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by 김주화



나는 지금 청주에 와있다. 큰 이유는 없었다. 다른 곳보다 숙소 시세가 조금 더 쌌고, 기차표 값이 적당했다. 길거리 나무가 앙상하다. 나는 초라했고, 특별하지 않았다.




지난주엔 대학에서의 마지막 시험을 마쳤다. 졸업이다. 졸업 이후엔 취업 준비를 할 것이고, 이상적인 흐름에 따르면 내년 아니면 내후년, 취업을 하게 될 것이다. 취업을 하면 일을 할 것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아홉 시부터 여섯 시. 긴 긴 시간을 보내고 주말에는 밥도 걸러가며 밀린 잠을 잘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나이의 나를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10년 후의 미래를 떠올려 보라는 숙제가 주어졌을 때 나는 도무지 글을 적어낼 수가 없었다. 20대의 나를 떠올려 본 적이 없다. 아주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내가 세상에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스물을 넘기고, 1년 1년이 흘러갈 때마다, 나는 상상하지 않은 나를 직면했다. 낯섦의 감정 그 이상으로, 이상했다. 내가 전혀 준비하지 않은 시간으로 내 몸은 뛰어들고 있었다. 아주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숙소에서 내리 잠을 잤다. 눈을 떴다가 다시 감고, 책을 펼쳤다가 덮고, 글을 쓰려다 화면을 끄고. 멍하니 천장을 보며 벽지가 우는 곳의 주름의 개수를 셌다. 도망을 왔는데도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나이므로 내게서 도망칠 수 없었다.




이런 울적한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브런치에서 작가 승인이 되었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그로부터 세 달, 아니 네 달, 아니면 그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났다. 내가 어떤 주제의 글을 고정적으로 쓸 수 있을지 결정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인지, 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무엇도 규정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사랑에 대해 쓰고 싶었고 다정한 말들을 건네주고 싶었으나, 그런 것들은 내가 몇 번이고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내가 아닌 말이었다.


그래서 결국은 내 혼란을 이곳에 모두 내어주기로 했다. 부끄럽지만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우리 같이 흔들려요, 그래도 될까요. 그런 대화를 상상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러니까 스무 살을 보내고 지난 4년간 내가 해온 일은, 혼란을 안아주려 버둥대는 것이었다. 아등바등 불안을 끌어안는 것이었다.




이 글은 지극히 사적이다. 하지만 사적인 공간에 당신을 초대함으로써 나와 당신을 안아주고 싶다. 나의 집에서, 침대도 없이 이불 생활만 하는 나의 방에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우리를 감싸안는 일이다. 함께 있고 싶다. 내 소망은, 우리가 미지근한 체온을 서로 나누는 일이다.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윤동주 「아우의 인상화」 中




청주의 길을 걸으며 청주 사람들을 본다.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 학생들과, 털 달린 점퍼를 입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어머님들과, 잰걸음을 걷는 아버님들, 횡단보도의 깜박이는 초록 불을 보며 서둘러 뛰는 사람들, 추워서 코가 빨개진 사람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 그런 풍경들은 내가 사는 곳과도 다르지 않다. 여행을 오면 그런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모두 다름이 없고, 비슷한 삶의 형태를 가지고, 살고 있다. 그런 사람들의 틈에 섞여 걸을 때 나는 위안을 받는다.


나는 자라 무엇이 될까. 회복이 너무나도 간절했다. 이제는 정말 건강해지고 싶었다. 병원도 다니고 싶지 않고 하루하루 작은 걸음을 딛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나를 회복시키려 할수록 나는 영문도 모르게 조금씩 무너졌다. 무너지는 나를 끌어올리고 바로 세우고 재정립하고 평온을 바라고 다시 깨어지고 그런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끝내 나는 열의를 잃었다. 나를 다시 세우고 싶지 않았다. 망가진 나를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오늘의 내가 되었다.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내가 삶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제 더는 부정할 수가 없다.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나는 이러한 과정을 되풀이하며 방황하겠지만 내 안의 작은 씨앗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 것이다. 겨울이면 춥다, 춥다, 그런 말을 반복하며 너의 손을 잡을 것이다.



손을 잡으면 손금이 맞닿는다. 손금은 제각기 다르지만 조금씩 닮아 있다. 눈을 감고 우리들의 손금을 모두 이어 본다. 손 옆에 손을 두고, 그 손 옆에 또 다른 손을 두고. 지구를 두를 만큼 크고 길게, 손 옆의 손.


내일이면 버스를 타고 다시 서울로 돌아갈 것이다. 익숙한 동네 버스를 타고, 익숙한 길을 걸어서 낡은 연립 주택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는다. 어깨를 문지르며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그 모든 장면. 나는 오래도록 그런 것들에 설레어하고 싶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