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된 글들을 읽어보면 지나간 나의 생각들과 그 시간들의 여운을 느낄 수 있었으며 특히 그 여운은 동생 J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글을 읽어주었을 때 가장 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면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함은 새벽의 안개가 스르르 걷히듯 어느새 사라지고 아침 태양 같은 확신과 믿음이 뜨겁게 떠올랐다.
내 글에 대한 확신과 믿음.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시간들을 견디어 내어야만 나의 생각들을 글이라는 목소리로
승화시켜 세상에 나오게 할 수 있으며 그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이 될 수 있겠지.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은 나 스스로와의 깊은 대화를 통해 나의 생각들 속으로 더 깊게 빠져들어가는의식일지도 모른다. 내가 내 생각들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 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고 답을 찾는 여정.
그렇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내 생각의 바다에서 항해를 하는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푸른 바다 위를 때로는 유유히 항해하며 심연을 들여다볼 때도 있다. 가끔씩 거센 바람이 불어와 조심스럽게 항해를 해야 할 때도 있으며, 아주 가끔씩은 니플헤임 (Niflheim)*을 연상시키는 난관에 부딪혀 항해를 잠깐 멈춰야 할 때도 있다.
(*니플헤임: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매우 춥고 어두운 지하 세계. 천지가 처음 시작될 때에 ‘허무의 심연(深淵)’ 북쪽 끝에 있었다고 한다.)
이마저도 긴 항해의 여정임을 기억한다면 니플헤임마저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을 텐데 나는 아직 내공이 턱없이 부족하다. 더 오랜 항해와 수련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겠지. 소로도 나와 같은 선원의 시간을 거쳤기 때문에 월든이라는 작품을 써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선실에만 틀어박혀 있는 여행객이 되는 대신, 세상의 돛대 앞과 갑판에서 일하는 선원이 되고 싶었다. 그곳에서는 산등성이 사이로 비추는 달빛을 가장 잘 볼 수 있을 테니까. 이제는 다시 갑판 아래로 내려가고 싶지 않다.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나 또한 소로와 함께 편안하고 안전한 갑판 아래가 아닌 세상의 돛대 앞과 갑판에서 산등성이 사이로 비추는 달빛을 바라보며 바다를 항해할 수 있다면, 기쁘지 않을까? 행복하지 않을까? 적어도 달빛을 벗 삼아 고독의 무게는 가벼워질 테니.
오늘 아침은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Ludovico Einaudi)의 In Un'Altra Vita (다음 생에서) 들으면서 또다시 항해를 시작한다. 과연 오늘은 어떤 바다를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내 생각을 잘 전할 수 있을까. 혹시 소로는 알고 있었을까? 나의 물음들에 대한 답을.
나는 경계를 뛰어넘어 막 잠에서 깬 사람이 그와 같이 잠에서 깨어나는 사람에게 말하듯이 내 생각을 전하고 싶다.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