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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사라 Nov 07. 2021

나를 믿어주는 사람

평생 함께할 수 있는 온전한 내편


 며칠 전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순간 헉하고 인생 전체를 반추하게 되었는데, 몇 초 지나지 않아 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약대를 다시 들어간 것이다.


 나는 사실 학벌 콤플렉스가 있었다. 고등학생 때까지 공부를 잘한다고 착각한 나는 아주 시원하게 수능을 말아먹었다. 공부를 안 해도 늘 1등급이었는데, 그것이 여태까지 이뤄놓은 노력의 산물임을 알아채지 못하고 노력 없이도 ‘그냥 나는 항상’ 1등급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관성에 대한 근거 없는 신뢰, 그리고 자만은 당연한 결과를 불러왔다. 어영부영 집과 가까운 대학교에 진학한 뒤 시간을 보냈다.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다 못해 재가 된 상태로 말이다.

그러다 동기 한 명이 PEET(약학대학 입문시험)을 본다고 했다. ‘무슨 약대야? 한 번도 내가 약사 된다는 생각 해본 적 없어.’

 그런데 나도 모르게 그게 있었나 보다. 나 할 수 있을까? 한 번 해봄직하지 않을까? 혹시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방향성을 갖고 성장하기를, 나에 대한 기대가 있었나 보다. 그때부터 내 삶이 슬슬 변하기 시작했다.


 아침 7시 신분당선은 늘 붐볐다. 운이 좋으면 인강에서만 보던 선생님을 만날 수도 있었다. 신분당선 타고 20분이면 도착하는 강남역 3번 출구. 누군가는 출근하러 가는 길에 나는 한번  더 공부하러 갔다. 코너를 돌면 보이는 커피집에서 1000원이면 살 수 있는 드립 커피를 테이크 아웃한 뒤, 내가 찜해놓은 자리를 찾아가기. 그렇게 밤이 깊어질 때까지 공부를 한다. 학원이 문을 닫는 시간에 맞춰 나도 같이 나간다. 집 갈 때는 빨간색 광역버스. 버스 안에서도 태블릿으로 자꾸 인강을 틀게 된다. 나도 모르겠지만, 자꾸 가는 시간이 야속해서인가 계속 외워지지 않는 내 마음이 불안해서인가. 하루는 길었지만 ‘나 열심히 살고 있어’라는 뿌듯함에 잠들었다.


 인생의  1년을 정말 성실하게 살아보자. 뒤돌아보았을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해보자.


 그렇게 6 모의고사를 치르고 예감이 왔다. 이번엔 수능이랑 다르고 정말 합격할 수도 있을  같았다. 그러고는 정말 시험에 합격했다.    


 다시 신입생이 되고는  삶이 정말 달라졌는데, 어떤  달라졌냐면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내가   있는 사람이었잖아?  정말 하면 되는 사람이었어.  조금 대견한  같아. 그럼 이것도 한번 해볼까? 나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그러고 나자 학벌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는  인정하는 용기가 생겼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나를 변화시킨다는데, 내게 있어 그는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 그건 바로 나였다.


 사실 이전 학교를 다닐 때에도 할 수 있었던 것들을 내가 나를 좋게 봐주는 상태로 임하니 과정도 재밌지만 결과 또한 좋았다. 수많은 대외활동을 하며 지치지도 않냐는 소릴 들으면 오히려 뿌듯했다. 거의 자아도취였는데,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처럼 달리면 달릴수록 행복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나 그대로인데, 뭐가 다르다고 그땐 그리도 불행하다고 생각했지?


 회사를 다니고 나니 그땐 참 운도 좋았음을 느낀다. 열심히 하는 것이 곧바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내 앞에 힘듦이 오게 되면 언제든 해낼 수 있다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을 꺼낸다.

일단 해보자! 누가 알아? 또 잘 해낼지.
항상 그랬듯이, 해낼 수 있어.  



오늘도 나를 끝까지 믿어주는 내가 나를 토닥이며.




ps. 열정 하나로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던 젊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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