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마다 하는 일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아침에 뭘 하나. 학교에 가거나 출근을 해야 한다면 씻고, 머리를 말리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무의식적으로 행해진다. 마치 매일 똑같은 의식을 치르는 사람처럼, 사람들은 아침에 척척 부지런히 움직인다. 아, 근데 나는 여기에 하나가 더 있어야 한다. 나는 매일 그를 만난다.
- 체중계.
아침마다 체중을 잰다. 영상매체들을 접하다 보면 연예인들이 체중을 줄이려고 머리를 풀거나 얇은 옷을 입고 체중을 재기도 한다. 나도 체중을 그런 식으로 잰다. 아침에 일어나,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씻은 뒤 제일 먼저 체중을 잰다. 10년 내내 체중을 그렇게 쟀다. 나체로. 그리고 0.5kg만 늘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는 왜 이렇게 된 거지? 특별한 이벤트 없이도, 단 세 개의 숫자만으로 오늘의 전반적인 기분이 결정지어진다. 아무리 좋은 소식을 들어도, '아 나 근데 어제보다 0.5kg 더 나가잖아.'라는 생각이 들고, 아무리 안 좋은 이벤트가 있어도 '어제보다는 1kg가 줄었지, 참.'하고 생각한다. 이 정도면 강박 아닌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체중 강박이다.
내가 체중을 재는 것에 강박을 느낀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여자라면 보통 나처럼 살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매일 체중을 재지는 않더라도, 친구의 집에 가면 체중계가 꼭 하나씩은 있었다. 대놓고 묻지 않았지만, 한동안 다른 사람들의 체중을 살피며 나와 비교한 적이 있었다. 친구에게 너 체중이 몇이니, 라는 말을 간접적으로 물으면 '요즘 안 재봐서 모르겠는데. 쪘을 걸?'이라고 대답했다. 어떻게 자기 체중을 모르고 살 수가 있지? 그럴 수가 있나? 그런 생각도 했다.
내가 진짜 체중에 이상하리만치 집착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낀 일은 집에서 어딘가로 떠나 있을 때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갔던 영어마을에서 처음 그걸 느꼈고, 두 번째는 고등학교 3년 내내 기숙사를 다니면서 느꼈고, 세 번째는 친구들과 내일로 여행을 가서 느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체로 체중을 재는 일이 나에게는 하루 중 '절대 빠질 수 없는' 의식 같은 것이었는데, 체중을 안 재니 이상하게 불안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간 영어마을은 즐거웠지만, 나는 즐거운 와중에도 계속 그런 것을 생각했던 것이다.
- 어제보다 늘었을까, 줄었을까.
5박 6일의 영어마을에서 생활이 끝나고, 집에 왔을 때 체중을 쟀다. 오히려 2kg가 빠진 걸 알고 털썩- 주저앉았던 일이 생각난다. 일주일 동안의 불안이 숫자를 보니 싹 가셨다. 이런 일을 13살 때부터 겪었다.
사실 체중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안다. 근육량이 중요하고, 지방량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다이어트를 왜 하나. 원래는 몸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다이어트였다. 그러나 이제는 미용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미용목적으로 다이어트를 한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미용'의 기준이 너무 획일화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다. 어떤 사람에게는 마른 게 좋을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볼륨 있는 몸매가 보기에 좋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이거다.
- 그 '미용'의 기준은 순전히 내가 정한 걸까.
그리고 내게 저런 질문을 던졌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 아니. 이건 내가 정한 기준이 아니다.
나는 161cm의 53kg다. 누가 봐도 정상체중이다. 아주 마른 것도 아니지만 비만도 아니다. 정상범위에 있는 체중이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 저 몸무게의 앞자리를 4로 만들고 싶어 한다. 나는 그런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다. 왜냐하면, 이런 강박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기에. 나는 그래서 글을 쓴다. 내가 얼마의 체중이 나가더라도, 나는 스스로 나이고 싶다. 살이 쪘다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도 싫고, 살이 빠졌다고 자존감이 다시 높아지는 것도 싫다. 그러한 생활은 정말 지긋지긋하다.
사람들이 많이 하는 오해가 있다. '쟤는 말랐으니까, 체중 걱정이 없겠지?' 라거나 '쟤는 체중이 많이 나가니까, 항상 살 때문에 스트레스받겠지?' 하는 생각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다. 체중이 훨씬 덜 나가는 사람이 오히려 자신의 체중에 강박을 받고 관리하는 사람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우리 엄마. 그리고 체중이 키에 비해 많이 나가더라도, 개의치 않고 맛있는 것을 먹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 예로 내 동생이 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에 사는 '여성'이라면 체중에 대한 강박이 적게나 많게나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나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202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