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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리 Apr 29. 2024

협의이혼 확인기일 출석하기

법원부터 구청까지

협의이혼 확인기일에 법원에 출석하는 날.


내 인생에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날이다.

물론 누구나 그렇듯 많은 일들이 예기치 못했던 인생이었지만, 이건 정말 꿈에도 오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던 그런 날이어서 기분이 이상했다.


협의이혼 접수할 때도 느꼈지만,

이혼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확인기일 받는 날도 역시 예상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민원동 가족관계등록계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행복의 모습은 비슷하지만 불행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라더니, 그 법칙은 결혼과 이혼에도 적용되는 것이었나 보다.

둘 씩 짝지어서 앉아있는 곧 이혼을 확정할 부부들의 모습 또한 각양각색이었다.

서로 따로 앉은 사람, 서로 같이 앉았지만 말이 없는 사람, 서로 살짝 떨어져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사람.. 심지어 연인처럼 사이가 좋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좀 신기하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했다. 저 정도로 사이가 유지되는데 왜 이혼할까? 물론 겉에서 보이는 게 다는 아니겠지만 그 사람들의 사연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나와 내 전남편은 서로 같이 앉았지만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내 전남편은 나랑 뭐 신변잡기라도 나누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그와 할 말이 정말 단 한마디도 없었다.

하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말도. 그 무엇도 남지 않았다.


그렇게 오후 2시 20분이 될 때까지 기다리다 신분증을 내라는 말에 우르르 일어나 둘씩 짝지어 줄을 섰다.

서로 남남이 되겠다고 이혼하는 와중에도 이렇게 둘씩 짝지어서 있어야 한다는 게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부부가 대체 뭐길래. 결혼이 뭐길래.


신분증을 제출하고 나니 대기실로 안내되었다.

그 속에서도 또다시 기다림이 계속됐다.

작은 소강당 같은 곳에 앉아서 슬라이드가 자동으로 넘어가는 티브이 화면을 보며 판사님을 만날 때까지 계속 기다렸다.

화면에는 '이혼은 실패가 아닌 가족의 변화입니다.', '아이에게 상대 배우자의 험담을 하지 마세요.', '상대방은 원수가 아닌 양육파트너입니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 자리에 있으신 분은 지금 당장 나가셔도 됩니다.', '확인기일을 받으신 후 3개월 이내에 구청에 접수하셔야 이혼이 확정됩니다.' 등의 이혼 관련 안내문구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사건번호순으로 판사님을 만나러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 번호는 뒤쪽에 가까워서 거의 한 시간 넘게 대기를 해야 했다. 진짜 지루하고 긴 기다림이 끝나고 우리 사건번호가 불렸다.

대기실과 이어진 방 안으로 들어가니 남자 두 분이 앉아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바로 뭐라 말을 해줄 줄 알았는데 우리 이혼 관련 서류만 계속 보셨다.

그러더니 판사로 추정되는 한 분이 서로 동의하신 거 맞냐, 양육비는 매달 며칠에 얼마를 지급하기로 하셨는데 이게 맞냐, 친권자는 모친으로 지정하셨는데 맞냐, 혹시 양육비를 안내면 강제집행이 될 수 있다 등등 양육비 및 이혼 관련 확인을 하신 후 종이 세장을 주셨다.


'자의 양육과 친권자 결정에 관한 협의서', '양육비부담조서', 그리고 '협의이혼의사확인신청 확인서'


나와 전남편은 그 세 장의 종이를 들고 가까운 구청으로 갔다. 나중에 혼자서 접수를 하려면 상대방의 도장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그냥 당일에 같이 바로 가서 접수를 하기로 했다.

구청에 가니 방금 법원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거기서 접수를 하고 있었다.

법원에서도 한참 기다렸는데 구청에서도 꽤 기다렸다.

이혼은 정말이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이혼접수창구에 '혼인신고 기념 포토존이 있습니다'라는 안내판이 붙어있는 걸 보았다.

그걸 멍하니 보고 있는데, '접수되셨고 한 달 뒤에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하는 안내를 들었다.

혼인신고를 했던 2018년 08월 21일에 들었던 말과 정확히 같은 말이다.

혼인신고를 했던 그날도 잘 실감이 나지 않았었는데, 이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내 6년의 결혼생활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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