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에 실린 편지 Mar 23. 2024

중간 고물 어록

  순자 어르신은 유난히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평소에는 얌전하고 말씀도 시키지 않으면 안 하시는 어르신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은 자신의 이야기를 줄줄 하신다.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장사와 조바 등을 하며 자식들을 키웠는데 먹고살기 힘들어서 지금까지 남자 구경을 하지 못했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젊은 시절 살아온 얘기 보따리를 푸는데, 주위에 계신 어르신들이 귀를 쫑긋하고 들을 정도로 재미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흥이 나시는지 순자 어르신은 동료 어르신들을 가리키면서


  “가정에서 버림받은 고물들이 다 모였구먼~~” 하신다. 

  민망하기도 하고 빙긋이 웃었다. 요양 선생님들에게는 중간 고물이라는 어록을 만들어주셨다. 사람에 따라 고물과 중간 고물을 용케도 알려주셨다.      

  중간고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어르신 말씀하시길 

 “아직 쓸데가 있잖아~~”하고 무표정으로 답한다.     

  그럼, 간호사랑 직원인 우리도 고물이냐고 여쭈었다. 멋쩍은 듯 살짝 미소를 보이며 

 “아니야~~ 중간 고물이지~~” 

우린 빵 터졌다. 순자 어르신은 재치와 위트가 가득했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재미와 긍정적인 반응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어르신. 가끔 중간고물이라는 말이 떠오르면 어르신 생각이 난다.     

  식사 시간에는 그야말로 밥에서 눈도 떼지 않고 정신없이 허겁지겁 드신다. 젊은 시절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저렇게 정신없이 밥을 먹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복받칠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순자 어르신의 딸이 모시러 온 날이었다.

  “설이 되면 꼭 다시 오세요,”

  “응.” 하시며 미소를 남긴 채 팔을 흔드시며 아쉬움 반과 딸네 집으로 가는 설렘 반으로 등을 보이시며 나가셨다.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예전 어르신이 계시던 자리로 눈길이 자주 간다. 해가 바뀌고 아들 집에 오실 때가 되었는데 그저 기다려진다.     

   평범하게 다가온 작별의 순간. 우리는 종종 일상 속 작은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곤 한다. 엄마와도 그랬다. 80이 넘은 늦은 나이에 공부하면서 학원 선생님 챙겨줘야 한다고 도시락 하나를 늘 더 챙겨가시던 엄마. 어르신들을 보면서 엄마가  자꾸 떠오른다.      

   작별의 순간이 평범할지라도, 그 안에 담긴 사랑과 추억은 절대 평범하지 않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순간은, 사실은 하나하나가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가치가 있다.      

   어르신들이 앉아계시던 자리를 보며 그때 어르신의 모습과 내 엄마의 빈자리가 별다르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