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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은 Mar 31. 2021

참 열심히도 살았구나


나는 누구인가

나의 꿈은 무엇인가

나는 언제부터 꿈을 꾸는 것을 포기했는가

아니, 잊어버렸는가

먹고사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아니, 바쁜 것보다는 여유가 없었다

인정해야지. 일중독이었다는 것을

일, 돈, 그리고 일.


세상 모든 만사가 오로지 일과 돈으로만 연결되어 보였고

그 외에는 모두 하찮게 느껴졌었다

주위 사람들도, 가족들도,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핑계였다.

피곤하다는 것도 핑계였다.

나는 나쁜 사람이 되어있었다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나쁜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건강을 잃었다.

일도, 돈도...

너무나도 허무했다.

화도 나고, 억울했다.

나 스스로가 가장 미웠다. 일도 미웠다. 돈도...

허무함은 근육통으로 금세 채워지고

며칠 동안 온몸이 아파왔다.

마치 머리가 몸으로 내게 항의하는 듯했다

정신 좀 차리라고, 정신 좀 차리고 살라고

그 어떤 핑계도 대지 말고 말이다




그래, 사실 일도, 돈도, 다 핑계였다.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해서, 

나의 우쭐함과 자만심, 그리고 중독

나는 일에 중독되어있었다

자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티비를 보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나는 일 생각이었다.

내가 안 해도 되는 일 생각을 나는 스스로 채찍질하듯,

아니, 모르핀 주사처럼 계속 계속하고 또 하며 살아왔다.


하루에 내가 하는 생각과 말들 속에 내 일은 놀랍게도 너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장시간 근무 후에도 주말에도 멈추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무슨 짓을 해왔는지 깨달았다.

제대로 된 휴식 없이,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려온 것과 다름없었다.

내가 외면해오던 스트레스는 그 크기가 작던 크던 하나로 뭉쳐 저

내 가슴을 꾸욱 짓누르기 시작했다.

무엇을 하든지 호흡이 가빠지고 어지러움을 느꼈다.


또다시 허무감이 나를 가득 메웠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왔는가

이상했다...

나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었는데,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건강, 

좋은 직장과 걱정 없는 라이프 스타일.

그게 아니었던 것일까?

왜 지금 이 순간 나는 이토록 외로운 것일까.

내가 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남아있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라도 남아있길 간절히 바라는 어리석음까지도




나는 두렵고 무섭고 그래서 외면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숨을 참고, 또 참고, 

그렇게 하루를, 또 하루를, 

내 일에서 그렇게 강조하던 정직함과 배려심은 정작 나 스스로에게는 한 번도 허용되지 않았다

나 스스로가 허용하지 않았다.

아니, 무수히 많은 순간들을 아예 고려 조차 하지 않았고

괜찮다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그렇게 그냥 넘어갔었다.


일 이외에 내 삶엔 무엇이 남아있는가

나는 걱정부터 앞섰다

오로지 내가 전념해야 할, 전념할 수 있는, 

어떻게든 내 삶을 채워주는 그 무언가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 크기를 헤아릴 수 없이 거대한 밤바다 같은 어둔 두려움을 뜻했다

오로지 이 일을 위해서 달려온 지난날들을 순간 되돌아보며

참 열심히도 살았구나, 치열하게, 부족하게, 그리고 외롭게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살면 잘 사는 거겠지?'

'성공한 사람이, 성공한 삶이 되는 것이겠지?'

내가 쫒는 것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잘 알지도 못한 체 말이다.




세상은 이렇게나 넓고 크고 아름다운데

나는 그동안 내 안에 갇혀서, 

나 스스로 나를 얽매고만 있어왔던 것이 아니었나

행복도 기쁨도 외로움도 두려움도 모두 내 안에, 

동시에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것인데


다시 새로이 시작하기 전 나는 돌아왔다.

낯설면서 친근한 이곳으로

내 머릿속의 모든 생각을 끌어내어 표현할 수 있는 이곳으로.

다시 해보고 싶다

천천히 시간과 열정, 그리고 노력을 들여서

또다시 도전해보고 싶다

그래서 나의 한계를 제대로 마주하고 극복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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