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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그때보다 살쪄서 만나면 실망하실 텐데

나는 왜 매번 선택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가

by 정휘지

160cm 48kg, s사이즈 테니스 스커트를 즐겨 입던 시절 은행 앞에서 어떤 남자가 번호를 물어봤다. 나는 이런 일이 처음 있었던 일이라 무척 당황했고 "남자 친구가 있어서 번호를 드릴 수가 없어요."라고 적당히 둘러댔다. 그는 내게 집요하게 굴었다. "그냥 친구 하고 싶어서 그래요. 저랑 대화해보고 별로면 전화번호 삭제하셔도 괜찮아요." 이건 대체 무슨 자신감이지? 그는 마치 자신을 좋은 상품을 소개하듯이 내게 설명했다. 나는 결국 그에게 전화번호를 줬다.


애초에 나는 그와 연애를 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그때 내가 은행에 갔었던 이유는 아빠의 병원비 수납을 위해서였다. 나는 아빠 병간호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관뒀고 한꺼번에 우리 집에는 여러 불행이 거듭 덮쳤다. 이때 스트레스를 받았던 나는 식욕이 없어졌다. 아빠 병원에 오시는 아빠의 지인분들이 주신 두유와 오렌지 주스를 먹으며 나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55kg였던 몸무게가 48kg로 줄어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역류성 식도염'으로 아파한 적도 몇 번 있었다. 아빠 병간호를 하면서 매번 점심을 사 먹기에는 생활비가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서 점심을 굶는 날이 많아졌고 결국 어느 날은 잠실나루 역 앞에서 현기증을 느끼고 쓰러지기 직전까지 가게 되었다. 나는 근처에서 택시를 불렀다. 택시 안에서 몸은 편했지만 치솟는 택시비를 보면서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나게 토를 했으니 살이 더 빠졌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장염이나 위염에 걸려 입원했던 녀석들은 하나같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나 장염 덕분에 8kg나 빠졌어"라고. 장염이 언제부터 좋은 다이어트 상품이 되었던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택시 안에서 눈을 감았다.




한 달 뒤 나는 요요를 겪었고 몸무게는 48kg에서 55kg가 아닌 56kg가 되어있었다. 불규칙적인 식습관과 스트레스로 인한 폭식이 불러온 결과였다. 심지어 운동은 하나도 안 하고 거의 굶다시피 했으니 결과는 당연했다. 내게서 번호를 따간 남자와는 별생각 없이 일주일에 두어 번 연락을 하고 지냈다. 딱히 썸을 타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이상한 말을 하지도 않길래 번호를 삭제하거나 차단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은 상대방이 내게 만나서 밥을 먹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내가 번호를 따인 건 내가 48kg였기 때문이었고 이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남: 언제 한 번 만나실래요? 같이 만나서 밥 먹어요.

나: 죄송해요. 그러지는 못할 것 같아요.

남: 왜요? 우리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나: 제가 사실 지금 56kg거든요. 제가 그때보다 살이 많이 쪄서 만나면 실망하실 것 같아요.

남: 지금 살쪄서 만날 수 없다는 말씀이신 거예요?(황당한 말투였다)

나: 네... 번호 물어보셨을 때는 48kg였거든요. 지금은 그때처럼 예쁘지도 않아요. 그래서 지금 솔직히 실망하실까 봐 두려워요.

남: 그때는 확실히 외적인 모습만 봤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데요. 살이야 찔 때도 있고 빠질 때도 있는 거죠. 너무 스스로를 저평가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나는 그가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해 주는 말이겠거니 생각했다. 나는 결국 그와 연락을 끊었다. 그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었다. 이건 오로지 내가 나 자신에게 자신이 없어서였고 살찐 내 모습이 싫어서였다. 나는 다정한 사람을 만나기에 멋지고 자신감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거다. 나는 왜 살이 쪘다는 이유로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야 했고 살이 빠졌다는 이유로 자신감이 치솟아야 했던 건가.


내가 외적인 부분만으로 자신감이 생겼다 없어졌다 했던 것은 그만큼 스스로가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외모 말고는 이성에게 어필할 뭔가가 없었던 거다. 나는 부잣집에서 태어난 사람도 아니었고 뭔가를 특별하게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나는 그런 나의 부족한 면들을 '외모'를 통해 덮어버리고 싶었다. 내가 가진 것에 확신이 없었던 나는 더 외적인 것에 매달렸다.


예쁜 날도 있고 예쁘지 않은 날도 있었다. 살이 찌는 날도 빠지는 날도 있었다. 그게 모두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나를 사랑해 줄 자신이 없었다. 사실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었는데. 난 사실 그만큼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나는 내가 체중이 증가했다는 이유로 내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살을 빼. 안 그러면 널 좋아해 주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난 꼭 누군가의 상상 속 "예쁜 여자"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할까? 난 꼭 누군가에게 선택받아 사랑을 받아야 할까? 그 사랑을 주는 사람이 내가 되면 안 될까?



중학교 시절 내게 '네가 살 빼고 오면 다시 사귀자'라고 했던 놈이 있었다. 난 언제나 그런 사람 앞에서 기가 죽었고 '예쁘지 않아서 선택되지 못한 나'를 미워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택받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늘 사랑받기 위해 선택받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내가 곁에 둘 사람을 선택할 수는 없는 걸까.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카운터에 있던 나와 다른 여자아이를 보며 '카운터에 있는 둘 중에 누가 더 예뻐?'라며 속닥거렸던 놈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난 더 이상 기죽지 않는다. 내 옆에 있는 여자아이를 보며 '나는 덜 예쁘니까. 그러니까 더 살을 빼야 돼.'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내가 그런 무례한 놈들과 말을 섞지 않기로 했다. 사람의 껍데기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사람. 평가하지 않는 사람. 나는 내가 그런 배려심 있는 사람들을 곁에 두기로 했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자고 마음먹었다.


나도 내가 내 사람들을 선택할 거다. 안타깝게도 외모로 나를 품평질했던 너희들은 내 옆에 있을 수 없게 됐다. 내가 너네를 선택하지 않아서다. 이 글을 쓰며 내가 내 자신에게 충분한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의문이 많아졌지만 천천히 시도해보면 되니까. 괜찮을 것 같다.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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