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 그 말로 괜찮은가요.
새벽 두 시. 불을 끄고 누우니 이제야 밤이 온 것 같았다. 한동안 눈을 뜨고 가만히, 천장을 바라봤다. 벽장 위 한 구석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플라스틱 야광별. 은이 준 선물이었다.
은과 나는 초, 중학교를 함께 보낸 친구였다. 매일 같이 등교를 하고 밥을 먹고 쉬는 시간이면 팔짱을 끼고 화장실에 갔다. 같이 화장실에 간다는 것. 지금 생각하면 작게 웃음이 나지만 그때의 여자 아이에게는 우정의 최고 증표였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이면 은의 집에 들러 영화를 봤다. 아직도 은과 이불을 덮어쓰고 본 <여고괴담>을 잊을 수가 없다. 은은 가끔 코코아를 타줬다. 따뜻하고 달았다.
대부분의 우정이 그렇듯이, 은과 나는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서서히 멀어졌다. 가끔, 아주 가끔 안부를 물었지만 만나지는 않았다. 우리는 아무런 이야기 없이 성인이 되었다. 은은 더 이상 내가 중요하지 않았고 나도 그랬다.
스무 살의 생일. 은에게서 전화가 왔다. 패딩을 걸쳐 입고 집 밖으로 나가니 은이 있었다. 작은 케이크와 핸드크림을 줬다. 초에 불을 붙였고, 바람을 불었다. 연기가 흐릿하게 날아올랐다. 나는 그 케이크를 며칠 동안 먹었다. 그리고 결국 조금 남겼다.
그 이후로 은과 나는 만난 적이 없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인연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만나고, 또 멀어진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지나갈 인연은 지나간다. 요 몇 년 새에 더 자주 보이는 말.
나는 이 말이 조금은 섭섭하다. 그래,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다. 오는 것도 자연스럽게, 가는 것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정말 모든 인연에 때가 있다면. 내가 막을 수 없는 힘으로 내 곁의 사람들이 떠나간다면. 나는 그들을 시절인연이라는 말로 웃으며 보내줄 수 있을까.
은은 웃을 때면 작고 뾰족한 이가 보인다. 머리카락이 다른 아이들보다 더 검었고, 탄탄하다. 상냥하고 배려심이 깊다. 체육복이 잘 어울린다. 손이 부드럽다. 비록 운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손에 굳은살이 박혔지만, 그래도 나는 은의 손을 좋아했다. 은의 거실에는 TV가 있다. 그리고 너구리 쿠션이 있다. 나는 가끔 그곳에서 잠들었다.
몇 년 전 은과 우연히 거리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내가 처음 가보는 곳이었고, 지각까지 한 탓에 택시에서 급하게 내리던 참이었다. 은이 나를 휘둥그레 바라보며 이름을 불렀다. 나도 은의 이름을 불렀다. 짧은 대화를 나누고, 각자의 길을 향해 걸었다. 은이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작고 뾰족한 이로 웃었다.
시절이라는 단어로 우리를 끝맺기에는 아쉬웠다. 내 안의 어딘가에는 은이 묻어있다. 그러니 우리는 희미하게 이어져 있는 셈이다. 야광별 불빛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