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을 틔우다

오늘의 책: <사람의 씨앗 - 전호근>

by 이제은




싹을 틔우고서도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듯이 뜻을 품고 있어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법이다. 뜻은 내가 품는 것이지만 쓰임과 쓰이지 않음은 세상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씨앗 - 전호근>




처음 이 글귀를 읽었을 때 몇 번을 다시 읽어봐야 했다.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보기도 했다. 간단한 두 문장들 안에 매우 심오한 뜻이 담겨있었다. 글귀를 읽고 난 후 왠지 모르게 슬픔에 젖어 괜히 시무룩해졌다. 꽃을 피우지 못한 작은 싹들의 마음이 안타까워서였을까. 슬며시 떠오르는 내가 이루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슬픔이었을까.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처럼 아침부터 마음에 바람이 휭휭 불어댔다. 나는 다시 글귀를 읽어보았다. 뜻의 쓰임과 쓰이지 않음은 세상에 달려 있다라... 여기서 세상이란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과 사회를 일컫는 말일 텐데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한다고 마음을 먹을 순 있어도 사회와 세상 사람들이 그 무엇에 대한 가치를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결국 내가 추구하는 그 무엇을 이루지 못할 수 도 있다 라는 것일까.



뜻을 품는다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것이 꼭 이루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계속해서 싹을 틔워내는 것은 사실 엄청난 용기와 인내심, 그리고 믿음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이런 생각이 드니 왠지 마음이 한결 잔잔해졌다. 마음에 순풍이 솔솔 불어왔다. 뜻을 품는다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듯했다. 다시 글귀를 읽어보았다. 이제는 안타까움도 아닌 슬픔도 아닌, 작은 희망의 햇살이 느껴졌다. 그 따스한 햇살은 내 마음을 겸허함을 싹 틔웠다. 뜻을 품기 전에 내 안을 먼저 비워내야 함을.



내가 새롭지 않은 채로 하루를 맞이한다면 내가 맞이하는 세상 역시 새로울 것이 없다. 나날이 새롭지 않다면 내가 맞이하는 나날이 구태의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탕 임금의 목욕통에 새겨진 글은 바로 세상이 새롭지 않고 진부하다고 느낄 때, 참으로 진부한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살아가면서 날마다 좋은 날만 있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 자신을 새롭게 하면 나날이 새로워짐〔日日新〕으로써 나날이 좋은 날〔日日是好日〕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나 자신, 나의 주관을 새롭게 하면 나에게 다가오는 객관 세계가 새로워지고, 객관 세계가 새로워지니까 내가 또 새로워지는 것이다.
<사람의 씨앗 - 전호근>



어떤 것을 이루고자 한다면 매일 새로운 아침을 맞이해야 함을.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롭게 하는 아침을 보낸다면 나도 내 글들도 더 새로워질 수 있을까? 매일매일 조금씩. 마치 선비가 수양을 하듯 꾸준히.



그래도 수양을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다. 선비가 수양하는 까닭은 세상에 쓰이기 위해서나 사람들과 사귀기 위해서 혹은 이름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산의 돌로 내가 가진 옥을 다듬을 수 있다지만 내 안에 옥이 없다면 다른 산의 돌이 아무리 많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선비는 먼저 내 안에 옥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사람의 씨앗 - 전호근>




나는 짧은 명상과 음악으로 내 아침을 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들여다본다. 혹시라도 어제 있었던 속상한 일들이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들로 가득 차 있지는 않은지. 내가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까? 내 안에 미처 소화되지 못한 감정들과 생각들을 천천히 곱씹어 소화시키는 것부터가 내 안의 옥을 다듬는 일의 시작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감정들과 생각들을 소화시키고 나서는 빈 공간은 있는지 둘러본다. 그리고 한편에 자리 잡은 작은 싹들을 돌본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거라~새싹들아!"







오늘 아침 음악으로는 Ludovico Einaudi의 Una Mattina (아침)를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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