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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이 내 몸무게를 공개했다.

by 정휘지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러니까 13살 때 학교에서 신체검사를 했었다. 신체검사를 할 때 제일 먼저 키를 재고 몸무게를 쟀다. 학생들은 다 알았다. 자신이 키가 얼마 정도고, 몸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그걸 보고 '헤엑-'하고 놀라는 녀석들도 많았다. 물론 나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 나는 내 몸무게를 보고 터져 나오는 탄식을 속으로 삼켰다. 근데 그 당시 내가 기억나는 감상은 이거였다. '쪘네?'가 아니라, '50kg가 넘네?'였다. 나는 내가 그전까지 몸무게가 얼마 정도 나가는지에 대해 신경을 전혀 안 쓰고 살았다. 당연히 집에 체중계도 없었다. 체중계를 처음 집안으로 들여놓은 것은 나였기 때문이다.


일단 나의 감상은 말한 대로 저게 다였다. 그러나 내 몸무게에 대한 '혐오감'을 부여하고, 나의 자존감을 낮아지게 한 일은 저 날 이후 있었던 일이다.



신체검사가 끝난 뒤 몇 주 후에 반에서 검사 결과 통지표를 나눠줬다. 그렇게 통지표만 나눠줬으면 참 좋았을 텐데. 담임의 눈썹이 씰룩거리는 걸 보고 아, 또 뭔 일을 꾸미려고 저러시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담임은 컴퓨터 모니터로 어떤 파일을 뚫어져라 훑는 중이었는데 그게 학생들 키와 몸무게가 적혀 있던 파일이라는 것을, 그가 다음에 한 말로 알 수 있었다.


- 00 이는 키가 155cm인데, 몸무게가 55kg나 나가네? 체중 좀 줄여야겠다.

- 와 어떻게 50kg가 넘을 수 있지?


첫 번째 말은 담임이 한 말이고, 두 번째 말은 교탁 앞에 앉아 있었던 다른 학생의 말이다. 지금이라면 뭐라고 쏘아붙일 수야 있겠지만 당시 저 말을 들은 나는 수치심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담임은 장난을 빙자해서 다른 학생들에게도 저렇게 대놓고 말했다. 그것도 반 전체가 보는 앞에서. 여학생들은 당황해서 아 선생님, 저런 걸 애들 앞에서 공개하면 어떡해요?라고 말했으나, 반 아이들은 모두 웃어넘겼다. '고작' 몸무게 '따위' 공개했다고 예민한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았던 나도 침묵했다.


화장실만 가면 거울 보는 것을 피했다. 담임은 간혹 가다가 한 번씩 '그래서 그때 말했던 아이들은 체중을 줄이고 있나?'라는 식으로 우리를 떠봤다. 나는 내가 왜 수치심을 느껴야 했는지 몰랐다. 그냥 내가 여자임에도 날씬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고, 나는 왜 50kg가 넘을까에 대해 생각했다.


명절에 어른들을 만나도 다들 숫자에 관심이 많았다. 전교에서 몇 등 하니?부터 시작해서 키는 몇이니? 동생이랑 한 번 재봐라. 어머나 세상에, 언니가 동생보다 작네? 동생이 키가 더 크네? 근데 언니가 더 키가 작은데 몸무게는 더 나가는 것 같다 얘. 몸무게가 몇이니? 어머, 55kg라고? 여자애들은 53kg를 넘어가면 안 돼. 53kg가 제일 적당하단다. 더 찌지 않도록 조심하렴. 나는 그럴 때마다 이런 말을 퍼붓고 싶었다. 삼촌, 삼촌은 결혼을 왜 안 하세요? 숙모, 사촌언니는 왜 취직을 안 할까요? 졸업한 지가 꽤 된 것 같은데.



언젠가 어른들과 TV를 보다가 해변가에서 뛰어노는 여성들을 보게 되었다. 어른들은 하나둘 씩 이런 말들을 했다. 와, 외국 사람들은 왜 저렇게 뚱뚱해? 그런데도 비키니 잘만 입고 다니네. 한국 여자들은 거의 다 날씬한데. 한국 여자가 외국 가면 말랐다는 소리 듣는다더라.


식습관 차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이상적인 몸매 기준은 획일화되어있고, 서양권의 기준은 한국보다 다양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한국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너무나 민감하다. 아니, 남을 가지고 품평질 하는 인간이 너무 많다. 사실 비키니 따위야 그냥 입으면 되는 걸, 언제나 여름이 오기 전에 앞자리 숫자를 4로 만들기 위해 애를 쓴다. 몸매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문젠데, 당하는 사람들이 몸매 평가를 '당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뭐, 이런 패턴은 어떤 경우에도 비슷한 것 같다. 심한 말을 하는 사람들은 고칠 생각을 안 하고, 심한 말을 '듣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심한 말을 듣고도 마음이 덜 상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니까. 그리고 분노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런 말을 듣는 사람이고. 감정 소모도 듣는 사람이 하고.


숫자 따위가 나의 자존감을 흔들어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몸무게가 몇이 나가든지는 사실, 나의 건강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한 큰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몸무게 숫자 따위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와도 크게 관련이 없다. 그리고 남들이 신경 쓸 건 더더욱 아니고. 나의 몸매를 보고, 혹은 남의 몸매를 보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성희롱이나 다름없고, 요즘에서야 사람들이 그걸 조금씩 인지하는 듯하지만 모두가 변한 것은 아니다. 내 담임 같은 사람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나처럼 저런 말을 듣더라도 듣는 사람이 수치스러워할 일은 아니다. 상대방의 입이 얼마나 가볍고 방정맞은지에 대해 심히 염려스러워할 뿐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저런 말을 간혹 들었다. 50kg 중반 대였음에도, '살을 좀 빼는 게 어때.'라는 말을 애인에게 듣기도 하고, 애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정상체중임에도 불구하고 혹독하게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 왔다. 자기만족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말이지. 진짜 자기만족인지 스스로 생각해봤으면 한다. '자기만족'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진짜 원하는 걸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 스스로한테 저런 질문을 여러 번 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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