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을 닮은 두부처럼

by 이제은

하얗고 보드라운 두부가

나는 좋다

너무 단단하지도 않고

너무 연약하지 않고

적당히 단단하고

적당히 연약한 두부


새하얀 두부를 보면

겨울이 떠오른다

뽀드득 뽀드득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냔 첫눈을

사뽀시 사뽀시

걸었던 기억


날카로운 칼날에

미끄러지듯

술술 잘리는 두부는

또 다른 새하얀 단면을

드러낸다.

드러내 보인다.


그 하양은

놀랍도록 새하얗다

이렇게 하얀 두부의

고운 자태를 바라보자니

괜히 아까운 마음이 생겼다.

조금만

조금만 더 이대로

남아 주웠으면


바라보는 내 마음도

첫눈을 닮은 두부처럼

하얗게

새하얗게

물들 수 있도록



"내 마음은 이러한데

두부야, 네 마음은 어떠니?

너도 이대로가 좋지 않니?"

나무 도마 위에 놓인 하얀 두부는

마치 도를 깨우친 한 명의 승려처럼

근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모습이 변한다 해도

나는 그저 같은 두부라네."


두부의 한마디가

커다란 종소리처럼

머릿속에서 크게 울렸다

모든 것을 수용하는 듯한

두부의 열린 마음 앞에

순간 내 마음이

한없이 조그맣게 느껴졌다.


비단 이 두부만이 아녔으리라

나의 욕심과 고집으로

끌어안고 있었던 것은.


두부의 단면이 드러나듯

숨겨졌던 이기심이

홀연히 드러나자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서둘러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불에 달구기 시작한 뒤

하얀 페이퍼 타월로 두부의 물기를

꼭꼭 눌러 닦아내었다.

두부가 행여 부서질까 봐

양손으로 조심스레 들어 올려

천천히 닦아내었다.


이윽고 두부도, 프라이팬도,

나도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하얀 두부 조각들을

차례차례 살포시 올렸다.


차르르르, 치직치직

차르르르, 치직치직


몇 분 동안 두부 조각들이

들썩들썩 어깨를 움직였고

들기름을 살짝 둘러주고

몇 분 더 춤을 추게 놔두었다.

이윽고 두부들이 잠잠해지면

조심스레 뒤집어 주었다.


차르르르, 치직치직

차르르르, 치직치직


들기름의 고소한 냄새 속에서

노릇노릇 먹음직스럽게 구워지는

황금빛 두부의 자태는

가히 늠름해 보였다.



두부를 찍어먹을 양념은

간장 조금, 고춧가루 조금

파 조금, 그리고 참기름도 조금

넣어 쉭쉭 잘 섞어주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소한 두부와

매콤 짭자름한 양념이

아주 잘 어울릴 듯했다.


적당히 단단하고

적당히 연약한 두부가

이처럼 맛있는 두부부침으로

탄생한 것을 보니

나 또한 때로는

적당히 단단하고

적당히 연약해도

왠지 괜찮을 듯싶었다.


내 모습이 변한다 해도

나는 그저 같은 나일뿐.

같은 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지.

가장 중요한 것은

변함없이

한결같이

첫눈을 닮은 두부처럼

내 마음을 깨끗하게

선하게 만들어가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