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제은 Mar 28. 2021

낙하

처음엔 사랑인 줄 알았지

두근 거리는 마음, 귓가에 들리는 빠른 심장 박동

작은 것에 기뻐하고 실망하고

또 좋아하고 서운해하고

마음이라는 것이 내 마음이 아니더라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또 하고

셀 수 없이 반복해도 또 하고 있고

머릿속에 목소리만 수십 개

나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내 마음은 끝없는 낙하 중


처음엔 참으면 되는 줄 알았지

그저 참고 인내하면, 이해해주고 배려해주면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내 마음을

그저 좋은 마음으로, 위하는 마음으로 시작해 커져버린

그저 알아봐 주길, 바라봐주길 바랬는데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더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했을 뿐인데도

변하지 않는 것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내 일이 아니었던 것을

끝없이 낙하하고 떨어지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그곳으로

나는 무엇을 바란 것일까, 왜 그리 욕심을 낸 것일까


컴컴한 어둠도 아닌, 숨 쉴 수 없는 깊은 바닷속도 아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한없이 추락한다

그저 기억들만 존재하는 무서운 빈 공간으로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사라지지 않는다

가슴을 죄여 오는 답답함과 금방이라도 무언가 내뱉어 토해야 내 만 할 것 같은 

울음소리일지, 절규, 혹은 비탄일지도

억지로 마른침을 삼켜 다 함께 삼켜버렸기에, 알 수 없게 되었다

혹여 조금이라도 내뱉어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할 수 없다.

지금까지로 족하니까, 그날, 그날들로 족하니까


나는 네가 밉다, 나는 내가 밉다

미워해야만 내가 숨을 쉴 수 있으니까

미워하고 미워해서 내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면

나는 너를, 나는 나를 미워하고 또 미워할 것이다

언제까지고 내가 숨을 편히 쉴 수 있게 될 순간까지

너는 내게 왜 이런 슬픔을 가져다주었는지

왜 내게 이런 아픔을 떠밀어주었는지

고통도 괴로움도, 서러움도, 원망도 모두 

너로 인해 나는 두려움을 배웠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 사람을 사귄다는 것, 

그리고 마음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내가 준 마음의 빈 공간을 다시 채우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감히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될 수 없는


그렇게 미워하고 미워하면 나는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언젠가는 잊히겠지

그리고 잊히고 잊혀서 좋은 기억들만 남을 때까지

그저 예전에 그랬었지 라고 회상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많은 노력이 들어가겠지만

나는 그때까지 최대한 살아보려 노력하겠다

기쁨도 느끼고, 행복도 느끼고, 모두 느끼고 살아가겠다

너로 인해 생겨나는 미움들도 모두 느끼고 견뎌내겠다

나로 인해 생겨나는 미움들 까지도

이 모든 것들이 나를 키우고 채우고 성장시켜서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니까

그러니 네게 아주 조금은, 아주 조금은 고맙다

좋은 기억들은 좋은 기억들로 간직할 테니,

너도 내 좋은 기억들만 간직하길.

작가의 이전글 세상과 내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