콜 레드와인을 제외하고는, 무알콜 혹은 저알콜 음료들도 제법 맛이 괜찮다. 어느 식당에 가나 베지테리언/비건/글루텐프리 옵션이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스웨덴은 사람들의 다른 선택을 존중한다. 사람들이 다를 수 있고, 그 다름이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이 존재한다. 술을 마시든, 마시지 않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고, 그게 건강상의 이유든, 철학적인 이유든 그 누구도 캐묻거나 술을 마실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스웨덴 문화가 가장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회식 참여 여부도, 음주 여부도, 휴가 일정도 그 누구도 강요할 수 없다. 협의를 통해서 조율을 해나가고, 최대한 다른 옵션을 마련해서 그 어떤 선택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한다는 대 원칙이 사회에 존재한다. 스웨덴 사회가 결코 완벽한 사회는 아니지만,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바로 다름에 대한 존중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결론은, 곧 다가올 미드소마 축제때 성인들의 자유의지에 의해 엄청난 양의 술이 소비될 것이라는 것이다. Glad Midsommar! 모두들 행복한 여름날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