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데이비드에 대하여 (상)

오늘의 노래: I won't give up by Jason Mraz

by 이제은


When I look into your eyes
당신의 두 눈을 들여다볼 때면
it's like watching the night sky
마치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 같아요.
or a beautiful sunrise
혹은 아름다운 일출을
well there's so much they hold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은 참 많아요
and just like them old stars
오래된 별들처럼 말이에요
I see that you've come so far
당신이 이렇게나 멀리 온 것을 알아요.
To be right where you are
지금 바로 이곳에 있기 위해서 말이죠.
How old is your soul
당신의 영혼은 몇 살인가요?

<I won't give up by Jason Mraz>




데이비드 (David)는

내 친구이자

내 선배이자

내 상사이다.


우리의 관계는 어느덧 8년이 되어가는데 이상하게도 난 일 년 동안 같이 일하며 내가 몰랐던 그의 숨겨진 모습들을 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어느 날 제이슨 므라즈의 '나는 포기하지 않아'라는 노래를 듣다가 문득 한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

"당신의 영혼은 몇 살인가요?" 처음에는 그 표현이 낯설어서 그런가 싶었다. 과연 영혼의 나이가 따로 있을까 궁금해지는 찰나 데이비드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데이비드의 영혼은 몇 살일까 궁금해졌다. 대학원 때 봤던 데이비드는 항상 장난기가 많았고 에너지가 넘쳤다. 그가 웃을 때는 싱글벙글이라는 표현 그대로 두 눈이 반달처럼 휘어서 보이지 않고 하얀 치아가 씨익 드러나곤 했다. 왠지 모르게 따라 웃게 되는 기분 좋은 미소였다.


그가 2년 먼저 대학원을 졸업하고 난 뒤 만날 일이 없었다. 다들 사는 게 바쁘니 연락도 따로 하지 않았다. 잘 지내려니, 생각하면서. 그러다가 일 년 전쯤 나는 레지던시를 막 졸업하고 일자리를 구하던 중에 우연히 그가 운영하는 개인병원에 찾아가게 되었다. 사실 심심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의 병원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레지던시와 개인병원은 여러모로 많이 다르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 차이점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방문한 그의 병원에서 그를 만났다.


무려 4년 만에 다시 만난 그의 얼굴을 처음 보고 나는 꽤 당황했다. 아니, 그를 보고 적지 않게 놀랐지만 다행히 티를 내지는 않았다. 너무나도 수척해진 그의 얼굴을 보고 순간 머릿속으로 해골이 떠올랐다. 예전에도 마르긴 했었지만 이건 단순히 마른 것을 넘어 뼈밖에 안 남은 듯, 정말 해골을 연상시켰다. 나는 당황해서 혹시라도 말을 더듬지 않기 위해 일부러 큰 목소리로 기쁘게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4년 만에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그 후로도 가끔씩 시간이 나면 그의 병원에 가서 이것저것 하소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곤 했다. 주로 말은 내가 하고 데이비드는 들어주는 편이었다. 그런 점이 나는 딱히 개의치 않았다. 그도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해 보였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둘 다 나름 편안했던 것 같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나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느껴지는 편안함. 동생 J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정말 편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침묵도 어색하지 않아"라던.


그렇게 네다섯 번의 방문 후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한동안 데이비드를 만나지 못했다. 뉴욕의 lockdown 사태 때문에 나와 동생 J는 집에서 제정신으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지내며 그새 데이비드와 그의 병원에 대해서는 까맣게 있고 지냈다. 그러다가 몇 달 후 나는 일년반 동안 다니던 직장을 나오게 되었다. 처음으로 내가 먼저 그만둔 직장이라 여러모로 맘고생을 했으나 그것도 잠시, 나는 운이 좋게 데이비드의 병원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일을 하게 된 지 어느덧 반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니...' 나는 새삼 놀라며 다시 카운터 뒤로 지나가는 데이비드를 보았다. 6개월 전 보았을 때보다는 확실히 얼굴이 나아져 보였다. 머리를 잘라서 그런 것인지, 전보다 조금 어려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다시 노랫가사를 떠올렸다.


"How old is your soul? (당신의 영혼은 몇 살인가요?)"


순간 나는 내가 반년만에 처음 보았던 데이비드를 떠올리며 그를 올드 소울 (old soul-나이 든 영혼)을 가졌다 생각해 그를 올드맨 (old man)이라고 장난스럽게 부르기 시작했고 나머지 사람들도 그를 올드맨이라고 친근하게 부르기 시작했다. 데이비드도 그게 싫지는 않았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특별하고 독특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아마 그 별명이 마음에 들었지 않았나 싶다. (누군가 그를 올드맨이라고 부르면 그는 무표정으로 지나가면서 마치 아무도 안 보는 줄 알고 혼자 씩 웃는 것을 나를 포함해 몇몇 사람들이 목격한 바 있다. 그는 정말 올드 소울을 가진 것이 틀림없다).






하루는 동생 J가 그를 lonely king (외로운 왕)이라고 부르는데 순간 그 말이 가슴에 턱 하고 꽂혔다.


외로운 왕, The Lonely King


확실히 데이비드는 지난 2년 동안 홀로 버텨왔다.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그 엄청난 중압감과 무게를 홀로 견뎌내 왔다. 감히 내가 가늠할 수 없는 그의 시간들을 생각하면 외로움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을까.

내가 알았던 데이비드는 장난스럽고 유쾌하고 자상했다. 지금도 그렇다. 그 이면에 내가 지금껏 보지 못했던 무표정인 날들도 많고 고요함 속에서 자주 고뇌하듯 홀로 앉아있었다. 그런 그에게 다가가 가벼운 농담이나 장난을 치면서 기분을 풀어주려는 노력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그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 왠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에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또 편했을 것이라는 것을. 어쩌면 그에게 그 고뇌의 시간이 휴식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퀭한 그의 두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난 뒤 퀭해진 내 모습 같아 보여 안쓰럽기도 하면서 동시에 약간 화도 났다. 왜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인지. 때론 생각의 늪에 너무 깊게 빠져버리면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끼니까.


말이 부쩍 없어진 데이비드와 일을 하다 보면 괜히 서운한 일도 화가 나는 일도 생긴다. 침묵은 때로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감정을 상하게 한다.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크게 부딪혔다. 나에게 그의 침묵은 무심함으로 다가왔고 조금씩 쌓였던 서운함은 그날 오후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터져 나오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나는 소리를 질렀다. 너의 그 무심함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고.


모두가 떠나고 남은 공간에서 내 절규는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말을 뱉고 나자마자 나는 그곳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나를 바라보던 그의 표정엔 당혹스러움과 놀라움이 섞여있었다. 나는 그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렸다.



<내 친구 데이비드에 대하여 (하)> 에서 이어집니다.
데이비드는 가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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