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다이어트 내기를 했다. 한번 했냐고? 아니. 내기를 했던 사람도 여러 명이고, 그 여러 명 각각과도 두세 번씩은 했다. 내 친구들 중에서는 내가 제일 체중이 많이 나간다. 그런데도 나는 53kg다. 물론 안 본 사이에 내 친구들이 나보다 더 체중이 많이 나가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늘 내가 제일 많이 나간다는 인식 속에 산다. 대체 왜?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어떤 사람은 가난이 체질이고, 어떤 사람은 외로움이 체질이라는데 나는 통통함이 체질인지도 모른다. 몸무게도 그렇고, 지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지극히 정상적인데. 내가 자꾸 60kg를 웃돌던 시절을 생각해서 그런가. 사실 몸무게 자체가 나를 괴롭히는 것은 아니다. 그 몸무게를 가지고 살아갔던 내게 충고랍시고, "너는 살 빠지면 정말 예쁠 거야."라고 말하던 놈들이 생각나서. 나는 그게 더 괴롭다.
다이어트 내기를 하면 늘 뻔한 패턴이다. 일주일에 몇 kg씩 빼고 인증할 건지. 올해 크리스마스 전까지 -5kg 빼기. 요번 달 까지 50kg 만들기, 48kg 만들기. 이런 식으로 목표를 정한다. 그리고 정말 극단적인 다이어트 방법들을 따라 한다. 예를 들면 IU 다이어트나 소녀시대 다이어트 같은 것.
출처 : 이뉴스투데이(http://www.enewstoday.co.kr) SBS <한밤의 TV연예> 2013. 10. 23. 방송
무려 2013년에 공개한 아이유 씨의 다이어트 방법인데,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여전히 이 다이어트 방법을 따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에 이와 관련된 마지막 포스팅이 2021년 끝자락이었던 것을 보면. 나는 저 식단을 실제로 행하는 일반인들이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미친 사람이긴 하다. 나도 저걸 해봤으니까 하는 소리다.
저 식단대로 살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하루 종일 누워있어야 함. 둘째,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함. 셋째, 숨을 쉬지 말아야 함.(?)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 정도로 버티기 힘든 다이어트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이유 씨는 진짜 대단한 사람이다. 저렇게 먹고도 계단 오르기를 꾸준히 했다고 하니. 그런 독한 마음을 먹고 열심히 사니 이렇게 승승장구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은 아이유 씨의 다이어트 방법을 사람들에게 권하기 위해서도, 그녀의 독함을 칭찬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아이유 씨가 33 사이즈의 옷을 입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부러워해야 하는가? 아니. 그럼 그런 독함이 연예인으로서 당연한 덕목인가? 아니. 아이유 씨는 연예인이고, 우리는 일반인이니까 "우리는 아무리 다이어트해도 아이유처럼 될 수 없어요. 관두세요."라고 말해야 하는 건가. 연예인이니까 더 날씬할 것을 강요하고, 미디어의 '날씬함'의 기준을 일반인에게 적용하는 것이 이상하리만치 병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하는 게 아닐까. 연예인은 직업이 연예인일 뿐이지, 기본적으로 사람이다. 그들에게 지나칠 정도의 '마름'을 요구하는 것도 우리들이고, 그러한 연예인의 모습을 보고 혹독한 다이어트를 행하는 모습도 우리들이다. 아이유 씨는 처음 데뷔 무대에서 "돼지 같은 게!"라는 욕설을 들었던 것이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아이유 씨가 혹독한 다이어트를 하게 된 것은 단순히 그녀가 연예인이었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다이어트 내기를 하게 되는 계기는 보통 이런 것이다. 여름에 입었던 바지가 안 맞기 시작했다. 헉. 미쳤어. 가을 동안 얼마나 처먹었지? 겨울에는 꽁꽁 싸매고 다니니 다이어트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봄과 여름이다. 오프숄더도 입고, 원피스도 입게 되는 시기. 특히나 스무 살 초반에는 원피스 입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바지는 S사이즈를 입는 것이 늘 부러웠다. 일단 안 맞던 바지를 입고 나면 결심하게 된다. 살이 쪘다.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그러면서 <2주 -5kg 다이어트법> 같은 것을 찾아본다. 2주 -5kg? 미친 거지. 이걸 현실로 만들려면 굶거나, 약을 먹거나 하는 방법뿐이다.
학교 선배와 어느 날 감자탕을 먹으면서도 다이어트 이야기를 했다. 다이어트 얘기나 체중 얘기는 마른 사람이든, 정상체중의 사람이든, 비만인 사람이든 거의 모두가 한다. 남성도 하지만 여성에게서 확실히 더 빈도가 높다. 우리는 원래 입었던 바지가 안 맞는다고 투정을 부린다. 정말 살을 빼야겠어. 그렇게 얘기한다.
하지만 선배는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선배는 45kg 시절을 떠올렸다. 45kg가 되면 체중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 오히려 더 심해졌다고 한다. 살을 더 뺀다고 더 행복할까? 아니. 그냥 건강한 체중만 적당하게 유지하면 되는 거 아닐까. 그녀는 득도했다. 그리고 내게 이렇게 말한다.
바지가 안 맞아? 그냥 더 큰 바지를 사면 되는데?
그녀가 감자탕을 휘저으며 터프하게 말하고, 크게 한입을 먹는다. 오. 맞아. 더 큰 바지를 사면 되는데. 근데 쉽지 않지. 내가 지는 것 같잖아. 더 큰 바지를 사면, 내가 살찐 걸 인정하는 꼴이 되어 버리잖아. L 바지를 입던 사람이 XL 바지를 입는 일이 달갑지는 않을 것이다. M을 입는 사람이 L를 입게 되는 것도 달갑지 않을 것이다. 언제쯤이면 이런 강박을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그 방법 중 하나가 FREE 사이즈를 입는 것이다.
물론 어떤 쇼핑몰은 FREE가 '진짜' FREE가 아니다. FREE로 써놓고 '이게 말이지, 날씬한 사람한테만 FREE야.'라고 속닥거리기도 한다. 그래도 요즘은 밴딩 처리가 되어 있는 옷이 많아서 좋은 것 같다. 바지도 스키니를 입는 사람보다는 통이 넓은 일자바지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어느새 나도 그런 사람들 대열에 탑승했다. 슬랙스나 일자바지가 유행하는 건 참 좋은 것 같다. 거리를 지나다니면서 드는 자괴감이 많이 덜하다. 스키니는 다 갖다 버린 지 오래다.
그냥 더 큰 바지를 사면 되는데?라는 말을 바로 실천하기에 나는 아직 쫄보다. 여전히 나를 S 사이즈 바지에 맞추려고 하고, 그 바지를 입기 위해 살을 빼고자 다짐하기도 한다. 원래 입는 치수보다 훨씬 작은 바지를 사다 놓고 '내년 여름까지 저걸 입기 위해 다이어트!'하고 다짐한 적도 있다. 지극히 정상체중인데도 말이다.
나는 그냥 M이면 M, XL이면 XL인대로 살고 싶다. 옷 사이즈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으니까. S가 되면 SS를 바라게 되지 않을까? SS가 되면 SSS를 바라게 될지도 모른다. 그 정도 옷 사이즈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도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가사도 있으니까. FREE 사이즈의 옷이 내 마음마저도 자유롭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