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기억하지 못하는 (상)

창작소설

by 이제은


창작 소설입니다.
다소 선정적인 부분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으시기 전에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날, 눈을 뜨면 갑자기 엄청난 허무감이 밀려와 나의 마음을 이유 없이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슬픔의 바다로 만들어 버린다. 마치 내가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될 엄청난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는데 그것이 어떤 것인지 조차 잊어버려 더 이상 찾을 수 도 없어버려 진 그런 알 수 없는 마음. 그 슬픔의 바다의 수면은 너무나도 고요한데 왜 내 마음은 쉼 없이 부서지고 요동치는 것인지.


얄미운 바다. 그런 허무감에 아침부터 마음이 지친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창가로 걸어간다. 그리고 무거운 커튼을 활짝 열고 창문을 열어 테라스로 걸어 나가 끝없이 펼쳐진 햇빛에 별가루처럼 반짝이는 푸른 바다를 눈에 가득 담는다. 그리고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내뱉는다. 그리고 애써 마음을 가라앉힌다. 내 마음이 이렇게 허무한 이유는 단순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행복하고 달콤한 꿈을 꾸어서 일지도...





흥겨운 라틴음악이 시끄럽게 온 몸을 감싸 안았다. 장렬한 햇빛이 지나간 지 얼마 안 된 땅으로부터 느껴지는 열기와 기분 좋은 선선한 바람이 느껴졌다. 우리는 열정적인 리듬에 몸을 맡긴 채 신나게 춤을 췄다. 가로등 같은 불빛이 희미하게 내려앉아 우리는 서로의 눈빛을 희미하게 하지만 강렬하게 느끼며 계속해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의 두 손이 내 허리를 감싸 안으며 우리는 한층 더 밀접하게 몸을 맞대고 마치 우리가 그 리듬과 하나 된 듯 춤을 췄다. 그 순간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멈출 수 없다는 듯 온 힘을 다해 몸을 흔드며 우리는 서로의 타는듯한 눈빛 속에서 차갑고 축축해진 손바닥의 감촉을 느끼며 가끔씩 들려오는 마치 조금이라도 느려지면 죽을 것 같이 빠르게 뛰는 서로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몇 분, 몇 시간을 미친 듯이 춤을 추고 난 후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우리들만의 광란의 춤의 파티에서 걸어 나와 얼음이 잔뜩 들어간 시원한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그리곤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제정신으로 돌아오려고 한두 번 애를 쓰다가 그런 서로를 바라보고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 동안 맛있는 웃음을 터트린 후 우리는 다시 희미한 불빛 아래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에게 천천히 입을 맞췄다. 그것은 우리가 추던 춤과는 사뭇 다른 아주 천천히 느린 속도로 시작했다. 마치 첫 키스를 하듯 천천히, 조심스럽게 상대의 미세한 움직임, 콧등으로 느껴지는 떨리는 숨결 하나하나까지 소중히 서로를 느끼며.



나는 눈을 감고 그의 입술의 촉촉한 부드러움을 흠뻑 느끼며 그의 떨리는 손이 어느새 나의 허리를 쓰다듬으며 아래로 향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손을 뻗어 땀방울이 맺힌 그의 머리칼 사이로 손가락을 헤집었다. 그가 달아오른 입술을 떼자 나의 귓가에 그의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 나도 그의 얼굴에 내 얼굴이 닿은 채로 숨을 내뱉었다. 이윽고 그가 나를 안아 올려 우리들이 묵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 방안에 도착해 그의 품에서 내려온 나는 잠시 입술을 떼고 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자 그 또한 마치 내 영혼을 꿰뚫어 들여다보듯 부드럽게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안에서 나는 마치 내 몸안에서 그를 한시도 기다릴 수 없이 갈구하는 그 열망을 보고 순간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살짝 열어놓고 나간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밤바다의 서늘함 때문일지도...


그리고는 우리는 그 열망에 자칫 불타지 않도록 그 열망의 입구를 단단히 부여잡고 다시 입을 맞췄다. 아주 조심스럽게, 마치 소중히 대하지 않으면 자칫 깨져서 부서질지도 모른다는 듯 시간을 들여서. 그리고 결코 그 열망의 끈을 완전히 놓지 않도록 계속해서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며 말없이 서로가 원하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열망의 끈을 잡고 있다는 사실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그 열망의 도가니 속에서 서로의 영혼과 하나를 이뤘다.


온몸이 쭈삣 서듯 순간적인 경직에 이르는 동시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로 우주 한가운데서 폭발하는 그 어떤 것의 에너지가 온몸 구석구석을 순식간에 훑고 지나갔다. 그 짧지만 엄청난 에너지가 온전히 우리들의 손가락과 발가락 끝까지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우리는 나란히 누워 천천히 숨을 골랐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의 손을 잡고 그렇게 우리를 지나간 그 엄청나게 황홀하고도 아름다웠던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어서 희미해지는 그 순간의 노력이 부질없음을 앎에도 간절히 부여잡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몸을 돌려 누워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로 천천히 손을 들어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레 그의 콧날을 훑었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 위에 자리 잡은 눈썹 한가닥 한가닥 만졌다. 그의 수염처럼 꺼칠하면서도 미세하게 다른 눈썹들은 내 손끝을 간지럽혔다.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그도 천천히 그의 손을 들어 내 손가락보다 더 길고 두툼한 그의 손가락 끝으로 내 콧날을 훑고 내 눈썹을 한가닥 한가닥 만졌다.

아, 이런 느낌이구나.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또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말이다. 이렇게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그 사람의 손길 하나하나에 사랑의 존재를 느끼는 것. 만약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분명 이 손길과 같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나는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우리의 지금 이 행복이 과연 얼마나 지속될까? 이 뜨거운 사랑이 식거나 우리가 아프고 나이가 들어도 과연 우리는 지금 이 순간처럼 행복할 수 있을까?”


그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본 후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안에 깊은 밤바다가 서려있었다. 그가 나를 한번 꼭 껴안아주고는 마치 바닷속 깊은 곳에서 속삭이듯 내게 말했다.


“글쎄, 그건 아마도 그때 가야만 알 수 있겠지.”

나는 좀 실망스러워진 얼굴로 그의 품에서 얼굴을 내밀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나를 쳐다보며 그는 미소 지으며 이어 말했다.


“영원한 행복, 영원한 사랑은 분명 존재하기 힘들겠지. 그런 얘기들은 영화나 동화에나 나온다고 우리들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서 남몰래 그런 사랑을 믿고 또 찾으려고 노력할지도 몰라. 어쩌면 사는 내내 멈추지 않고 희망을 품고 말이야. 우리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들도 마찬가지야. 이 감정들이 영원할지는 나는 장담할 수 없어.”


그 말을 듣고 나는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마치 그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듯 그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는 한번 숨을 들이켠 후 나를 지나쳐 창밖을 쳐다보고는 다시 내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았다. 그리곤 담담히 말했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끊임없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뿐이야. 내가 지금 너에게, 그리고 네가 지금 나에게 느끼는 이 감정을 매 순간 기억한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사랑은 영원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



그는 다시 팔을 뻗어 나의 머리를 소중히 자신의 품 안에 안으며 말했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랑하는 평범한 우리의 이 사랑은 그 시간 내내 특별해지는 것이지. 그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서 앗아갈 수 없는 우리들만의 영원한 사랑이 되는 거야.”


나는 다시 그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처럼?”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 둘의 사랑은 엄청난 장벽들에 가로막혀 결국 죽음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해. 그렇기 때문에 현재 살아서 진행 중인 우리의 사랑과는 좀 다르지. 마치 세상 모든 사랑 이야기가 다 제각각의 사연과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듯 말이야. 그렇다고 우리의 사랑이 그들의 사랑에 비해 덜 아름답고 덜 소중하다는 것, 혹은 덜 가치 있다는 것도 아니지. 애초에 사랑은 그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야.”


나는 그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나도 모르게 찡그린 나의 미간을 손가락 끝으로 쓰다듬으며 이어 말했다.


“우리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서로가 서로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어줄 수 도 있어. 우리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 그 자체를 기억하고 이어나갈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떨 때에는 서로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떨 때에는 그 어떤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지. 이때 우리가 그 어떤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되어도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 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가 말을 멈추고 다시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깊은 밤바다가 서려있던 그의 눈동자안에 비친 나와 내 옆에 나를 가슴에 안고 있는 그...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침대에 누워 그저 서로를 바라보는 우리들. 그를 따라서 내가 묻는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꿈, 기억하지 못하는 (하) 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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