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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은 Mar 27. 2021

오늘 너의 하루는 어땠니?

대학원 때 내가 즐겨 대화하던 교수님 한 분이 계셨다. 편의상 M 교수님이라고 하겠다. 학교 건물 7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요리조리 여러 사람들과 문들을 지나 어느 학과 가장 구석에 있는 M 교수님의 작지만 왠지 모르게 아늑한 방이 있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엘리베이터의 버튼과 길게 늘어진 복도들이 눈앞에 보인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백발의 M 교수님은 그 방 한가운데 자신의 의자에 편안히 앉아 컴퓨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오페라 음악을 들으며 게으른 햇빛을 받으며 열심히 논문을 읽고 계셨다. 난 양손에 방금 정수기에서 따라온 신선한 물이 든 파란 플라스틱 컵들을 들고 교수님께 인사하며 물컵을 하나 건네었다. 그러면 M 교수님은 읽던 논문을 내려놓고 스피커 소리를 줄이시고는 천천히 물컵을 받으시고는 빙긋 웃으시며 한 모금 물을 마신 후 “오늘 너의 하루는 어땠니?” 물어보셨다. 그렇게 교수님은 항상 나에게 나의 하루는 어땠냐고 물어보셨다. 그러면 나는 잠시 생각을 한 후 시시콜콜 나의 하루를 마치 보고하듯 말하면서 대부분은 긍정적이고 즐거운 이야기로 시작해서 중간에는 화가 나거나 속상했던 일들 그리고 마지막에는 걱정되는 일들을 이야기하곤 했다. 희한하게도 가족이나 동기들,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는 이야기들조차 올해로 적어도 여든 이상은 되셨을 하얀 백발을 하고는 비록 의자에 가려졌지만 키가 190cm (아마 젊었을 때는 190cm 이상이었을 듯한)이나 되는 할아버지 교수님에게 말하곤 했었다. 


그래서 나는 이 M 교수님의 방을 ‘제3의 방’이라고 나름 명칭 했다. 내 집과 내 학교/직장이 내 인생에 제1방과 2방이라면 기분 좋은 오후의 햇살이 들어오던 그 작고 아늑한 방이 내 인생의 제3의 방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굉장히 자유로움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누군가의 시선, 편견, 판단 등을 걱정할 필요 없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의 이야기들을 몇 시간이고 재잘재잘하더라도 M 교수님은 아주 흥미롭다는 듯 내 이야기를 들으며 홀짝홀짝 물을 마셨다. 참고로 그 당시 얼마 전 뇌졸중이 와서 얼마 동안 학교에 나오시지 못했던 교수님을 방문할 때마다 나는 꼭 물컵을 하나씩 들고 갔다. 아마도 어느 수업에서 뇌졸중을 겪은 환자들은 충분한 수분 섭취가 필요하다고 듣고 난 후 부터일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물 한 컵을 받는 댓가(?)로 할아버지 교수님은 나의 이야기를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셨다. 


어느 날 나는 특별히 페퍼민트 차를 사 가지고 교수님 방에 갔다. M 교수님은 특히나 소프라노가 부른 오페라 음악을 즐겨 듣곤 하셨는데 이날은 조수미가 부르는 음악을 듣고 계셨다. 그날 아마 나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 중간고사가 코앞으로 다가와 매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을 것이다. 교수님께 가기 전 편의점에 들러서 스스로에게 주는 상으로 대량의 초콜릿 간식들을 구입한 후 왠지 교수님 방에 빈손으로 가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평소 내가 좋아하는 페퍼민트 차를 한잔 같이 사 가지고 온 것이다. 그래야만 내가 산 초콜릿 간식들에 대해 덜 죄책감을 느낄 것 같았을 것이다. 페퍼민트 차를 호호 불어 마시는 M 교수님은 그날도 어김없이 나에게 “오늘 너의 하루는 어땠니?” 물어보셨다. 그날은 영 재잘거릴 기분이 아니었던 나는 “별 일 없었어요. 그냥 그렇죠.”라고 넘기며 다른 대화 주제가 없나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나는 약간은 장난반 진심 반으로 교수님에게 말했다. “그런데 교수님,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교수님은 뭐 그런 것을 물어보냐는 식으로 날 한번 쓱 보신 후 쿨하게 대답하셨다. ”흠.. 아마도 95살쯤 되려나...”  나는 M 교수님의 백발과 살짝 굽은 어깨, 그리고 천천히 걷는 걸음걸이에서 그분이 연세가 꽤 많으실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아흔다섯은 놀라운 숫자였다.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도대체 장수의 비법이 뭐예요?”

교수님은 차를 한 모금 드시고는 허허 웃으시며 내 눈앞에 자신의 큰 두 손을 흔들며 별거 없다 하셨다.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그래도, 정 그러면 따로 챙겨 드시는 게 있으신가요?” 하며 내심 혼자 남몰래 꾸준히 챙겨 드시는 보약이나 하다못해 인삼이나 홍삼이라도 있나 생각했다. “내가 홍삼이라도 먹는 줄 알지?” 내 생각을 꿰뚫어 보시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아니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으며 멋쩍게 말하자 교수님은 자신의 책상 구석에 놓인 홍삼사탕들을 한번 쳐다보시더니 다시 허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저건 내 옛날 한국 제자가 저번에 사다준 것이고, 나는 홍삼은 별로 안 좋아해” 아니 홍삼도 아니면 도대체 장수비법이 무엇인지 나는 속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다시 인내심을 갖고 여쭤봤다. “그럼 딱히 드시는 건 없나요?” 그 말에 교수님은 몸을 돌려 방 한쪽에 있는 상자에서 펩시 캔을 하나 꺼내오셨다. “내 장수의 비결은 바로 펩시와 초콜릿이지!” 순간 그 말을 들은 나와 그 말을 한 교수님 둘 다 빵 하고 폭소를 터트렸다. 둘 다 한참 동안 웃었던 것 같다. 특히나 나에게는 아마 그날 처음, 아니 그날들 중 꽤 오랜만에 웃었던 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 M 교수님은 펩시와 초콜릿을 좋아하시지만 난 절대 그 두 가지가 그분의 장수 비결이라는 사실을 정말 믿지 않을 것이다.)


한바탕 웃고 난 후 난 진지하게 교수님께 부탁드렸다. “교수님, 제발 이 어리고 철없는 저에게 당신의 고대 지혜를 좀 나눠주세요.” 아흔다섯이라는 나이 앞에서는 나는 나도 모르게 나 스스로가 어리고 철없다는 사실을 뼈 깊숙이 재빨리 인정하고는 어떻게 하면 아흔다섯까지 일하시며 사시는 그 비법을 알아내고 싶은 조바심을 잘 감춘 체 가볍게 보이도록 머리를 반쯤 숙이며 내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자 M 교수님은 이번에는 껄껄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난 전혀 지혜롭지 않아. 오히려 나는 바보란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교수님, 당신이 바보면 저 같은 사람은 도대체 뭐가 되나요?’ 울그락 푸르락 되려는 얼굴에 간신히 미소를 띠고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교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했다. 

“나는 바보지만 한 가지 아는 게 있지.” 

난 다시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그렇지! 역시 뭔가 알고 계시는 게 분명해!’ 난 초롱초롱한 눈으로 교수님이 입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윽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뿐이야.” 

“네? 뭐라고요?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죠?”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아는 것에 대해서만 알고 있지. 하지만 진정 자신이 모르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지. 나는 아직도 모르는 게 굉장히 많다고! 내가 아는 것은 아주 조그만 것에 지나지 않아. 나는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지. 아주 흥미롭단 말이야” 


그렇게 허허 웃으며 말씀하시며 차를 한 모금 마시던 백발의 교수님과의 이 대화를 나는 몇 년이 흐른 오늘도 그때와 똑같은 충격을 쉽게 떨치지 못한다. 과연 나는 얼마나 내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까? 또 그동안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얼마나 자만하며 살지는 않았는가. 배움에는 나이가 없고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 하지 않았는가. 지금도 그 대화를 생각하면 새삼 얼굴이 뜨거워진다. 왜일까? 내가 느끼는 이 부끄러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의 자만심뿐만 아니라 배움에 있어 너무나도 나태하고 또 그 기회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는 나의 자세가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확실히 나는 내 선택으로 공부를 했고 또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과연 나는 그 순간순간 진정 깨어있었는가? 내가 진정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할 줄 알고 아는 것에 대해서는 겸손한 자세로 더 배우려는 자세를 취했는가? 또한 모르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알아가려는 배움의 노력을 했는가?  


그날 나는 내가 사 온 대량의 초콜릿 간식을 다 먹고 나서도 왠지 굉장히 씁쓸했었던 것 같다. 우리는 과연 누구를 위하여 공부하는가? 누구를 위하여 배우는가? 문득 나의 어린 조카가 떠올랐다. 이 작은 아기가 어느덧 아이가 되어서 얼마 전부터는 재잘재잘 쉬지 않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가 열심히 말하는 동안 언니도 열심히 대답하고 반응해주는 모습을 보고 나는 생각했다. 아이는 참 열정적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 한다. 쉬지 않고 말이다. 또한 아이는 결코 혼자서 배울 수 없다. 옆에서 끊임없는 조력자의 케어와 도움/지도 속에서 온전한 배움을 얻고 또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M 교수님은 내가 홀로 방황하며 배움 속에서 허덕일 때 내 옆에서 내 이야기들을 들어주며 어쩌면 내가 스스로 내 배움의 길을, 배움에 대한 내 열정을 찾을 수 있도록 나와 함께 내 옆에서 천천히 걸으셨던 게 아닌가 싶다.


오늘도 나는 아기새처럼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조카와 그 조카 옆에서 인내심을 갖고 어떤 면에서는 나날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내 언니를 보면서 M 교수님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감사한 마음을 잊기 전에 서둘러 문자를 보냈다. “교수님, 오늘 하루는 어떠신가요?” 이제는 내가 교수님 하루의 안부를 묻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님께 답장이 왔다. “나는 오늘도 충분히 수분을 섭취했단다. 그러니 걱정 안 해도 돼. 너 스스로 잘 챙기렴.” 나는 앞으로 내 인생이 정말 힘들고 지칠 때마다 이 문자를 꺼내보며 교수님을 떠올릴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늦은 오후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오페라 음악을 틀어놓고 새로운 배움의 삶을 살아가는 백발의 M 교수님을 말이다. 그러고 나면 나도 우울과 좌절의 이불들을 깨끗이 햇빛에 말리고 일단 시원한 물 한 컵을 먼저 마신 후 스스로에게 말할 것이다 “나도 오늘 충분히 수분을 섭취했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자. 다 잘 될 거야. 오늘도 나의 하루는 굿!!”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물어보고 싶다.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라고. 


추천곡: M 교수님이 좋아하시던 곡 헨델의 <울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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