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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은 Mar 27. 2021

동전 짜장면과 탕수육

가끔 주말이 되면 부모님께서는 봉사활동을 하시러 아침부터 저녁 전까지 집을 비우시곤 하셨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집에서 점심을 먹어야 할 S와 나 그리고 J를 위해 아침부터 여러 반찬들과 밥을 해놓으셨다. 부모님께서는 항상 집을 나서시기 전에 우리들에게 꼭 점심을 잘 챙겨 먹고 있으라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우리들에게 혹시 모를 비상을 대비해 만원 지폐 한 장을 주시곤 했다. 그럼 우리들은 착한 어린이들처럼 네라고 말하며 우리를 대표해 가장 나이가 많은 S가 공손히 그 만원을 받았다. 부모님이 나가시며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우리 셋은 갑자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흡사 어떤 훈련을 하듯 서로 정해진 목표 장소들로 말없이 재빨리 흩어졌다. 우리들의 목표 장소들은 동전 출몰 확률이 꽤 높은 곳들이었다. 거실 피아노 위 열쇠 보관함과 우편함에는 보통 여러 개의 100원 동전들과 가끔 운이 좋으면 500원 동전 한두 개를 찾을 수 있었다. 거실 성모 마리아 상 밑 서랍 또한 요주의 목표 장소였다. 기다란 묵주들 사이로 숨겨진 동전들은 마치 진주알처럼 빛을 내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집안의 온 서랍과 책장들 구석구석들을 온 힘을 다해 숨어있는 보석을 찾듯 희망을 갖고 샅샅이 찾아보곤 했다. 그리고 항상 우리들의 마지막 거물 목표 장소는 안방 장롱 속 부모님의 겨울 외투들이었다. 미처 부모님께서 까먹고 꺼내지 않아서 길을 잃고 어둠 속에서 동면에 빠진 동전들을 빛의 세상으로 구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가끔씩 부모님의 겨울 외투에서 천 원짜리 지폐를 발견하면 우리 셋은 집안 곳곳을 미친 사람들처럼 뛰어다니며 기쁨의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렇게 얼마 동안 열심히 동전 수집을 한 후 우리는 거실에 모여 앉아 각자 자신의 수입이 얼마나 짭짤한지 그날의 수입을 공개했다. 그리곤 다 같이 숨을 죽이고 S가 우리들 대표로 가지 각색의 색으로 변한 동전들과 꼬깃꼬깃 접힌 천 원짜리 지폐들 하나하나 소중히 세고 있을 때면 우리들은 작은 두 손들을 꼭 모아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느님, 제발 오늘 저희가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 먹을 수 있을 만큼 돈을 모았길 저희에게 은총을 내려주세요~~~ 불쌍한 저희들을 굽어 살피소서. 지금 저희 가운데 함께 하시어 저희에게 기적을 베풀어주소서.” 그때 당시 주일학교에 다니며 배운 기도 스킬들을 총동원해서 우리 셋은 그날 총수입이 우리가 먹고 싶은 음식을 시킬 만큼 충분하길 참 간절히 바랐었던 것 같다. 수만 년 같이 느껴지는 그 짧은 시간이 흐른 후 S가 총수입을 발표하면 우리 셋은 그 수입으로 시켜먹을 수 있는 가장 맛있고 실용적인 메뉴를 선정하곤 했는데 그날은 이미 짜장면과 탕수육으로 마음을 모은 뒤였기 때문에 시간을 단축해서 얼른 동네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나마 목소리가 가장 어른스러운 S가 신중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짜장면 2개와 탕수육 소 세트를 시키는 동안 나와 J는 그 모습이 재밌기도 하고 곧 맛있는 음식을 시킨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킬킬 빠져나오는 웃음을 S가 수화기를 놓을 때까지 간신히 참곤 했는데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어 보이는 일들도 같이 하면 너무 재밌고 즐거웠던 것 같다.


그로부터 20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오랜만에 나와 S와 J는 그 추억을 떠올리고는 다들 까르르 웃었다. 그렇게 나름 고생하며 시켜먹었던 그 짜장면과 탕수육의 맛은 정말 천국의 맛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하나같이 그때만큼 맛있는 중국 음식은 그 후로는 먹어본 적이 없다며 우리들 기억 속에서 어느새 돈으로도 살 수 없게 된 그 추억의 맛을 그리워했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안방에 들어가 부모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데고 돈까지 몰래 가져다 쓴 것이 잘못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당시에는 동전 하나 두 개를 가져다 쓴 것이 큰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철없이 행동을 했었던 것에 대해 깊이 반성했다. 언젠가 이 이야기에 대해 조심스럽게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더니 가만히 그 말을 듣고 난 어머니의 너무나도 쿨한 한마디: “너희 그러는 거 다 알고 엄마가 너희 힘 빼지 말고 먹고 싶은 거 먹으라고 일부러 만원씩 주고 나간 거야.” 

아, 실수와 잘못들이 셀 수 없이 많던 어리고 철없던, 그래서 더욱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우리들의 시간들. 나는 우리들의 시간의 이야기를 내가 좋아하는 명언을 마지막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다.


“그렇다. 다시 돌아올 수 없이 우리 삶의 모든 중대한 순간들은 단 한 번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렇게 다시 돌아오지 못함을 완전히 알고 있어야만 인간은 인간일 수 있다.” 밀란 쿤데라 - <농담>  


추천곡: 빅뱅의 붉은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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