쌩얼에 찍는 사진이 두렵지 않다.
보이기 위한 사진을 찍는 건 이제 관두겠다.
시력이 안 좋은 내가 내 맨 얼굴과 정면 승부하게 된 것은 대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렌즈를 꼈을 때다. 다들 느꼈을 것이다. 렌즈를 끼고 내 맨 얼굴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경악스러움.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였다. 지금껏 내가 이 얼굴로 살아왔다고? 안경을 끼면 내 맨얼굴을 볼 수가 없고 안경을 벗으면 내 얼굴을 거울에 아주 가까이 대야 볼 수 있었으므로 이 경우에는 시력의 배신이라고 해야 할지 시력이 나를 보호해 줬다고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렌즈를 낀 날에는 언제나 화장에 힘을 줘야 했다. 미간이 좁으니 아이라인을 좌우로 길게 빼야 했고 속눈썹이 적으니 마스카라를 두 개씩 써서 속눈썹을 풍성하게 만들어 줘야 했다. 하나는 속눈썹을 길게 만들어 주는 것이고 하나는 컬을 넣어주는 것. 나는 두 가지를 사용했다. 그다음에는 애교 살을 만들기 위해 눈두덩이에 힘을 줬다. 옅은 브라운색 아이섀도를 깔아 준 다음 펄로 눈 밑부분을 칠해주었다. 어떤 남자는 내게 아이섀도가 잘 어울린다고 말했지만 어떤 남자는 그렇게 진하게 하는 것보다 청초하게 화장을 덜한 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들이 했던 말을 반대로 실천했고 꼭 한 소리씩 들었다.
화장을 안 하게 된 것은 코로나가 터지고부터였다. 학원에 가든 도서관에 가든 나는 하루 종일 마스크를 끼고 있어야 했으므로 화장을 하는 건 내 피부를 죽이는 일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화장을 하지 않았다. 직장에 다니는 내 친구들도 화장을 조금씩 안 하기 시작했다. 생존을 위해서 안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화장을 잘 안 하고 다니는 내 남자인 친구들도 마스크를 끼면 턱에 뾰루지가 난다고 서글퍼했다. 그러니 화장을 하고 마스크를 끼면 온갖 피부 트러블로부터 살아남지 못하는 건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화장을 안 하고나서부터 사진을 찍지 않았다. 사진을 찍지 '못했다'라고 말하는 게 더 맞는 말일 것이다. 눈 화장도, 입술색도 없이 찍은 사진은 어떤 SNS에도 올릴 수가 없고 메신저 프사로 사용할 수도 없다. SNS에는 풀메이크업을 한 여성들이 분위기 있는 관광지에서 여행을 하며 찍은 사진들로 도배되어 있으니 맨얼굴에 집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는 건 너무 보잘것없어 보일 것이고 또 비교되어 보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맨얼굴로 집에서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일이 정말 없다.
젊은 시절에, 예쁠 때 사진을 많이 찍으라는 이유는 사진으로 '가장 예쁠 때'의 나 자신을 남기라는 말이다. 화장기 없이 출근하는 내 친구들은 '젊어서 아깝지 않냐'는 말을 상사로부터 듣는다. '아깝다'는 말에서 알 수 있다. 젊은 시절 여성들의 아름다움은 소비재처럼 여겨진다. 지금이 지나면 다시 오지 않을 특가 세일 같은 것이다. 옛말에 25살만 넘으면 결혼시장에서 잘 팔리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나는 내 얼굴을 누군가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도구로 쓰고 싶지 않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직업이 번듯하게 존재하고 화장을 하고 무대에 오르는 직업들이 있지만 나는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사진은 '추억'하기 위해 찍는 것이라는데 언제부턴가 SNS에 올리기 위한 사진만을 찍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기록을 위한 사진이 아니게 되었고 피드를 아름답게 채우기 위해서만 나는 노력하게 되었다. 나는 그러면서 예쁜 사진만 올리려는 강박을 안고 살게 되었다.
SNS를 돌아다니게 되면 기형적인 몸매를 가진 사람이 많다. 버젓이 158cm 43kg는 미달의 몸매 사진을 올려놓으며 다이어트 약품 광고를 하기도 한다. 그 사진의 주인공은 모두 여자다. '대부분'이 아니라 정말 '모두' 여자이다.
외모지상주의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나는 자기 전에 하릴없이 SNS를 배회하지 않는다. 그 대신 책을 읽으며 잠에 들거나 일기를 쓴다.
가장 아름다운 시기의 나 자신을 남겨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에 따라 젊은 시절 예쁜 사진만 남기려고 한다면 나이 들수록 더욱 허망한 마음만 가득 찰 것이다. 그 시절에는 더 이상 소비할 수 있는 젊음의 아름다움이란 없을 것이므로. 나는 내가 젊든 젊지 않든 예쁘든 예쁘지 않든 나의 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겨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맨얼굴로 찍는 사진은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최근에도 친구를 만나 안경을 쓰고 맨얼굴로 사진을 찍었다. SNS에 올려 좋아요를 받을 이유가 없으니 그 사진으로도 충분했고 또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