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치료가 드디어 끝나다.
매일 병원을 찾아가던 일은
드디어 끝이 났다.
방사선 치료 이후 찾아온
피로감과 무기력함은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주기 사이에 조금씩 간격이 생겼고
이제는 “좀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하루 괜찮았다가
다음 날 다시 무너지는 날도 있었다.
그래서 마음을 쉽게 놓을 수는 없었다.
방사선이 끝나면
바로 프라하 그리고 독일로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품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장거리 비행은 아직 무리였다.
그 대신 나는 주어진 하루를
저축하듯 살아가기로 했다.
체력을 아껴 쓰고
마음을 함부로 쓰지 않으면서
하루하루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2주가 지나자
걷는 시간을 조금씩 늘릴 수 있었고
의식적으로 좋은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타목시펜 복용으로 인한
여러 부작용들도 함께 찾아왔다.
홍조, 미열, 흐릿해지는 시야, 수면 장애까지.
하지만 두 달쯤 지나자
그 주기와 강도가 점점 짧아졌고
몸은 조금씩 이 변화에 적응해 가고 있는 듯했다.
그때 처음으로 내 몸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잘 버텨줘서, 잘 받아들여줘서.
암 진단 이후
치료 과정에서 가장 큰 마음의 충격은
타목시펜을 복용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타목시펜은 여성호르몬을 억제하는 약물이다.
나의 경우, 5년간 복용해야 한다.
여성호르몬 억제는 곧 갱년기를 의미했고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40대 중반,
결혼을 계획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였다.
나도 엄마가 되고 싶었다.
엄마가 되기 위해
결혼을 향한 노력을 해본 적도 있었지만
인생은 늘 마음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K-장녀로 가족을 챙기며 시간이 흘렀고
이제야 나를 돌아보려는 순간
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결국
이 모든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가능한 한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나의 가장 젊은 순간은 오늘이다.
그 오늘을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암 진단 이후
5년이 지나야 완치라고 하던데
그 5년이라는 시간은
가장 멋진 50대를 맞이하기 위한
또 다른 준비의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