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거부받지 않는 곳
며칠 전에는 사랑하는 친구에게 편지를 받았다. 오월에 태어나 여름을 여는, 민들레 홀씨 같은 친구.
나는 그 애의―앞으로는 ‘메이’라고 칭하겠다.― 편지를 무척 좋아한다. 진심이 꾹꾹 담겨 편지지를 쥐면 사랑이 흠뻑 묻어 나올 것 같은 편지. 수건처럼 주욱 짜면 사랑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편지. 그런 메이의 손글씨를 읽다가, 어떤 문구에서 나는 멈춰 서게 되었다.
“마음이 거부받지 않을 거란 안정감의 확신을 준 너의 존재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단 것을 알게 한 기쁜 선물 같았어.”
마음이 거부받지 않을 거라는 확신. 나는 그 마음이 마음에 들었다. 단단하지만 말랑한, 투명한 보호막으로 나를 한 겹 감싼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길게 생각해 보니 한 가지 호기심이 일기도 했다. 그런 확신은 어느 순간에 오는 걸까? 마음은 어떻게 거부받지 않게 될까. 문장을 읽으며 순간 기뻐 먹먹해지면서도 오래 궁금해졌다. 나는 메이의 마음 어디쯤 머무는 사람인 걸까.
이것을 말하기 위해서 메이와의 이야기를 조금 더 풀어야겠다. 메이는 열일곱 무렵에 알게 된 동갑내기 친구로, 영화 같은 만남이 시작점이었다. 내가 학교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메이가 수줍게 핸드폰을 내밀며 “번호 좀 알려줘”라고 말한 것으로 인연이 싹트게 된 것이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2년 뒤, 열아홉쯤 우리는 처음으로 연락을 길게 주고받게 되었고 매일 편지 같은 메시지를 남기게 되었다.
메이는 세상과 사람을 힘껏 사랑하는 아이였다. 사랑을 건네고, 마음을 넓게 펼치는 사람. 나를 넘치는 사랑으로 감싸주는 사람. 열아홉과 스물, 세상이 가장 어려울 무렵 나는 메이에게 사랑을 배웠고 메이는 내 사랑 스승님이었다. 덕분에 나는 사랑의 기쁨을 알게 되었고, 삶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삶을 뒤집는 일들은 매일 일어났고 나는 기나긴 슬럼프와 우울, 불안으로 엎질러지며 사랑은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메이에게 늘 묻고 싶었다. 어떻게 그렇게 사랑하며 살 수 있는 거야? 힘들어도 일어설 수 있는 이유가 뭐야? 너에게 사랑은 어떤 의미인 거야?
그런 궁금증을 품은 채, 메이의 자취방으로 놀러 간 어느 날이었다. 우리는 종일 동네를 산책하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대화들을 나눴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침대에 풀썩 누웠고, 나긋한 빛이 창문에서 쏟아졌다. 그 공기를 느끼며 나는 오래간만에 만난 메이에게 응석을 부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랑력을 듬뿍 충전해가고 싶다고, 내 슬럼프의 해결책을 다시금 사랑으로 찾고 싶다고.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생각을 굴리다 서서히 메이의 말소리가 들렸다.
나도 사랑이 어려워.
나는 잠깐 멍해졌다.
나는 메이의 사랑이 바다처럼 넓고 깊어서, 그 근원과도 같은 곳에서 사랑이 샘솟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나에게도 넘치는 게 아쉬울 정도로 많은 사랑을 주는 것이겠지, 매번 매번 내 행복을 빌어주는 거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메이도 사랑이 어렵다니. 힘들었다니. 나는 메이의 사랑이 당연한 거라고, 메이에겐 쉬운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물론 메이에게도, 어려운 것이었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우리가 사랑하기 위해서는 집과 같은 역할의 장소가 필요하다. 돌아올 수 있는 곳, 나를 쉬게 하는 곳,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괜찮은 곳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만 사랑할 수 있는 용기가 나니까.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걸 아니까. 어떤 장애물이 덮쳐와도 안심하고 싸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거부받지 않을 거라는 확신. 거부받지 않을 거라는 안정감…….
거부받지 않는 마음이란 그런 게 아니었을까. 쉬어갈 수 있는 곳. 메이가 더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 곳. 마음을 주어도 괜찮다고 믿게 만든 곳에서 사랑을 주고받는 일 말이다.
아직은 내가 메이에게 어떻게 그런 존재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이 드는 건, 내가 글을 오래 쓸수록 알게 될 것 같다는 것이다. 메이가 왜 나를 거부받지 않는 곳으로 여겼는지. 나도 모르게 나는 어떤 사랑을 하고 있었던 건지. 더 깊게, 그리고 넓게 파고들 것이다. 내 사랑의 방식을, 내 사랑의 가치를 키워낼 것이다. 그로써 내가 온전해지기를 바란다. 그 마음이 퍼지길 바란다. 이 세상에 거부받지 않는 사랑들이 늘어나도록. 이 글에서 잠시 동안 쉬어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