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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이후에 먹는다는 죄책감

다이어트는 평생 숙제라는데. 누가 내 준 숙제일까?

by 정휘지
시계를 보니 6시까지 한 시간 정도가 남았다. 앞으로 자기 전까지 7시간 정도가 남았네. 그러니 지금쯤 저녁을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밤 9시쯤에 뭔가를 주워 먹을지도 몰라. 그러면 내일 몸무게가 늘어 있겠지···


나는 13년째 저녁 5시만 되면 이 생각을 한다.

이건 내 인생의 절반이다.


더 우울한 건 앞으로 이렇게 생각하게 될 날들이 내 인생에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 같다는 점이다.



담임이 내 몸무게를 반 아이들 앞에서 공개한 이후 가족과 외식을 하러 나간 적이 있었다. 우리 집은 외식을 자주 하는 편도 아니었는데 한 달에 한 번 아빠 월급날이 되면 집 근처 삼겹살 집에서 외식을 했다. 평소의 나는 혼자서도 3인분을 후딱 먹는 사람이었는데 그날따라 삼겹살을 쳐다보기도 싫어서 입에도 대지 않았다. 분명 엄마가 외식하러 가자고 했을 때 나는 분명히 "안 먹어. 안가. 나 다이어트해야 돼."라고 얘기했는데 원치 않게 끌려 나온 꼴이 되어버렸다. 엄마는 이런 날이 흔하지는 않으니 먹기 싫어도 일단 같이 가야 된다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했다.


나는 삼겹살이 눈앞에서 구워지고 있었는데도 먹지 않고 있었다. 그러더니 아빠가 물었다.


아빠: 너 왜 안 먹어?

나: 지금 6시 넘었으니까 안 먹을래요.

아빠: 그래도 조금만 먹어. 안 그러면 우리가 다 먹는다.

나: 언제는 살 좀 빼라더니 살 빼야 되는 사람한테 왜 자꾸 고기를 먹으라는 거야?

아빠: 오늘까지만 먹고살은 내일부터 빼면 되잖아. 내일부터 운동해.

나: 다들 이런 식으로 구니까 진짜 짜증 난다고.(울컥)


아빠는 이 좋은 날에 왜 그러냐고 물었고 엄마는 나를 타일렀다. 결국 고기를 몇 점 먹고 집에 와서 토를 했다. 손가락으로 목구멍을 대여섯 번 쑤셔주면 쉽게 토를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실천에 옮겼다. 쉬워? 쉽긴 개뿔이다. 몇번 손가락으로 목구멍을 찔렀는데 잘 나오지도 않았다. 몇 번을 더 한 뒤에야 속에 있는 게 쏟아져 나왔다. 나는 화장실 안에서 어깨를 벌벌 떨면서 주저 앉았다. 짜증 나서 울어버리고 말았다.


잘 먹으면 뒤룩뒤룩 살쪘으니 살 좀 빼라 그러고. 또 안 먹으면 왜 맛있는 걸 눈앞에 두고 안 먹냐 그러고. 내가 알아서 한다고요. 이거 내 몸이니까, 내가 내 몸 알아서 잘 챙길 테니까, 제발 나 좀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돼?


원래 다이어트를 시작하면 주변에서 먹으라고 더 난리다. 그럴 거면 나한테 살을 빼라고 하지를 말든가. 살은 살대로 빼라면서 갑자기 외식을 하는 건 뭐람. 평소 같으면 그냥 웃어넘기면서 "아~ 그럼 뭐 오늘만 먹죠 뭐~" 하고 먹었을 텐데 그 주는 거울을 쳐다도 보기 싫었던 주였고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살, 살, 살' 거릴 때였다. 그래서 살을 빼라고 하면서도 외식을 하러 가자는 가족이 싫었다. 달갑지 않았다. 이게 다 담임 새끼 때문인지 내가 내 몸무게도 모르고 먹은 탓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담임이 나를 따로 불러내서 '체중 조절을 해야 할 것 같구나.'라고 잘만 설득했어도 이 지경까지 왔을까? 그가 많은 아이들 앞에서 내 몸무게를 조롱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식도가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끼며 구역질을 하고 있었을까? 나는 가끔 그를 저주하고 싶어 진다.


출처: BreakNews, 2012/06/14 기사

14살 때부터 계속 식욕을 주체할 수 없는 때가 오면 이 사진을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설정해놨다. 파란색이 식욕을 감퇴시킨다는 말이 있어서 (과학적으로 입증됐는지는 모름) 늘 이 사진을 보면서 식욕을 억눌렀다. 치킨이 먹고 싶으면 파란색 치킨 사진을 보고. 라면이 먹고 싶으면 파란색 라면 사진을 보고. 떡볶이를 먹고 싶으면 파란색 떡볶이 사진을 보고.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뭘 마음껏 누려봤던 적도, 일탈을 즐겼던 적도 없는 것 같다. 가끔 일탈을 해도 괜찮을 법한데 일탈만 하면 죄책감을 느낀다. 우린 왜 이렇게 억제하는 것에 익숙할까.


결국 저렇게 식욕을 매번 억제해서 결과가 참 좋았다면 다행이었겠지만. 나는 지금도 6시 이후에 뭔가를 먹는 걸 기피하고 가족이랑 저녁 먹는 걸 꺼려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빠가 퇴근하시면 저녁 7시인데 나는 저녁 7시 이후에 뭔가를 먹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이랑 밥을 먹는 건 한 달에 한 번 정도다. 그날만큼은 조금 죄책감을 내려놓고 밥을 먹는다. 다음 날 아침에 몸무게를 재고 또 스트레스를 받고 한 끼를 굶기도 하면서. 늘 이렇게 억제만 하면 다행이게? 어떤 날은 걷잡을 수 없이 폭식을 하고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한다.


정말 다이어트는 평생 숙제일까?


다이어트(diet)란 본래 건강을 위해 식단을 조절하고 제한하는 의미로 쓰인 말이었는데 어느샌가부터 '체중을 줄이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내가 50kg 초반대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앞자리를 4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처럼. 왜 그럴까? 왜 오늘도 길거리의 마른 여자를 쳐다보면서 '왜 내 다리는 저렇게 얇지 않을까'를 생각하고 말았을까. 왜 사람의 체형이 다양하다고 생각하지 못할까. 왜 내 몸무게 숫자 앞자리가 4만 되면 체중에 대한 강박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다이어트는 평생 숙제라는데 대체 누가 내준 숙제일까. 왜 나는 '보기에' 좋은 몸이 되어야 할까. 왜··· 왜···.


이런저런 고민들을 남겨두고 오늘 저녁에 캐러멜 마끼아또를 한 잔 마셨다. 그것도 저녁 6시를 넘겨서 말이다. 다이어트는 사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이 사회가 남긴 숙제라고 느껴진다. 그리고 그걸 마치 내가 내게 주는 숙제처럼 나는 '자기만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언제쯤이면 6시가 넘어서도 나는 마음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일단 캐러멜 마끼아또를 한 잔 마셨으니 집 앞에서 30분 정도 걷다가 들어가야겠다. 나는 오늘 저녁만은 하루치의 죄책감을 내려놓고 한 잔의 달달함을 누리기로 한다.


저는 40살 정도 되면 그때 원 없이 먹을 거예요. 저희 부모님이 저한테 해 주신 말씀이 있어요.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건데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먹고 싶은 거 먹고, 여행 잘 다니고 행복하게 살면 정말 좋은 인생이다." 그렇게 말씀해 주셨는데 그때 그렇게 느꼈어요.
- 걸그룹 레드벨벳 웬디 -

저도 최근에 다이어트 많이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느낀 게 둘 다 의미가 있는 삶이에요.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는 행복은 너무 커요. 그리고 몸매가 좋았을 때 행복도 너무 커요. 그래서 그건 자신의 선택이고 건강을 해치지 않는 한 그걸 밖에서 강요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 가수 성시경 -

20170206 JTBC 비정상회담 EP.135



2022.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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