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불꽃

오늘의 노래: 밥 딜런의 Knocking on Heaven's Door

by 이제은





대학교 시절 호기심에 연기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의욕만 앞서고 내 마음대로 표정도 대사도 움직임도 되지 않았다. 실망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어색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한 학기에 걸쳐 내가 그 수업을 통해 배운 것은 나는 연기에는 소질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원 없이 배우고 해 봐서 즐겁고 재밌긴 했었다.



나는 항상 매료되었다. 예술에. 감동에. 보는 사람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영감을 주는 멋진 작품들을 마음 깊이 동경하고 사랑했다. 뜨거워지는 내 마음을 나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 졌다.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불꽃을 일으킬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그는 마치 태풍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조용하고 차분하게 노래를 불렀다. 그의 목소리는 신비스러워서 듣는 사람이 어떤 감정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밥 딜런 자서전, 밥 딜런>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불꽃을 지피는 것보다 중요한 건 먼저 따뜻하게 데워주는 이란 것을. 다짜고짜 불을 피운다고 피어 지지 않듯이 시간을 들여 준비를 해야만 작은 불꽃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를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준비는 내게서 시작되어야 했다. 과연 내가 무엇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확실히 연기는 아니었다.) 나 스스로의 마음을 먼저 움직여야만 다른 사람의 마음 또한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어떠한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때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었을 때 그 사람의 마음이 움직인단다."


그렇다면 내가 잘하는 일중에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나는 일단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명언들을 찾아보고 그중에 좋은 부분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주는 것을 좋아했다. 대학교 때와 대학원 때는 집안 곳곳에 좋아하는 명언 구절들을 붙여놓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것도 좋아했다. 왠지 그러고 나면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신기하게 힘도 났다. 글은 내게 큰 동기를 부여해주었다. 나는 글의 힘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학업 중에는 단순히 책을 읽고 집안의 명언들을 읽으며 글과 나는 수동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마음속 깊숙이 작은 불꽃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다만 홀로.



그렇게 꽤 오랜 시간 직업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며 바쁘게 지냈고 어느새 불꽃의 존재는 서서히 잊혀졌다. 가끔 굉장히 좋은 음악이나 영화들을 접하면 다시금 타오르긴 했지만 그 크기는 미미했다. 이미 어느 정도 확고해진 일상에 그 작은 불꽃이 서있을 자리는 거의 없어 보였다.




나는 먼 길을 왔고 가야 할 먼 길을 출발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운명이 그 자신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운명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
<밥 딜런 자서전, 밥 딜런> 중에서



운명이란 것이 과연 존재할까? 만약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떤 느낌일까? 어떻게 해야 우리는 이 운명이라는 것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궁금해졌다. 지금 운명이 나를 쳐다보고 있더라도 내가 알아채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운명은 과연 나를 기다려줄까? 아니면 뒤돌아 보지 않고 가차 없이 나를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인가.


아... 물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말잇기를 하듯 길게 늘어지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왜 이런 생각들은 항상 한가로울 때 몰려오는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누군가 속 시원하게 대답해줬으면 싶었지만 침묵만이 내게 대답했다. 생각들을 밀어내는 데에는 다른 생각들이 제일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책을 읽기 위해 밀리의 서재 (책 읽는 어플)를 열었다. 그때 마침 밀리의 서재와 브런치의 공동 프로젝트에 관한 정보가 떴고 나는 호기심에 브런치는 어떤 곳일까 궁금해서 들어와 보게 되었다.


처음에 나는 꽤 놀랐다. 충격도 받았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글로써 자신들의 생각을 나누고 있다니. 너무나도 다양하고 독특한 글들의 바다였다. 글들은 신선하고 싱싱했다. 저마다 멋진 모양과 색을 가진 물고기들 같았다. 그중에는 잔잔한 감동을 주는 글들도 있었다. 한참 많은 글들을 읽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단숨에 브런치라는 공간에 매료되었다. 이곳이라면... 나도 다시 한번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마음속 깊이 작은 불꽃이 다시 고개를 내미는 것이 느껴졌다. 두근두근. 심장도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브런치 활동이 시작되었다.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불꽃은 시도 때도 없이 타올라 오히려 말썽꾸러기 같았다. '어서 안 쓰면 까먹을걸~?' '지금 안 쓰면 이따가는 안 써질지도 모르는데~?' 나를 약 올리듯 불쑥불쑥 나타났고 그때마다 나는 혹여 정말 생각들이 날아갈까 봐 허겁지겁 노트에 적곤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길 전철 안에서 떠오른 생각에 대해 재빨리 메모를 한 후 집에 돌아와 찬찬히 정리를 했다. 마무리까지 하고 나면 굉장히 개운했다. 나는 말썽꾸러기 불꽃을 쓰다듬어 주며 고맙다 말해주었다. 덕분에 내 작가의 서랍에는 항상 이야기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기네들끼리 또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불꽃 못지않게 아주 재미난 친구들이다. 나는 이 친구들 하나하나를 소중히 다듬고 빚어내어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글들로 만들어주고 싶다. 나의 진심의 불꽃이 담겨 그 불꽃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전달되어 지친 마음과 영혼을 위로해줄 수 있기를 바라며.




<영감의 불꽃>


쓰고 싶은 말도

나누고 싶은 말도

전하고자 하는 말도

넘치도록 많은데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하염없이 흘러간다



나는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다 담을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든다.

그 두려움을 곤히 잠재우는

유일한 힘은

영감



영감이 떠오르고

마음이 타오르기 시작하면

그 순간을

끌어 모아내야 한다

끝까지 파고 들어가서

모조리 끌어안아야 한다

남김없이



그때 비로소

영감은 다시 불꽃으로 살아나

더 크게 활활 타오른다

곧 생각의 흐름은

출렁이는 거대한 파도가 되어

넘실대다가

순간 멈춘다



홍해의 기적같이

바다가 쩍 열리며

길이 보인다

감춰졌던,

혹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신비로운 길이



글을 쓰는 것은

날마다 새로이

긴장과 설렘으로

가득 찬

이 신비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는 모험



항상 준비된 마음으로

불꽃을 기다린다.

매우 비밀스러운

이 영감의 불꽃을

자칫 놓치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테니






추천 음악은 밥 딜런의 Knocking on Heaven's Doo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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