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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은 Mar 31. 2021

내 할머니가 건물주야~


대학교에 다닐 때 이야기다. 

성당 청년부 모임에서 가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미사 중 낯선 뒤통수를 보면 '아, 오늘도 새로운 사람이 왔구나' 라고 바로 눈치 챌 정도로 나름 소규모 성당이었다. 그때의 나는 참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먼저 다가가 인사를 나누고 자기소개를 하며 적극적으로 연결점을 만들려고 노했다. 지금의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에너지 소모라 생각하는 집순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그때는 에너지도 참 많지 않았나 싶다.



나는 미사 도중 어렵지 않게 낯선 뒤통수들을 발견하면 꽤 신나 했었다. 미사가 끝나기도 전에 그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또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서 도저히 미사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서 미사가 끝나고 서둘러 그 사람들을 만나러 가곤 했다. 일단 미소를 띠고 다가가서 친근하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인사말을 건네었다. 그리고는 이런저런 기본 대화를 나누고 ‘아 오늘도 새로운 사람을 친구로 만들었다!’ (페이스북 친구 혹은 인스타 그램 팔로워 추가 개념)며 뿌듯해했다. 이 당시 나는 ‘사람 사귀는 게 어렵지 않네,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친구들 숫자를 늘릴 수 있겠는걸?’라는 생각을 하며 sns 상의 지인들을 넓혀가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당 지인들과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데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했는지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최근에 새로 온 사람이 말했다.


내 할머니는 건물주야. 서울 어디 어디에 어떤 어떤 건물을 갖고 계셔.



어쩌다가 이런 말이 나오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이 사람의 한마디에 점심을 같이 먹던 지인들은 대부분 ‘부럽다, 대단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다시 말하지만 그 사람이 건물주가 아니라 그 사람의 할머니가 건물주라고 했다. 그 건물의 위치는 다들 들으면 알만한 서울의 어느 곳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심지어 그 건물의 시세가 대략 얼만지 알고 있는 지인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대화는 건물주 할머니에 이어 부모님 집과 직업 등으로 이어졌고 어느새 대화는 몇몇 사람들에게 독점되어 ‘전국 노래자랑'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자기 가족 자랑’ 나아가 ‘자기 친척, 혹은 자기 친구 자랑’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여기서 한 마디씩 하는 지인들의 가족, 친구, 혹은 친구들은 방금 언급한 건물주 할머니처럼 말만 하면 누구나 알 정도의 부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 말들이 진실이든 아니든 별로 신경 안 쓰며 그저 다른 지인들의 말을 들으며 조용히 밥을 먹던 나와 J에게 갑자기 어떤 지인이 부모님 집이 어디에 있냐고 물어봤다. 나는 사실대로 부모님은 지방에 계신다고 대답했다. 그저 지방에 계신다고 대답했을 뿐인데 대뜸 그 지인은 의아해하는 얼굴을 하며 다시 물어왔다


혹시 너희 아버지 공장 하시니?



역시 이 질문에도 사실대로 아니라고 답하자 왠지 모를 이유로 그 지인은 조금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그렇게 그 지인과 나와 J의 공장(?) 대화는 끝이 나고 흥미를 잃은 그 지인은 곧 다른 지인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다시 열심히 말하였고 나와 J는 얼떨결 해하며 다시 밥을 먹었다.




나는 지금도 이 질문이 매우 헷갈린다. 

도대체 지방에 사는 것과 공장을 하는 것의 관계가 무엇이라고 생각한 걸까? 지방에 살면 다 공장을 ‘운영/일하고’ 반대로 공장을 ‘운영/일’하면 다 지방에 산다고 생각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작은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질문이다. 건물주 할머니가 있는 사람은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반면에 부모님이 지방에 살면 공장을 할 것 같다는 생각들. 


씁쓸했다. 과연 나도 건물주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 이모, 삼촌, 친구들 (혹은 그와 비슷한 부를 가진 지인들)이 있었다면 그 대화에 열정적으로 참여했을까? 혹은 지방에 계신 내 부모님이 정말 공장을 운영하셨다면 그 지인과 열정적으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을까? 애초에 우리들은  이런 주제로 이런 대화들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런 대화들의 목적은 무엇이고 내가 이 대화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단순히 ‘어떤 아무개가 어떤 부를 이루었다.’라는 정보 전달일까? 내가 아는 혹은 나와 관련된 어떤 사람이 누구나 다 알만큼 부를 축적했고 내가 이 말을 굳이 너에게 하는 이유는 '우리 옆집 멍멍이도 그 사실 (내가 부를 축적한 어떤 사람과 관계가 있어서) 때문에 나를 부러워한다는 거야' 


너무 부정적인 시선일지는 몰라도 아주 솔직한 내 마음은 이렇다. 만약 그 사람이 자신이 아는 그 어떤 사람의 부를 통해 이익을 얻는다면 분명 긍정적인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의도까지도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내가 마음이 쪼잔할 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굳이 그런 영양가 없는 대화를 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어릴 적 나는 단순히 사람을 사귀고 sns상 친구를 늘리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아무에게나 적극적으로 어필했었고 그 아무나 가 하는 말들을 


건강하게 정수기로 물을 정화하듯이
필터해서 들을 수 있는 자세, 테크닉, 혹은 경험이 부족했었던 것이 아닐까? 



그때로부터 시간이 흐르고 흘러 지금의 나는 어느 정도 사회경험이 쌓이고 나는 어떤 사람이고 또 나는 어떤 사람들과 잘 맞는지 어떤 대화들이 나에게 이로운지 혹은 해로운지를 다행히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알맞게 나 자신과 내 주변 사람들을 예전보다는 더 제대로 건강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조금 속이 상하더라도 ‘그래, 나도 이유 없이 싫어하는 사람이 있지’라고 생각하며 넘어갈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또 어떤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가 만약 그 대화에서 내가 영양가를 느끼지 못하거나 나에게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고 느껴질 때는 적당히 그 대화와 그 사람들과 거리를 둘 줄 아는 작은 지혜도 생겼다. 왕집순이인 나는 최대한 내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꾸준히 컨넥트 (connect) 하고 그 사람들을 이해하면서 동시에 나 스스로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스스로를 사랑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이렇게 생활하면서 내 가족과 지인들, 그리고 특히 나 스스로와 더 깊은 컨넥션 (connection)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내 삶은 어제보다 오늘 더 행복해졌다고 나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만약 누군가 자신의 가족 혹은 자신이 아는 아무 아무개가 정말 놀랄 만큼의 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 시작한다면 나는 당당히 웃으며 말할 것이다. 


그러니? 그러니까 오늘 커피는 네가 사는 거지? 고마워 잘 마실께~^^



이렇게 쿨하게 말하고 그 사람에게 내가 가던 길 마저 자알~ 걸어가는 여유로운 뒤통수를 보여줄 것이다.




추천곡은 BTS 의 Mic Drop입니다.

사진출처: 제가 뉴멕시코의 Albuquerque 의 어느 길거리에서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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