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블루스

가장 어려운 달, 12월

by 김주화


12월 31일 11시 59분 59초. 카운트다운을 외치는 소리가 10에서 0으로 흘러가고 환호성이 공간을 둘러싼다. 설렘으로 볼이 빨개진 사람들과 다리에 속력을 붙이는 나. 음식을 서빙하고 자리를 정리하기를 반복하다 핸드폰 액정을 켜면 00시 7분을 넘어가고 있다. 나의 1월 1일은 대개 그런 식으로 시작된다. 어쩌다 보니, 어떻게든.






이번 크리스마스는 몇 년 만에 애인과 보냈다. 낮 동안 '올해의 베스트 우리 유행어'나 '베스트 우리 네 컷 사진' 같은 것들을 선정하며 한참 웃었다. 저녁엔 밖으로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거리에는 그새 어둠이 가라앉아 있었고, 가로등만이 주황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왠지 모르게 조용해졌다. 그러고 보니 주황색 가로등은 오랜만인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식당에 도착해 겉옷을 벗으며 음식을 시켰다. 빨간 국물에 초록색 파가 올려진 육개장이었다. 국물을 한 숟갈 뜨며 이게 세상에서 가장 크리스마스적인 음식일 거라며 조금 웃었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 갔다. 웨이팅이 31팀이나 걸려 있었다. 애인이 다른 카페에 가보자고 말했다.



나는 어떤 크리스마스를 바랐던 걸까. 애인 앞에서 조금 울어버렸다. 충분히 좋은 하루였는데도 오늘이 크리스마스라는 이유로 더 특별한 것들을 바랐다. 트리도 보고, 인파 속에서 손을 잡고 걸어도 보고, 사진도 찍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나에게 '행복한 크리스마스'란 그런 이미지였기에, 나도 그 이미지를 갖고 싶은 것뿐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평범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었다.



내 결핍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평범한 무언가를 갖는 것. 크리스마스를 행복하게 보내고, 연말연초를 사람들과 왁자지껄 보내고, 생일이면 지인들의 축하를 받고. 하지만 이런 것들은 평범도 아니며, 평범이라는 기준을 규정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이런 '평범한' 장면들은 나에게 너무 간절했다. 이 결핍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일까. 거리가 화려해질수록 나는 초라해진다. 캐럴은 즐겁고 나는 우울하다. 거리에 트리가 들어서고, 작은 전구 장식이 추가될수록 나는 상대적으로 보잘것 없어진다. 아, 연말의 블루. 캐럴은 차라리 연말의 블루스에 가깝다.

유독 연말이 그렇다. 한 해를 정리하며 나의 성취들을 점검하고,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다음 해를 도모해야 하는 시기. 나의 성취가 다른 이보다 떨어질수록, 연말의 만남이 적을수록, 다음 해를 꿈꾸지 않을수록 나는 작아진다. '연말'이라는 단어가 주는 평범의 선과, 이 평범에 도달하기 위해 버둥대는 내가 있다. '연말 증후군'이나 '홀리데이 블루스'라는 명칭이 있을 정도로 이러한 감각을 여러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소외된 사람들을 더 소외되게 만드는 날.

기대하지 않을수록 실망도 줄어들지만, 모두가 들떠있는 분위기에 나만 기대를 하지 않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연말이든 연초든 똑같은 하루일 뿐이다, 생각해 봐도 역시 지우지 못하는 우울감이 있다.





결국 크리스마스가 끝나기 몇 시간 전, 광화문으로 향했다. 손끝이 차가워진 애인의 손과 내 손을 주머니에 넣고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했다. 트리 앞에서 사진을 찍고, 카페에서 따뜻한 차를 마셨다. 행복했다. 내가 평범에의 크리스마스를 손에 넣어서인지, 사랑하는 사람과 크리스마스를 보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적어도 그날 우리는 크리스마스 인파 속의 한 명이었고, 조금 들떴다.



연말의 우울을 잘 소화해내고 싶다. 행복한 이미지들에 휩쓸리지 않고 나의 평정심을 찾고 싶다,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식이겠지만, 이번 크리스마스를 보내니 내 결핍을 충족시켜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 같았다. 나를 조금 느슨하게 들여다보자. 우리는 자신에게 너무 각박할 때가 있으니까, 가끔은 결핍을 극복하기보다 결핍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봐 주자. 애인과 걸은 크리스마스의 광화문처럼. 행복했으니까. 이제 더는 연말을 화려하게 보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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