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와 춤추는 별

오늘의 명언: 프리드리히 니체

by 이제은





내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니체의 명언이 담긴 우주 이미지가 있다. 대학원 3학년 때 나는 '무언가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바탕화면으로 해놓고 되새기고 싶었다. 나에게 있어서 글귀는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동기가 되어 주었기 때문에 나는 천천히 시간을 들여 '강력한 명언'을 찾아 헤매었다. 찾다 보니 좋은 명언들이 참 많았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강력한 한방, 그러니까 읽을 때마다 머리가 띠잉 하게 울리는, 그런 명언은 좀처럼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와중에 나는 니체의 명언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었다.



페이스북에서 찾았던 이미지



나는 이 명언과 함께 밀란 쿤데라의 명언 또한 내 바탕화면 이미지로 만들었다.





노트북을 켤 때마다 니체와 밀란 쿤데라의 목소들이 들려온다. 그러나 그것은 다그침이 아닌 잠들었던 깊은 동굴 속에서 울려 퍼지는 저음의 울림들이다. 그들의 호소는 나를 일깨운다.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나는 나의 나약함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누구에게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스스로 솔직히 인정할 수는 있다. 육체의 나약함과 정신적인 나약함. 둘 중에 무엇이 더 나약한지 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 둘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의 경우 어릴 적에는 육체의 나약함이 나를 정신적으로 더 나약하게 만들었다. 쉽게 피로해지고 지쳤던 것에는 과학적인 원인(빈혈)이 있었고 나이가 들어 그 원인을 알게 된 후에는 꾸준한 관리를 통해 육체의 나약함이 많이 개선되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정식적으로도 나름 더 강인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느끼기 시작할 무렵 학업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증폭되었고 나는 다시 나약함 앞에 서게 되었다. 매일 밤 심판을 받는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아무도 모른다고 해도 나 스스로는 알고 있는 작은 것들부터 시작해서 '그냥'이라고 말하며 둘러댔던 핑계들까지도. 나는 결코 무죄인 날들이 없었다.






나는 어쩌면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원할 때만 가혹하게 대했었다는 사실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평상시에는 스스로에게 아주 관대했던 적도 많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그 관대함에 죄책감을 느껴서 스스로를 더 가혹하게 평가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동안 이런저런 시험들과 졸업, 그리고 레지던시 일로 인해 바쁘게 지냈다. 밤이 되면 무슨 생각을 할 틈 없이 곯아떨어져서 잠들었다. 나름 평화로운 밤들이었다. 자유로운 밤들이었다. 그저 꿈만 꾸면 되는 밤들. 생각이라는 감옥에서 자유롭게 말이다.


문득 잠이 안 오는 밤에는 가끔 깊은 생각에 빠지기도 했지만 예전만큼 괴롭지는 않았다. 가혹하지도 않았다. '그럴 수도 있지... 어쩔 수 없었지...'라는 말들을 많이 하게 되었다. 어떤 생각조차도 그저 머물러 있다가 흘러가게끔. 가끔은 능동적으로 노력해야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마음이 많이 나아진 듯했다. 역시 경험과 시간은 그 무엇보다 강력한 조력자들이었다.


그러다가 한 일 년 전 코로나로 집에 있을 때 글을 쓰면서 밀란 쿤데라의 명언이 기억이 났다. '동전 짜장면과 탕수육'이라는 글의 마지막 부분에 넣었다. 꼭 넣고 싶었다. 이 명언을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싶은 마음에 살짝 무거울 수 있는 명언으로 마무리했고 나는 나름대로 만족했다.



그리고 어제는 사진들을 둘러보는 중 아주 오랜만에 니체의 명언이 담긴 이미지를 보게 되었다. 너무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반가운 옛 친구를 만난 듯 기뻤다. 하지만 그 명언을 다 읽고 나는 순간 다시 한번 아득히 깊은 동굴에서 니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너는 네 안의 카오스 (혼돈)를 어떻게 하였느냐?




나도 니체에게 물었다. "내 안의 카오스는... 어떻게 된 것일까?"





니체는 대답이 없었다. 알고 있었지만 슬쩍 기대를 해서 그런지 약간 실망을 했다. 결국 니체는 내게 질문만을 던지고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린 듯했다. 나는 카오스의 뜻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 검색을 해보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찾은 카오스 이론은 매우 흥미로웠다.


카오스 이론:
무질서하게 보이는 혼돈 상태에도 논리적 법칙이 존재한다는 이론. 이 이론의 연구 목적은 무질서하고 예측이 불가능한 현상 속에 숨어 있는 정연한 질서를 밝혀내어 새로운 사고방식이나 이해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경제, 기상, 물리, 전기, 천문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다.
<네이버 국어사전>



나는 분명 이 이론은 전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카오스 이론이 마치 니체의 대답처럼 느껴졌다. '무질서하게 보이는 혼돈 상태에서도 논리적 법칙이 존재한다는 이론.' 과연 나도 내 안의 혼돈 속에 숨어 있는 질서를 밝혀낼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에... 만약에 그 질서를 밝혀낸다면, 그것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생각에 잠겨 잠을 자다 깨다시피 하며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아직 밖은 어두웠고 고요했다. 나는 부엌 불을 켜고 습관처럼 따뜻한 물을 한잔 준비하고 노트북을 열었다. 니체의 명언이 떴다.



자기 안에 카오스를 지녀야만 춤추는 별 하나를 낳을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띠잉. 마치 거대한 종이 머릿속에서 울린 듯했다. 지금껏 나는 이 명언의 앞부분 '자기 안에 카오스를 지녀야만' 에만 너무 몰두한 나머지 그 뒷부분은 한 번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지 않았는가. 과연 내 안의 카오스 (혼돈) 속에 숨어있는 질서는 나만의 춤추는 별들, 나만의 글들로 밝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나만의 춤추는 별들을 낳기 위해 무질서하게 보이는 내 혼돈 속으로 홀로 여행을 떠난다.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오늘을,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2017년 페이스북에 위의 두 명언 이미지를 만들어서 올려주신 분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리고 니체와 밀란 쿤데라에게도 뜨거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쓰면서 들은 곡:

Ludovico Einaudi의 Fly 와 Exper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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